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초 김연수
김연수(金演洙, 1907-1974)는 전남 고흥군 금산면에서 태어나 20세기에 활동한 판소리 명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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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MBC 특별기획 다큐, '명창 김연수' 재조명
[특집다큐] "소리를 하라 하시오" (판소리 동초제 시조 김연수) *제작/방송: 2013.11.25.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제자 오정숙에게 소리를 전수 한, 불꽃처럼 살다 간 판소리 동초제의 시조 동초(東超) 김연수(金演洙). 전남(고흥군 금산면 대흥리) 출신의 판소...Date2017.09.19 Views743 -
[음악듣기] 단가 '이산저산'
이산 저산 꽃이 피면 산림풍경 너른 곳 만자천홍 그림병풍 앵가접무 좋은 풍류 세월 간 줄얼 모르게 되니 분명코 봄일러라 봄은 찾어 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하더라 나도 이제는 청춘일러니 오늘 백발 한심쿠나 내 청춘도 날 버리고 속절없이 가버렸으니 왔다 ...Date2005.10.16 Views11173 -
김연수와 동초제 판소리의 계승자들
김연수와 동초제 판소리의 계승자들/ 최동현 군산대교수 첨부파일 pdf참고dongcho_sori.pdfDate2004.12.16 Views11244 -
동초제 판소리보존회 고흥군지부 창립
지난 4일 오후 3시 30분, 고흥종합문화회관에서 500여 객석을 가득 메운 가운데 '동초제 판소리보존회 고흥군지부 창립기념식'을 가졌다. ▲ 동초제 판소리보존회 고흥군지부 창립기념 공연 ⓒ2003 김성철 진종근 고흥군수는 축사에서 "동초 김연수 선생의 유지...Date2003.07.08 Views10198 -
'나 죽으면 선생님 발 밑에 묻어주오' 여제자 명창이 토하는 사부가(師父歌)
"나 죽으면 선생님 발 밑에 묻어주오" 여제자 명창이 토하는 사부가(師父歌) [동행취재] 오정숙 명창과 동초(東超) 김연수의 사랑 ▲ '동초'의 '동'자만 나와도 눈시울을 붉히는 오정숙 명창. ⓒ2003 오마이뉴스 조호진 "선생님, 선생님 우리 선생님… 못난 제자 ...Date2003.04.07 Views11318 -
동초제 오정숙/맑은결로 치솟는 현대적판소리
◎다섯마당 완창한 최초 여명창/가사문학성 중시… 정확한 사설·정교한 너름새가 특징 ○김연수소리 한평생 터질만큼 가득찬 한이 곰삭으면 그 심연에선 투명한 관능이 출렁거린다. 우리 민족은 자정할 수 없는 한을 낯선 강에 띄우고 역사의 바다에 동참한다. 우...Date2003.01.19 Views9917 -
김연수의 고흥선산/창극통해 판소리 현대적 접목(국민일보 1994-04-30)
김연수의 고흥선산/창극통해 판소리 현대적 접목(국민일보 1994-04-30) 동편제의 우람한 소리와 서편제의 아련한 소리등 판소리의 여러 바디를 정교하게 다시 짜 「동초제」를 형성한 동초 김연수명창. 신재효이후 판소리 다섯바탕의 사설을 정리,판소리 음악...Date2003.01.19 Views12232 -
28년간 동면해 온 김연수의 판소리 다섯바탕
28년간 동면해 온 김연수의 판소리 다섯바탕 글/노재명(명인기획 대표) 1994년 4월, 지구레코드에서 박록주의 홍보가 음반이 27년만에 재발매되자 국악계에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고 귀명창들에게는 큰 기쁨을 안겨주었다. 그 동안 지구레코드의 희귀 명반들...Date2003.01.18 Views13026 -
