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세정 앵커 : 왕년의 박치기왕 김일 선수가 오늘 공식 은퇴식을 갖고 40여 년 간 파란만장했던 레슬링 인생에 막을 내렸습니다. 정재용 기자입니다.
⊙ 정재용 기자 : 힘겨웠던 6-70년대, 박치기 하나로 온 국민들에게 희망을 안겨줬던 레슬링 영웅 김일, 이 제는 72살이 된 박치기왕 김일이 팬들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링에 오릅니다. 팬들의 뜨거운 박수 속에 늙은 레슬러는 화려했던 지난 세월을 회상합니다.
⊙ 김일 : 장충체육관에서 박수가 한날 한시에 그냥 제주도까지 울려 가지고 박수소리가 나왔거든 요, 그때를 생각한다면...
⊙ 정재용 기자 : 팬들은 꽃다발과 훈장, 그리고 공로패로 김일 선수에게 감사함을 전했습니다. 수제자 이 왕표를 공식 후계자로 임명한 김일은 은퇴의 아쉬움보다 더 큰 희망의 메시지를 남겼습 니다.
⊙ 김일 : 후배들을 생각한다면 꺼지는 사람이 있어야 이제 솟아나는 사람이 있듯이, 그러니까 섭섭 한 생각은 하나도 없고요.
⊙ 정재용 기자 : 링을 떠나기 전 마지막 종소리가 울리고 김일의 눈가에는 팬들과 함께 했던 40여년의 세 월이 스쳐갑니다. 지금은 아련한 추억의 스포츠가 된 프로 레슬링, 김일의 퇴장과 함께 박치기왕의 추억은 이제 사각의 링 위에 남겨진 전설이 됐습니다.
⊙ 김일 : 오직 감사하다는 것 뿐이에요. 뜨거운 박수와 열렬한 성원은 언제나 저로서는 간직해야 되고 또 잊어서도 안되고...
⊙ 정재용 기자 : KBS뉴스 정재용입니다.
“아까 링위에서 제가 하는 말 들으셨죠. 그것이 저의 진심입니다.” 김일선수는 레슬링 부흥이 여생의 유일한 소원이라고 말했다. 왕년의 박치기 왕 답게 이마에는 흉터들로 금이 가 있었다. “이마를 꿰맨 바늘 수는 셀 수 없을 지경입니다.”
93년 일본에서 귀국 후 건강은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70세라고는 하지만 다리를 약간 저는 것 외에는 건강해 보였다. 체중을 묻자 “옛날에는 130㎏나갔는데 요즘은 100㎏밖에 안돼요”라며 할아버지 같은 미소를 짓는다. 운동은 가벼운 산책과 아령이 전부. 관전 중 휴대용 혈압측정기로 혈압을 재며 “옛날에는 150㎏짜리 역기를 들었는데 요즘은 안돼요”라고 말한다.
김 선수의 주소는 서울 노원구 노원 을지병원 특별병실. 을지병원 이사장 박준영 박사의 배려로 편히 지내고 있다는 것이 김 선수의 이야기다. 왼쪽 대퇴부에 정맥류가 많아 혈액순환이 좋지 못한데다 목디스크와 각종 성인병이 김 선수의 증세다.
후계자로 지명한 이왕표선수가 명맥을 이어가고 있지만 성원이 60~70년대 만큼 못해 어렵다는 것이 그가 보는 한국 프로레슬링의 현주소다. 팬들의 사인공세를 차근차근 받아 주며 대답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아직 위엄과 힘이 서려있었다. 그가 정의하는 프로레슬링은 “각종 스포츠를 종합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제자 자랑을 잊지 않는다. “이왕표는 세계가 인정하는 대단한 선수다. 외국이라면 훨씬 더 클 수 있는데 안타깝다.” 그는 외국 프로레슬링계에 관심도 많은 듯했다. 최근 미 대선 예비선거 후보로 나선 프로레슬러 출신의 미네소타 주지사 벤추라 이야기를 꺼내며 “우리나라에서도 프로레슬링이 다시 인기를 되찾을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