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x2)(h6)
우리 네 식구가 광주에서 출발하는 태백산눈꽃축제관광열차에 몸을 실은 날은 유난히도 한파가 몰이치던 2002년 1월 말!
모처럼의 가족여행이었다. 강원도는 오르고 싶은 산들이 많지만 내가 살고 있는 이 곳 광주에서는 너무 멀어 선뜻 엄두를 낼 수 없는지라 눈꽃축제의 스케쥴에 태백산의 등반이 있는 것을 보고 여행을 제안하자 식구들은 제주도로 가자는 등 약간의 반대가 있었으나 아버지의 권위(?)로 강행한 것이다. 제주도는 너희가 어렸을 때 자주 갔었던 곳이지 않아!
마눌님과 나는 등산을 목적으로, 딸랑구는 기차여행을 목적으로 아들 녀석은 가족여행이라는 구색에 그저 마지못해 따라 나선 여행이지만 어쨓든 토요일 밤 8시에 출발한 무궁화열차는 추운 밤의 대기도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씩씩하게 목적지를 향한다. 칠흑같은 어둠 때문에 밖의 풍경을 볼 수 없어 조금은 지리한 생각도 들었지만 내가 결정한 여행이고 또한 태백산을 오른다는 설렘으로 마냥 즐거운 체하며 열차에 온 몸을 맡긴 지 다섯 시간!
열차는 다음 날 새벽 한 시에 우리를 태백역에 내려주고 ‘이따가 밤 열시에 모시러 올께요, 여행 잘 하셔요’ 란 인사를 남기고는 마지막 목적지인 정동진으로 향한다. 우리를 맞아주는 태백의 새벽공기는 장난이 아니게 추웠다.
오늘의 식사를 해 줄 당골의 식당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방법으로 잠깐 눈을 붙였을까? 등산을 할 사람은 집합하라는 안내원의 말이 잠결의 귀를 스친다. 부시시 일어나 여장을 꾸리고 밖의 광장에로 나가니 야! 이건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너무 추웠다.
기차여행과 눈꽃축제나 즐기겠다는 딸랑구가 함께 산에 가겠다고 나선다. 복장도 간소복이고 신발도 겨울 부츠인데 어떻게? 그래도 가겠단다. 어쩔 수 없이 가게에서 딸랑구의 신발에 채울 아이젠을 하나 사 들고 버스에 올랐다.
다섯 시 반의 유일사 매표소 입구.
얼핏 보이는 온도계는 섭씨 -20C를 가리키고 있다.
하늘은 잔뜩 흐려 있어 일출은 기대하기가 힘들단다.
이제부터 산행이다.
다들 말이 없다.
어두운 새벽이지만 눈의 고장답게 수북히 쌓여 하얗게 빛이 나고 있는 눈 길을 따라 그저 묵묵히 발걸음을 옮길 뿐이다. 영화 남부군에서 본 대열이 생각난다.
나는 군장이 완벽했지만 마눌님과 딸랑구가 아무래도 걱정이다. 그나마 마눌님은 등산화라도 신었는데 딸랑구가 신은 신발은 부츠라 아이젠이 자주 벗겨진다. 그렇다고 아이젠을 다시 채워주는 일 외에 내가 해 줄 일은 없다. 그저 힘내라고 격려해 줄 수 밖에.
그렇게 한 시간 정도를 오르니 서서히 날이 밝아 온다. 어슴프레히 능선만이 보이던 이름 모를 산들이 서서히 제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고사목군락지, 주목생태복원조림지 등의 푯말이 보이지만 메모를 할 여유가 없다. 두꺼운 스키장갑을 낀 나는 손은 시리지 않았지만 얇은 면장갑과 가죽장갑을 낀 마눌님과 딸랑구는 손이 시리다고 찡그린다.
상고대!
동남천과 옥동천 자락을 스치며 습기를 가득 머금은 바람이 이 곳 태백산맥을 넘으면서 서리로 변하는데 이것이 나뭇가지에 걸린 것을 상고대라고 한단다.
