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붕 두 가족
우리 고향 사람들의 만남의 장이자 정보의 교환 장소였던, 특히나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생활하는 향우들에게 고향을 느끼게 하는데 더할 나위 없이 공헌을 하였던 거금도닷컴이 생긴 지 벌써 9년!
지금이야 통신기술의 발달로 스마트 폰이니 트위터니 하는 것들이 나와정보공유(교환)의 폭이 훨씬 넓어졌지만 9년 전인 그때만 하여도 컴퓨터라는 공간만이 우리에게 가장 빠른 정보공유(교환)의 장이었으니 이 거금도닷컴이 우리의 삶에 주는 영향력은 실로 엄청났다.
나의 경우 거금도닷컴이 생긴 1년 후인 2004년 가을부터 그곳을 드나들었는데, 운 좋게도 내가 기획하여 연재한 거금도사투리 모음이 방문자수가 16만여 회를 넘는 공전의 히트를 쳐 그것을 계기로 ‘거금도닷컴’이라는 책까지 발간하게 되었으니 새삼 거금도닷컴에 대한 감회가 새롭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값진 것이 있으니 거금도닷컴을 통하여 사람들(자미원님(연소)을 비롯하여 미국의 공양현님(일정), 속초의 강철현님(일정), 울산의 유애자님(석정), 부천의 김정숙님(월포), 광주의 오성현님(명천), 서울의 최보기님(신금) 그리고 광양의 천창우님(오천) 등등과 고향을 지키는 동촌의 김승훈님, 연소의 김해식님 등등)을 많이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 고향 사람들의 소통의 장인 거금도닷컴이지만 그동안 우여곡절도 참 많았다.
아시다시피 거금도닷컴은 운영자가 어떤 이익을 목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고 김인석이라는 한 개인이 거금도를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 하나로 손수 자비를 들여 운영하였기에 만만찮게 소요되는 서버 사용요금 등의 문제로 가끔씩 서버가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하였다는 것이다. 운영비는 회원들의 자발적인 후원과 금산중학교 등 동창회에서 일부 부담하는 형식으로 충당되었는데 그게 넉넉지 않으니 이따금씩 서버가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하곤 하였다.
그럴 때마다 뜻있는 향우들이 안정적인 운영비의 조달 문제를 논의하여 운영자에게 의견을 묻곤 하였지만 끝내 운영자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그러고 있던 중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하였으니 그것은 거금도닷컴의 가장 큰 버팀목(회원 수나 재정적인 측면)이었던 금산중학교 동문회가 거금도닷컴을 떠나 독자적인 사이트(이하 ‘금중 홈페이지’라고 한다)를 만들겠다는 선언을 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왈가왈부 말이 많았으나 결국 금산중학교 동문회는 2010년 말에 금중 홈페이지를 만들어 운영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는데..........
그렇게 되기까지의 속 내용은 내가 잘 모르니 할 말도 없고 그 결정(금중 홈페이지를 독립시켰던 것)이 옳았는지에 대하여도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언젠가 금중 동문 한 사람이 나에게 ‘거금도닷컴에만 글을 올리지 말고 금중 홈페이지에도 글을 좀 올려 달라’는 말을 하기에 마음 한 편에 남아 있는 어떤 앙금(언젠가는 하고 싶었던 말)을 풀어버리지 아니하고는 그럴 수 없다는 나의 마음을 전하고자 이 글을 쓰고 있다.
이에 대한 나의 화두를 한 마디로 정리하면 그 결정으로 인하여 우리 향우들이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인가?’이다.
먼저, 대승적으로 생각하면 금산중학교 출신 한 사람 한 사람은 전부 금산면민의 한 사람이다. 곧, 금산중학교는 금산면이라는 전체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그러기에 거금도닷컴에서는 각 급 학교를 구분하여 관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데도 굳이 금중 홈페이지를 만들어 독립해 나가야 했던 이유야 분명 있었겠지만 나는 그러한 것에 연연하지 않고 거금도닷컴과 금중 홈페이지의 현재 이용 상황을 살펴보았다.
전체적인 이용 상황의 비교는 이 글을 쓰는 목적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아 순수한 금산면 출신이자 금산중학교 각 기수(1회부터 15회까지)별 졸업생(이를 교집합군이라 한다)들이 써서 게재한 글의 수와 글을 올리는 사람들의 수를 비교해 보는 방법을 사용했다.
과연 거금도닷컴의 한 부분에 있었을 때의 금산중학교 각 기수별 게시물(사진 포함)과 금중 홈페이지로 독립하고 나서의 각 기수별 게시물(사진 포함)의 수와 올리는 사람들의 수는 어떻게 변했을까?
