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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죽으면 선생님 발 밑에 묻어주오"

여제자 명창이 토하는 사부가(師父歌)


[동행취재] 오정숙 명창과 동초(東超) 김연수의 사랑





▲ '동초'의 '동'자만 나와도 눈시울을 붉히는 오정숙 명창.

ⓒ2003 오마이뉴스 조호진



"선생님, 선생님 우리 선생님… 못난 제자 때문에 이렇게 누추한 곳에 누워 계신 것을 용서해주세요. 잘못했어요 선생님, 앞으로 더 잘 할게요. 구천에서 편히 쉬세요…"

한식(6일)을 맞아 스승인 동초(東超) 김연수의 묘소를 찾은 오정숙(69·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명창은 눈물이 앞을 가린다. 묘소의 잡초를 뽑던 섬섬옥수(纖纖玉手)인 그의 손길이 눈물과 함께 적셔진다. 아비 품을 그리워하는 여아(女兒)처럼 사무친 그리움으로 스승을 가슴에 안고 사는 그는 초라하게 방치된 묘소가 죄스러운 것이다.

오정숙 명창의 사부가(師父歌)는 각별하다 못해 종교와 같다. 동초의 유일한 애제자인 그는 추모비를 건립하고 '동초제'를 잇기 위해 동초각을 세웠으며 판소리 보존회를 창립하는 등 스승 기리는 일과 소리를 잇는 일에 여생을 바쳤다. 하지만 자신을 오늘에 이르게 한 스승의 은혜를 갚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여길 뿐이다.

전북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 대둔산 자락에 스승의 아호를 따 '동초각'을 세운 그는 아침저녁으로 영정에 문안인사를 올린다. 추석, 한식이면 빠짐없이 섬 자락에 묻힌 스승을 찾아 묘소를 단장하고 술잔을 따른다. 그럼에도 스승을 향한 그리움을 참을 길 없어 '동초'의 '동'자만 나와도 눈물이 쏟아져 나온다.

김포 공동묘지에 묻혔던 동초를 고향인 전남 고흥군 금산면으로 이장한 것도 그였다. 낯선 땅 누추한 곳에 묻힌 스승을, 스승의 탯자리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이 곳에 모셨지만 누추한 오르막길과 잡풀로 엉성한 묘소 주변으로 인해 억장이 터져 나온다. 그는 '나라의 소리'를 바로 세우기 위해 평생을 바친 명창을 홀대하는 당국의 무심함이 야속하기만 하다.


판소리 동초제 창시자 '동초 김연수'와 '명창 오정숙'의 사제지정

  
◀ 한식을 맞아 스승의 묘소를 찾은 제자의 눈물.  
ⓒ2003 오마이뉴스 조호진


유성준·송만갑·정정렬의 제자였던 동초는 국악의 양대 산맥인 '동편제'와 '서편제' 사이에서 '동초제'를 창시했다. 동편제의 우람함과 서편제의 애잔함을 융합한 '동초제'를 창시한 그는 판소리 다섯 바탕(춘향가·심청가·적벽가·홍보가·수궁가)을 모두 섭렵하고 손수 정리하면서 사설에 장단을 붙이고 발성법까지 지도하는 등 판소리 이론을 정리했다.

'동초'는 판소리에다 연희(演戱)적인 요소를 가미한 '창극 판소리' 창법을 만들었다. 창극단인 '조선 창극좌'를 만들어 소리판에 새 바람을 일으키며 창극의 대중화를 꾀했다. 하지만 임방울 명창을 비롯한 동편제와 서편제로부터 반발을 샀다. 전통의 소리를 위반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동초는 새로운 창극으로 새로운 시대에 부응해야 한다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동초는 대한국악원장(1957년)을 지내고 중요무형문화재(1962년)로 지정됐다. 한학과 신학문을 겸비한 그는 구전으로 전해져 온 판소리를 정리하고 이론으로 집대성했다. 이 같은 일은 신재효에 버금가는 업적으로 판소리사의 걸출한 일로 일부에서 평가하고 있다.