얼음꽃!
또 그 상고대 위에 눈이 내려 낮에는 녹고 밤에는 얼어붙어 피어 나는 것.
눈꽃!
상고대나 얼음꽃 위에 눈이 솜털처럼 붙어 있는 것.
일곱시 반!
하얗게 날이 새니 온 천지도 하얗다.
드디어 장군봉에 올랐다.
천제단!
우리 한민족의 시조인 단군님에게 제사를 지낸다는.
그러나 아니었다.
이곳은 장군단이고 저 쪽에 있는게 천제단이란다.
장군단에서 천제단까지의 약 500여 m.
세차게 불어오는 북서풍에 몸이 날아가 버릴 것만 같고 온 몸을 파고 드는 찬바람에 머리가 터져 버릴 것 같다.
천제단!
마음 속으로 단군님에게 참배하고 기념사진을 찍어 볼려고 하는데 찬공기에 카메라도 얼어 붙었는지 작동을 하지 않는다.
결국 기념사진 한 판도 찍지 못하고 우리는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근처의 산을 눈으로나마 아우를 겨를도 없다. 잠시도 서 있을 수 없게 하는 강풍과 추위때문에. 다른 사람들로 한 컷도 못 찍었단다.
망경사로 향하는 내리막 길.
다행히 산을 등지니 이제 강풍은 없다.
자장율사가 세웠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특징이 없는 망경사는 햇볕이 잘 드는 남향으로 이곳에 도착하니 조금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데 위치한, 물 맛이 좋다는 용정 샘물은 꽁꽁 얼어붙어 있다. 정신을 차리고 서로의 몰골을 보니 마치 남극을 탐험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왜 그 눈썹과 수염에 입김 등이 얼어붙어 얼음으로 변하여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그 모습! 서로가 서로를 보며 우리는 한 참을 웃었고 그 웃기는 모습은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이제 한 시간을 더 내려가야 당초 출발지인 당골에 도착한다.
미끄러운 내리막길.
저 앞서 어떤 사람이 비닐포대를 썰매삼아 잘도 타고 내려간다.
딸랑구는 그게 한 없이 부럽다.
역으로 당골에서 올라오는 사람이 딸랑구를 보고 말한다.
“아가씨, 그러한 복장으로 태백산을 오르는 것은 태백산을 모독하는 행위여요!”
그러한 복장으로도 산엘 올랐다는 용기에 대한 칭찬인지 그 무모함에 대한 나무람인지 나도 헷갈린다.
한 참을 내려오다가 마눌님이 용무가 마렵단다.
용무를 마치고 하는 말이 “분명히 용무는 봤는데 내가 옷을 벗고 봤는지 옷을 안 벗고 봤는지 분간이 안 간다”는 것이다. 그만큼 온 몸이 얼어붙어 감각이 없는 것이었다.
드디어 11시 경에 당초 출발지인 당골에 무사히 도착했다.
출발할 때는 어둠에 쌓여 분간이 되지 않았던 곳이었는데 낮에 보니 그런데로 유원지 모습을 갖추고는 있으나 온 곳이 썰렁하다. 날씨가 추우니 그렇게 보인 것이리라! 식당으로 돌아와 독한 쐬주와 따뜻한 오뎅국물로 언 몸을 데우려 하는데 손이 꼽아 병마개를 딸 수가 없을 정도였다.
오후에는 낙동강의 발원지인 황지연못을 구경했는데 마치 온천탕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듯이 연못에서 김이 나고 있는 것이었다, 손을 담구어 보니 물이 따뜻했다. 생전에 처음 맛본 지독한 추위다.
그렇게 추위와 싸우면서 힘겹게 태백을 등정하고 적당히 피로한 몸을 추스르며 또 내일을 기약하는 우리를 실은 광주행 열차는 힘차게 힘차게 달리고 있다.
우리 네 식구가 광주에서 출발하는 태백산눈꽃축제관광열차에 몸을 실은 날은 유난히도 한파가 몰이치던 2002년 1월 말!