동초 김연수의 판소리 다섯마당 듣기 - 흥보가,적벽가,춘향가,심청가,수궁가1
흥보가,적벽가,춘향가는 아직 cd 구입을 하지 못하고 심청가, 수궁가 두 장만 구했습니다.^^ 판소리는 다섯마당 모두 해당 제목을 누르시면 들을실 수 있습니다. ☆추천:흥보가 7번트랙 흥보가 밥을 먹는데~돈타령 흥보가 적벽가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Date2003.01.18 Views19775 -
바다에 젖은 애절한 가락-동초제 소리의 고향 금산2
바다에 젖은 애절한 가락-동초제 소리의 고향 금산 유영대 / 전주 우석대 교수 자동차길로는 끄트머리인 우리나라의 최남단 고흥 녹동까지 갔었다. 가는 도중 줄곳 동초가 남기고 간 소리를 들었다. 그중에서도 그가 말년에 지은 단가「이산저산」이 계속하여...Date2003.01.18 Views102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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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師弟)의 도(道)
(고흥=연합뉴스) 전성옥기자= 유교 문화권인 우리나라에서는 스승과 제자 사이를 일컬어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 한다. "임금과 스승, 아버지의 은혜는 다 같다"는 이 뜻 속에는 유교적 엄격함과 규율이 강하게 묻어 난다. 소리꾼 세계에서의 스승과 제자는 ...Date2003.01.18 Views8507 -
동초제의 시조
= 판소리 학계에서는 19세기와 20세기초를 셋으로나누어 전기 8명창, 후기 8명창, 근세 5명창 시대라 부른다. 「흥부가」가운데 놀부가 제비 후리러가는 대목으로 유명한 권삼득(1771-1841), 가왕(歌王) 송흥록(순조-철종)과 동생 송광록(순조-헌종) 등이 전...Date2003.01.18 Views12332 -
소리꾼과 당골
(고흥=연합뉴스) 전성옥기자 = '그 사람 당골네 집안이야.' 명창 임방울과 소리판에서 쌍벽을 이뤘던 동초(東超) 김연수(金演洙 1907-1974)의 소리 내력을 더듬기 위해 그의 고향인 전남 고흥 앞바다 거금도(금산면)를 찾아갔을 때였다. 이 지방 노인들은 당대...Date2003.01.18 Views11068 -
동초 김연수의 약력
故 김연수 명창의 아호는 동초다. 그는 1907년 전남 고흥군 금산면 대흥리에서 태어났다. 그곳에서 14세까지 한학을 수학하였으나 뜻한 바 있어 서울로 올라와 <중동중학>에서 신학문을 하였고, 이로써 새로운 세계관에 눈 뜨게 되었다. 1935년 순천에 체류중...Date2003.01.18 Views11871
故 김연수 명창의 아호는 동초다. 그는 1907년 전남 고흥군 금산면 대흥리에서 태어났다. 그곳에서 14세까지 한학을 수학하였으나 뜻한 바 있어 서울로 올라와 <중동중학>에서 신학문을 하였고, 이로써 새로운 세계관에 눈 뜨게 되었다.
1935년 순천에 체류중인 당대의 명창 유성준 문하에서 <수중가> 한판을 떼었고, 동년 7월 서울에 올라와 <조선성악연구회>에 입회, 송만갑 문하에 입문하여 <흥부가>와 <심청가>를 배웠다. 1936년에는 정정렬 문하에서 <적벽가>와 <춘향가>를 전수하였다. 이로서 동초는 판소리 다섯 바탕을 모두 섭렵하여 판소리의 대강을 확인, 이로써 여생을 판소리 연구와 전수에 바치기로 뜻을 세웠다. 1937년 조선성악연구회 이사가 되었고, 동 기관의 전속단체인 <조선 창극좌> 대표가 되면서 창극 중흥에 큰 뜻을 펴기 시작했다. 동년 3월, 일본 <빅타>사의 전속가수가 되어, 5대가의 더늠대목을 뽑아서 소리판 30장을 출간, 1940년엔 O.K사의 전속가수로서 <심청가> 전편과 <장끼타령> 한질을 출간한 것이 그의 출세작이다.