특히 동아방송에서 판소리 다섯 바탕 전판이 녹음돼 140여 회에 걸쳐 연속 방송된 것은 초인적인 업적이며 영원히 남을 금자탑이라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동편제와 서편제의 양대 산맥에서 소리 역사가 짧은 동초제는 아직 오뚝하지 못한 탓인지 그의 평가는 당대에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오정숙 명창은 동편제와 서편제의 양대 산맥에서 '동초제'를 지키고 극대화시키기 위해 긴장된 소리꾼의 외길을 걸어왔다. 소리의 실력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자기 긴장감이었으며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그에 의해 동초제는 전국 곳곳에 뿌리내렸으며 숱한 명창과 제자를 길러냈다. 그의 제자로는 이일주 명창을 비롯해 조소녀, 민소완, 김소영, 방성춘, 은희진, 김성애 등이다.


외국 공연에서 수 차례 기립박수와 극찬 받는 판소리 국내에서는 홀대

  
▶ "선생님, 선생님, 우리 선생님"  
ⓒ2003 오마이뉴스 조호진


세 살 때 어머니를 여위고 열 네 살의 나이로 소리판에 뛰어든 오정숙 명창. 무남독녀인 그는 호남의 명창 이기권과 국창 김소희에게 소리를 배운 뒤, 홀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동초의 문하생이 됐다.

평상시에는 인자한 아버지였고, 소리 공부할 때는 발자국 소리도 함부로 낼 수 없을 만큼 무서운 어른이었던 동초는 그가 춘향가 한바탕을 떼고 나서야 애 제자로 받아 들였다. 그는 생전의 동초에게 다른 소리를 섞지 않고 스승의 소리를 잇겠다고 맹세했고 스승은 제자의 다짐에 흐뭇해했다. 그렇게 헌신적인 스승의 사랑과 제자의 초인적인 의지가 모아지면서 명창이 탄생됐다.

그는 세 번째 완창 무대인 수궁가 발표회가 열리던 1974년에 스승을 잃었다. 그는 스승의 빈자리와 업적에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인 결과 전주대사습 놀이(75년)에서 최초의 여류명창이 됐다. 또 남도문화제 대통령상(83년), KBS 국악대상(84년), 춘향문화대상 등 굵직한 상을 휩쓸었다.

일곱 차례나 산사(山寺)에 찾아가 백일 소리공부를 했던 그는 한국 판소리 여성 최초로 판소리 다섯 바탕을 완창한 명창이다. 오척 단구의 작은 체격에서 뿜어져 나오는 폭포수 같은 소리, 국악계는 타고난 소리꾼이자 집념을 가진 그를 '작은 거인'이라고 높여 부른다.

지난 90년 통일음악제에 참가한 그는 심청가로 평양시민들을 울렸다. 북한 주민들은 심청가 가운데 청이와 심학규가 상봉하는 대목에서 끝내 눈물을 참지 못했다. 오척 단구의 명창이 뿜어낸 한 맺힌 소리를 통해 이별과 분단의 아픔이 터져 나오면서 눈물의 오작교가 놓여진 것이다.

그는 또 독일 등 해외공연에서 격찬 받은 사실에 자부심을 갖는다. 다섯 차례의 기립박수로 존경을 표시한 독일 관객들 그리고, 한국의 소리를 신비한 연구대상이라며 극찬한 유럽의 언론보도에서 한국의 소리가 세계의 소리임을 입증 받았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한국의 문화정책은 우리의 소리를 홀대할 뿐이어서 가슴아프다고 그는 아쉬워한다.

그는 특히 명창을 홀대하는 정부당국과 지방당국의 문화정책이 몹시 야속하다. 그가 사비를 털어 스승의 묘를 이장했지만 고흥군은 허물어 가는 밭 두렁 한쪽에 안내 묘석을 세우고 최근에 돌계단을 놓았을 뿐이다. 명창 '동초 김연수'를 기리는 표지도 안내판도 없는 썰렁한 향리에 이렇게 대접받으려고 모셔왔는가 생각하면 기가 막힌다.

오정숙 명창은 스승의 고향인 전남 고흥에 '동초기념관'을 세우는 게 생전의 소원이다. 또 동초국악제를 만들어 추모제와 추모공연을 추진할 계획이다. 특히 스승이 떠난 지 30주년이 되는 내년을 시작으로 탄생 100주년이 되는 2007년에는 스승을 재조명하는 각종 행사를 준비할 생각이다.


"선생님 발 밑에다 나를 물어다오" VS "선생님의 스승 사랑이 이어질지…"

  
◀ 스승의 묘소를 돌보는 오정숙 명창.  
ⓒ2003 오마이뉴스 조호진


"우리 선생님은 훌륭한 분이 아니라 거룩한 분 이예요. 공부할 때는 발자국 소리도 내지 못할 만큼 무섭지만 평상시에는 아버지처럼 인자한 분이셨어요. 선생님은 똑바로 쳐다볼 수 없을 만큼 위엄이 넘치는 눈빛을 지니셨지요."