물론 생긴 지 9년이 된 거금도닷컴과 생긴 지 1년 반밖에 되지 않은 금중 홈페이지에 올려진 글의 수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겠지만 그래도 그 추이를 살펴보면 무언가 느낌은 올 것이다.
게시물 수의 비교
졸업 기수 |
거금도닷컴 |
금중 홈페이지 |
비 고 | ||
글수 |
올리는 사람 |
글수 |
올리는 사람 | ||
01회 |
421 |
달그림자 외 |
2 |
|
죽어 있음 |
02회 |
66 |
목계 외 |
4 |
|
죽어 있음 |
03회 |
210 |
이기복 외 |
34 |
죽산, 푸른하늘 |
|
04회 |
133 |
진재수 외 |
4 |
|
죽어 있음 |
05회 |
79 |
임무섭 외 |
3 |
|
죽어 있음 |
06회 |
636 |
박동희 외 |
7 |
박동희, 미송 |
거의 없음 |
07회 |
262 |
김성현 외 |
22 |
순둥이 외 |
|
08회 |
410 |
박길수 외 |
38 |
박길수 외 |
|
09회 |
556 |
산악대장 외 |
41 |
적대봉 외 |
|
10회 |
1,309 |
김법관 외 |
70 |
늘사랑 외 |
|
11회 |
1,109 |
김상남(집행부) |
22 |
집행부 외 |
|
12회 |
856 |
산악회 사진 |
36 |
담선 외 |
|
13회 |
679 |
산야로 외 |
9 |
|
거의 없음 |
14회 |
443 |
14회 총무 외 |
16 |
|
거의 없음 |
15회 |
1,095 |
김양현회장 외 |
11 |
|
거의 없음 |
합계 |
8,264 |
|
319 |
|
|
평균 |
1,033 |
8년으로 나눔 |
319 |
1년으로 가정함 |
|
(두 번째는 일자 별로 하루의 방문자 수를 비교해 보려고 했으나 정확한 자료를 구할 수가 없어 포기했다.)
위 표에서 보듯 1년 동안 금중 홈페이지에 게재한 글의 수는 거금도닷컴에 게재된 글의 1/3에도 못 미친다.
물론 금중 홈페이지가 자유게시판 등 분야별로 나뉘어져 있고, 거금도닷컴의 동문 방에 올렸던 사진 등이 다른 쪽으로 옮겨간 것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활성화되고 있는 기수가 반밖에 되지 않고 있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렇다면 거금도닷컴의 현 실상은 어떠한가?
거기도 2~3년 전의 상황과는 비교가 되지 아니할 정도로 한산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래도 나의 경우 금산면에 관련된 소식은 거금도닷컴에서 얻은 경우가 훨씬 많다.
결국 금중 홈페이지의 독립은 금산 사람을 둘(금중 출신과 아닌 사람)로 나누는 것으로 귀착되고 만 것이다. 그것도 생산적이 아닌 축소지향적으로 말이다.
나는 이것을 바로 ‘우리가 잃은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럼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애석하게도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이다.
작금의 우리 고향 금산은 거금대교의 개통으로 인하여 『다시 도약하는 금산』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물론 수려한 강산과 청정해역이 오염될 수도 있다는 염려도 있지만 이것들은 어쩔 수 없이 우리가 해결해야 할 몫이므로 여기에서는 거론하지 말자)
나는 나름대로 거금대교를 ‘소통의 다리’라고 정의한 바 있다.
고향이 금산이라는 공통점 하나로
지역민과 각지에 흩어져 있는 향우들이 소통하고
금중 출신들과 다른 학교 출신들이 소통하는.
그 소통의 역할을 거금도닷컴과 금중 홈페이지가 맡아 주기를 바란다.
이렇게 둘로 나뉘어져 있는 소통의 장을 하나로 통합할 생각은 정녕 없는가?
거금도닷컴 운영자와 금중 동문회 관계자는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진정 고향을 위하는 진솔한 마음으로 통합하기를 강력히 촉구하는 바이다.
아무 자격도 능력도 없으면서
양 쪽의 뭇매를 맞을 각오로 이 글을 써서 올렸다.
나는 이 글을 금중 홈페이지에도 올리려고 시도했으나
회원이 아니어서 올릴 수가 없었다.
혹 금중 동문회원이 이 글을 읽는다면
이 글을 금중 홈페이지에 실어주기를 바란다.
과연 이 글을 올린 나는
얻을 것은 무엇이고 잃을 것은 무엇일까?
그렇지만 나는 그것들은 생각해 보지 않았다.
단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우리 향우들이, 그리고 양 쪽 관계자가
진지하게 의견을 나누는 것이라고나 할까?
향우들의 의견을 댓글로 남겨주면 좋은 결과도 있을 법 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