동초는 1945년 <김연수창극단>, 1950년엔 <우리 국악단>을 만들어 그의 창극이론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동초는 흔히 말하는 <창극 판소리>의 새로운 창법을 트기 시작하여 판소리계의 새로운 바람을 불러 이르켰다. 여기에는 많은 반발과 명창인 <임방울>과는 그 견해의 차로 늘 불편한 관계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동초는 새로운 시대에 창극이 부응하자면 <창극 판소리>로 갈 수 밖에 없다는 그의 지론을 굽히지 않았다. 이 점에서 그의 공은 막중하며, 선각사상가라 불러야 할 것이다.
동초는 1957년에는 대한국악원장, 1958년에는 ITI한국본부 부위원장, 1962년에는 문화재보호법에 의한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인 판소리로 지정 받았다. 동초가 평소에 판소리 5바탕을 심혈을 드려 정리 출판한 일은 동리 신재효에 버금가는 위대한 업적으로 판소리사에 크게 빛나는 것이라 믿는다. 특히 사설에 일일이 장단을 붙이고, 발성까지 지도해 놓아서 후생들의 판소리 입문에 크게 돕는 일을 하였다.
동초 김연수가 판소리와 창극에 공헌한 업적은 말할 것도 없이 많다. 그중 또 하나가 동아방송에서 1967년부터 시작한 판소리 5바탕 전판을 녹음하여 140여회에 걸쳐 연속방송한 것은 그의 초인적이며 기록적인 업적으로 본다. 이일은 판소리사에 영원히 남을 금자탑이다. .....발췌 동초소리
1935년 순천에 체류중인 당대의 명창 유성준 문하에서 <수중가> 한판을 떼었고, 동년 7월 서울에 올라와 <조선성악연구회>에 입회, 송만갑 문하에 입문하여 <흥부가>와 <심청가>를 배웠다. 1936년에는 정정렬 문하에서 <적벽가>와 <춘향가>를 전수하였다. 이로서 동초는 판소리 다섯 바탕을 모두 섭렵하여 판소리의 대강을 확인, 이로써 여생을 판소리 연구와 전수에 바치기로 뜻을 세웠다. 1937년 조선성악연구회 이사가 되었고, 동 기관의 전속단체인 <조선 창극좌> 대표가 되면서 창극 중흥에 큰 뜻을 펴기 시작했다. 동년 3월, 일본 <빅타>사의 전속가수가 되어, 5대가의 더늠대목을 뽑아서 소리판 30장을 출간, 1940년엔 O.K사의 전속가수로서 <심청가> 전편과 <장끼타령> 한질을 출간한 것이 그의 출세작이다.
동초는 1945년 <김연수창극단>, 1950년엔 <우리 국악단>을 만들어 그의 창극이론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동초는 흔히 말하는 <창극 판소리>의 새로운 창법을 트기 시작하여 판소리계의 새로운 바람을 불러 이르켰다. 여기에는 많은 반발과 명창인 <임방울>과는 그 견해의 차로 늘 불편한 관계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동초는 새로운 시대에 창극이 부응하자면 <창극 판소리>로 갈 수 밖에 없다는 그의 지론을 굽히지 않았다. 이 점에서 그의 공은 막중하며, 선각사상가라 불러야 할 것이다.
동초는 1957년에는 대한국악원장, 1958년에는 ITI한국본부 부위원장, 1962년에는 문화재보호법에 의한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인 판소리로 지정 받았다. 동초가 평소에 판소리 5바탕을 심혈을 드려 정리 출판한 일은 동리 신재효에 버금가는 위대한 업적으로 판소리사에 크게 빛나는 것이라 믿는다. 특히 사설에 일일이 장단을 붙이고, 발성까지 지도해 놓아서 후생들의 판소리 입문에 크게 돕는 일을 하였다.
동초 김연수가 판소리와 창극에 공헌한 업적은 말할 것도 없이 많다. 그중 또 하나가 동아방송에서 1967년부터 시작한 판소리 5바탕 전판을 녹음하여 140여회에 걸쳐 연속방송한 것은 그의 초인적이며 기록적인 업적으로 본다. 이일은 판소리사에 영원히 남을 금자탑이다. .....발췌 동초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