오정숙 명창의 스승을 향한 마음은 차라리 종교적이다. 한국 판소리의 이론과 실전을 겸비한 동초의 업적이 신채호 선생 못지 않다고 여기는 그는 판소리계와 언론계가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있다며 서운해한다. 스승의 업적이 가리워 진 것은 편협함 때문이라며 애석함을 감추지 않는다.

"금쪽 같은 우리 선생님을 왜 세상이 몰라주는지 그렇게 야속하고 답답할 수가 없어요."

칠순을 앞둔 그는 소녀 같기만 하다. 고운 피부와 섬섬옥수의 작은 손이 아담한 키와 어울린다. 해맑은 웃음과 눈물을 간직한 그의 사부가는 이해관계에 따라 변질되는 야속한 세상의 것과 천지차이다. 갯벌을 보면 세발 낙지와 꼬막을 좋아하던 스승이 더욱 그립고, 좋은 옷을 보면 생전에 스승께 해드리지 못한 것이 죄스러워진다. 모든 것이 스승과 연결된다.

"스승 없이 제자가 어떻게 생겨날 수 있습니까. 밥을 먹고 옷을 입고 대우받는 것도 모두 선생님 은덕입니다. 선생님이 아니면 오정숙이는 존재할 수 없는데 어찌 선생님의 은덕을 한시라도 잊을 수 있습니까."

스승을 향한 은혜가 하늘같기만 하다고 초지일관 토해내는 작은 거인. 스승의 분신이 되어야 소리를 잇는 제자가 될 수 있었던 시대를 살아온 그는 단순한 재주로 소리꾼이 되려는 요즘 소리판 풍토를 애석해 한다. 허기와 피눈물의 세월로 득음의 경지에 오른 그는 편해진 시대가 무정하기만 하다.

"요즘 소리꾼들은 소리 몇 토막 배워 편하게 명창이 되려고 합니다. 또 스승의 그림자를 밟으면 안 된다고 타이르면 '발로 탁' 차려고 합니다. 이런 자세로는 진정한 명창이 나올 수 없으며 진정한 사제지간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육십 여 평생을 소리로 살아온 그는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살았다. 해맑음은 그런 까닭에 연유한 것이다. 중앙이라 불리는 서울의 화려함을 등지고 한적한 대둔산 자락에 묻힌 것도 스승을 추모하고 '동초' 소리를 잇는 제자를 양성하기 위해서이다. 요즘도 하루에 1∼2시간씩 소리 공부하며 여력을 다하지만 기력이 예전 같지 않은 것만은 사실이다.




▲ 스승이 묻힌 섬을 떠났지만 그의 마음은 정작 떠나지 않았다.  
ⓒ2003 오마이뉴스 조호진


그는 마음이 바빠진다. 살아 생전에 스승의 유업을 기려야할 텐데 여건이 넉넉치 않다. 스승의 일이라면 불원천리 맨발로 달려오겠다는 그 일편단심. 하지만 '부잣집에 유산상속 싸움은 있어도 효자는 없다'는 말처럼, 소녀 같은 칠순 명창을 지켜보는 주변의 걱정은 태산같다. 그의 명성과 재물이 그를 지켜줄지언정 그의 스승 사랑과 순수한 유업이 제대로 이어질지 안심되지 않기 때문이다.

'동초'의 '동'자만 나와도 눈시울을 붉히는 그는 세상에서 못 나눈 사제의 정을 저 머나먼 북망산천에서 나누고 싶어한다. 그가 제자들에게 신신당부하며 부르는 중요 대목은 자신이 죽으면 스승의 곁에 묻어달라는 소리다.

"내가 죽으면 선생님 발 밑에다 묻어줘야 혀. 죽어서라도 선생님 곁에 있고 싶은 내 맘 알지. 그렇지 않으면 죽어서라도 내가 밤새 나타날 테니까. 나는 꼭 우리 선생님 곁에 누워야 혀…"  

2003/04/07 오전 1:29
ⓒ 2003 OhmyNews  조호진 기자


원본기사 : http://www.ohmynews.com/article_view.asp?menu=c10200&no=107259&rel%5Fno=1&back%5Furl=&page=1&character=01&serial%5F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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