모처럼의 가족여행이었다. 강원도는 오르고 싶은 산들이 많지만 내가 살고 있는 이 곳 광주에서는 너무 멀어 선뜻 엄두를 낼 수 없는지라 눈꽃축제의 스케쥴에 태백산의 등반이 있는 것을 보고 여행을 제안하자 식구들은 제주도로 가자는 등 약간의 반대가 있었으나 아버지의 권위(?)로 강행한 것이다. 제주도는 너희가 어렸을 때 자주 갔었던 곳이지 않아!
마눌님과 나는 등산을 목적으로, 딸랑구는 기차여행을 목적으로 아들 녀석은 가족여행이라는 구색에 그저 마지못해 따라 나선 여행이지만 어쨓든 토요일 밤 8시에 출발한 무궁화열차는 추운 밤의 대기도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씩씩하게 목적지를 향한다. 칠흑같은 어둠 때문에 밖의 풍경을 볼 수 없어 조금은 지리한 생각도 들었지만 내가 결정한 여행이고 또한 태백산을 오른다는 설렘으로 마냥 즐거운 체하며 열차에 온 몸을 맡긴 지 다섯 시간!
열차는 다음 날 새벽 한 시에 우리를 태백역에 내려주고 ‘이따가 밤 열시에 모시러 올께요, 여행 잘 하셔요’ 란 인사를 남기고는 마지막 목적지인 정동진으로 향한다. 우리를 맞아주는 태백의 새벽공기는 장난이 아니게 추웠다.
오늘의 식사를 해 줄 당골의 식당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방법으로 잠깐 눈을 붙였을까? 등산을 할 사람은 집합하라는 안내원의 말이 잠결의 귀를 스친다. 부시시 일어나 여장을 꾸리고 밖의 광장에로 나가니 야! 이건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너무 추웠다.
기차여행과 눈꽃축제나 즐기겠다는 딸랑구가 함께 산에 가겠다고 나선다. 복장도 간소복이고 신발도 겨울 부츠인데 어떻게? 그래도 가겠단다. 어쩔 수 없이 가게에서 딸랑구의 신발에 채울 아이젠을 하나 사 들고 버스에 올랐다.
다섯 시 반의 유일사 매표소 입구.
얼핏 보이는 온도계는 섭씨 -20C를 가리키고 있다.
하늘은 잔뜩 흐려 있어 일출은 기대하기가 힘들단다.
이제부터 산행이다.
다들 말이 없다.
어두운 새벽이지만 눈의 고장답게 수북히 쌓여 하얗게 빛이 나고 있는 눈 길을 따라 그저 묵묵히 발걸음을 옮길 뿐이다. 영화 남부군에서 본 대열이 생각난다.
나는 군장이 완벽했지만 마눌님과 딸랑구가 아무래도 걱정이다. 그나마 마눌님은 등산화라도 신었는데 딸랑구가 신은 신발은 부츠라 아이젠이 자주 벗겨진다. 그렇다고 아이젠을 다시 채워주는 일 외에 내가 해 줄 일은 없다. 그저 힘내라고 격려해 줄 수 밖에.
그렇게 한 시간 정도를 오르니 서서히 날이 밝아 온다. 어슴프레히 능선만이 보이던 이름 모를 산들이 서서히 제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고사목군락지, 주목생태복원조림지 등의 푯말이 보이지만 메모를 할 여유가 없다. 두꺼운 스키장갑을 낀 나는 손은 시리지 않았지만 얇은 면장갑과 가죽장갑을 낀 마눌님과 딸랑구는 손이 시리다고 찡그린다.
상고대!
동남천과 옥동천 자락을 스치며 습기를 가득 머금은 바람이 이 곳 태백산맥을 넘으면서 서리로 변하는데 이것이 나뭇가지에 걸린 것을 상고대라고 한단다.
얼음꽃!
또 그 상고대 위에 눈이 내려 낮에는 녹고 밤에는 얼어붙어 피어 나는 것.
