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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도전 : 박치기왕 김일 [13]

by 운영자 posted Jul 0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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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역도산 같은 영웅이 될 수 있을까?` 머릿속에선 이런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꿈에도 그리던 역도산을 만나 그의 문하생이 된 후 나도 그처럼 될 수 있다는 최면을 걸고 또 걸었다. 그 상상의 결론은 신기루였지만 그런 생각은 흐트러진 나의 마음과 정신을 일깨워 주는 청량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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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숙소에서 첫날밤을 보낸 나는 웃지도 못했다. 마음속으로 울분을 삼켜야 했다.


 

 

"현해탄을 건너왔으니 모든 것을 참고 견뎌라"라는 스승 역도산의 말은 멀리 있지 않았다. 바로 눈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역도산을 만난 후 요시무라 요시오는 나를 고참 레슬러 선수에게 데리고 가 인사를 시켰다. 요시무라는 고참 선수에게 내가 조선인이라는 사실과 함께 "역도산 선생님 제자가 되기 위해 현해탄을 건너왔다"는 사실도 알려줬다.

 

요시무라는 나 보고 그에게 인사를 하라고 했다. 나는 다가가 "김일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라며 꾸벅 인사를 했다. 하지만 나를 대하는 시선은 차가웠다. 그는 나를 위아래로 힐끔 쳐다볼 뿐 별말 없었다. 거의 외면했다. 잠시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요시무라는 "자, 저분들하고 잘 지내야 한다"라고 눙치며 서둘러 소개를 끝냈다.

 

역도산도장에서 나왔다. 고참의 태도가 기분을 잡치게 했다. 하지만 역도산을 만났다는 사실만 떠올리려 애썼다. 요시무라는 나를 도쿄 아카사카 한 아파트에 자리한 합숙소로 안내했다. 보금자리였지만 국적도 다르고 이름조차 모르는 고참 선수들과 함께 지내야 한다는 생각에 겁도 났다

.

요시무라와 헤어진 후 아카사카 시내를 혼자 걸었다. 자꾸만 역도산 생각으로 빠져드는 나 자신도 정리하고 싶었다. 또 `고참들과 어떻게 숙소 생활을 함께할까` 하는 걱정도 떨치고 싶었다. 걷다 보니 그런 생각에서 잠시나마 벗어났다. 삼삼오오 모여 식당에서 밥을 먹는 일본인들이 너무 부럽고 행복해 보이기도 했다. 저들을 보면서 고향의 가족이 떠올랐다. 반드시 성공해서 저런 고급스러운 식당에서 가족과 밥을 먹겠다고 다짐했다.

2월 말의 도쿄는 쌀쌀했다. 나는 무거운 걸음으로 숙소로 돌아갔다. 저녁이 되니 육중한 몸매의 고참 레슬러를 비롯한 선수들이 숙소로 들어왔다. 초저녁 역도산 도장에서 봤던 선수들이었다.

 

나는 특별한 이유도 없이 소금에 절인 배추처럼 기가 푹 죽어 있었다. 고참 선수는 다른 선수들에게 나를 프로레슬링을 배우기 위해 현해탄을 건너온 `애송이`라고 이야기하는 듯했다. 순간 그들은 비웃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그들은 내게 이름이 뭔지, 고향과 가족 등 기본적 신상 명세에 대해서도 묻지 않았다. 관심조차 없는 듯했다.

 

자기네들끼리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은 후 방으로 들어가서 잠을 청했다. 나는 어디서 자야 할지 몰랐다. 방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거실 한구석에 쪼그려 웅크린 채 앉았다. 이불도 없었다. 선수들은 피곤했는지 눕자마자 코를 골았다. 나는 그들의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다시피했다.

 

여러 생각이 짓눌러 왔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그냥 포기할까.` 현실은 장밋빛이 아니었다. 장미 가시가 찌르는 것 같았다. 어둠 속에 나의 불행이 영원히 잠들었으면 바랐다. 하지만 어김없이 태양은 떴다.

 

아침이 되니 막내로 보이는 선수가 밥을 짓기 시작했다. 그를 도와야 하는지, 가만히 보고만 있어야 하는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는 말 한마디도 걸지 않았다. 또 아무것도 시키지 않았다. 그러면서 `픽` 웃는 모습이 심상치 않게 보였다.

 

고참들도 일제히 잠에서 깨어났다. 그들은 차린 밥을 후딱 먹어치운 후 도장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과 함께 밥을 먹지 못했다. 그들은 내가 먹든 안 먹든 관심이 없었다.

 

식사를 끝낸 후 고참 선수가 불렀다. 그는 아주 강압적 자세로 "야! 너는 오늘부터 빨래와 집안 청소를 해야 한다. 그 일을 끝낸 후 도장으로 나와"라고 명령조로 말했다. 나는 그의 말에 거의 주눅들다시피 "예, 예"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들이 남긴 밥과 반찬으로 굶주린 배를 채웠다. 역경의 1라운드는 이렇게 시작됐다.

 

 

정병철 기자
사진=이호형 기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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