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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도전] ‘박치기왕’ 김일 [63]

by 운영자 posted Jul 0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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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그해 여름은 무척이나 무더웠다. 도쿄 니혼바시 닌교초에 위치한 역도산도장에 덩치 좋은 한 사내가 스승 역도산과 함께 나타났다. 시커먼 피부에 호리호리했고 눈매가 날카로웠다. 스승이 그를 프로레슬링 선수로 스카웃하기 위해 데려온 것처럼 보였다.
 
스승은 그 젊은 친구에게 도장 규모와 이용 방법에 대해 열심히 설명해 줬다. 그리고 역기를 손으로 가리키며 저것을 어떻게 들면 어느 쪽 근육이 발달한다는 것까지 덧붙이는 것이었다.
 
난 그것이 이상했다. 원래대로라면 스승은 레슬링에 입문시키는 자를 그렇게 따로 불러 설명해 주지 않았다. 고참이든지 혹은 나를 불러 "야, 이 친구 도장 규칙과 예의부터 가르쳐"라고 할 뿐이다. 그런데 그에게만은 친절했고 상당히 호의적이었다. 난 스승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살다 보니 별일 다 있구나' 생각하며 놀랐다.
 
난 그 친구가 누군지 무척 궁금했다. 그런 의문이 생길 즈음 그 친구는 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 친구가 잊혀질 즈음 어느 날 그가 다시 스승과 함께 나타났다. 이번에는 가방에 운동복을 챙기고 나타났다. 스승은 여전히 그에게 특별 대우를 해 줬다.
 
그리고 스승은 도장에서 훈련에 열중했던 우리를 불렀다. "자, 지금부터 이 친구를 소개하겠다. 이 친구는 도에이(東映) 플라이어즈에서 활약하는 하리모토 이사오(장훈)다. 프로 경기가 없는 날이면 우리 도장에서 운동을 하니 모두 잘 대해 주기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스승의 소개가 끝나자 그는 우리에게 꾸벅 인사를 하며 "앞으로 잘 부탁한다"라고 했다. 난 그때까지만 해도 스승이 일본인 야구 선수를 후원하는 줄 알았다. 외모와 스타일로 봐선 조선인 같았지만 일본어를 아주 잘 구사해 헷갈렸다. 그런 의구심이 들어 혹시 조선인이 아닌가 생각에 그에게 다가가 고향을 물었더니 "히로시마"라고만 말했다.
 
가끔 도장에는 도세이카이(동성회) 오야붕 정건영이 찾아왔다. 정건영도 후배들과 함께 운동을 했는데 그때 하리모토와 마주치면 "하리모토, 잘돼 가"라며 근황을 묻는 것이었다.
 
정건영이 누구인가. 스승과 절친한 친구이자 도쿄 긴자를 주름잡는 동성회 오야붕이 아닌가. 애송이로 보이는 그 하리모토가 스승과는 물론 정건영과 친하니 나이는 어리지만 보통이 아닌 것을 알았다. 스승은 그를 정건영으로부터 소개 받았던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스승과 정건영에게 "형님"이라 호칭하는 것이었다. 나보다 나이가 열 살 이상 아래로 보이는 그가 형님으로 부르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리모토는 매일 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도쿄로 원정 경기를 오거나 도쿄에 비가 와서 우천 관계로 경기가 열리지 않는 날이면 왔다. 일본의 이곳저곳에서 경기를 하다 보면 지칠 만도 한데 그는 그런 내색조차 하지 않고 레슬러들도 깜짝 놀랄 정도의 훈련을 소화해 냈다. 그는 대부분 근력을 키우는 훈련에 집중했다.
 
난 속으로 '야구 선수가 베팅 연습만 열심히 하면 되지 근력을 키워 뭘 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이것도 훗날 알았지만 야구 선수가 좋은 타격을 하기 위해선 근력이 필수였다. 스승은 그에게 근력을 강화시키는 훈련 방법을 상세히 가르쳐 줬다.
 
운동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그가 옷을 벗으면 레슬링 선수보다 더 근육이 좋았다. 그의 몸이 점차 헤라클레스로 바뀌어 가자 스승은 "이사오, 레슬링 선수로 전환해라. 내가 멋지게 키워 줄게"라며 은근슬쩍 꾀기도 했다.
 
그런데 난 충격적이고 놀라운 사실을 전해 들었다. 그가 나와 같은 조국이라는 것과 한국인 이름은 장훈이라는 것이다. 또 오른 손가락 두 개가 붙은 불구라는 사실까지 알게 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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