눈꽃!
상고대나 얼음꽃 위에 눈이 솜털처럼 붙어 있는 것.
일곱시 반!
하얗게 날이 새니 온 천지도 하얗다.
드디어 장군봉에 올랐다.
천제단!
우리 한민족의 시조인 단군님에게 제사를 지낸다는.
그러나 아니었다.
이곳은 장군단이고 저 쪽에 있는게 천제단이란다.
장군단에서 천제단까지의 약 500여 m.
세차게 불어오는 북서풍에 몸이 날아가 버릴 것만 같고 온 몸을 파고 드는 찬바람에 머리가 터져 버릴 것 같다.
천제단!
마음 속으로 단군님에게 참배하고 기념사진을 찍어 볼려고 하는데 찬공기에 카메라도 얼어 붙었는지 작동을 하지 않는다.
결국 기념사진 한 판도 찍지 못하고 우리는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근처의 산을 눈으로나마 아우를 겨를도 없다. 잠시도 서 있을 수 없게 하는 강풍과 추위때문에. 다른 사람들로 한 컷도 못 찍었단다.
망경사로 향하는 내리막 길.
다행히 산을 등지니 이제 강풍은 없다.
자장율사가 세웠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특징이 없는 망경사는 햇볕이 잘 드는 남향으로 이곳에 도착하니 조금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데 위치한, 물 맛이 좋다는 용정 샘물은 꽁꽁 얼어붙어 있다. 정신을 차리고 서로의 몰골을 보니 마치 남극을 탐험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왜 그 눈썹과 수염에 입김 등이 얼어붙어 얼음으로 변하여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그 모습! 서로가 서로를 보며 우리는 한 참을 웃었고 그 웃기는 모습은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이제 한 시간을 더 내려가야 당초 출발지인 당골에 도착한다.
미끄러운 내리막길.
저 앞서 어떤 사람이 비닐포대를 썰매삼아 잘도 타고 내려간다.
딸랑구는 그게 한 없이 부럽다.
역으로 당골에서 올라오는 사람이 딸랑구를 보고 말한다.
“아가씨, 그러한 복장으로 태백산을 오르는 것은 태백산을 모독하는 행위여요!”
그러한 복장으로도 산엘 올랐다는 용기에 대한 칭찬인지 그 무모함에 대한 나무람인지 나도 헷갈린다.
한 참을 내려오다가 마눌님이 용무가 마렵단다.
용무를 마치고 하는 말이 “분명히 용무는 봤는데 내가 옷을 벗고 봤는지 옷을 안 벗고 봤는지 분간이 안 간다”는 것이다. 그만큼 온 몸이 얼어붙어 감각이 없는 것이었다.
드디어 11시 경에 당초 출발지인 당골에 무사히 도착했다.
출발할 때는 어둠에 쌓여 분간이 되지 않았던 곳이었는데 낮에 보니 그런데로 유원지 모습을 갖추고는 있으나 온 곳이 썰렁하다. 날씨가 추우니 그렇게 보인 것이리라! 식당으로 돌아와 독한 쐬주와 따뜻한 오뎅국물로 언 몸을 데우려 하는데 손이 꼽아 병마개를 딸 수가 없을 정도였다.
오후에는 낙동강의 발원지인 황지연못을 구경했는데 마치 온천탕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듯이 연못에서 김이 나고 있는 것이었다, 손을 담구어 보니 물이 따뜻했다. 생전에 처음 맛본 지독한 추위다.
그렇게 추위와 싸우면서 힘겹게 태백을 등정하고 적당히 피로한 몸을 추스르며 또 내일을 기약하는 우리를 실은 광주행 열차는 힘차게 힘차게 달리고 있다.
고향으로 가기 위해 준비 중인 마눌님이 빨리 끝내고 준비하라고 성화네요!
모든 향우님 !
금산에서 봅시다.
뜻있는 추석 되시길.
2004. 09. 25. 07 : 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