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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도전 : 박치기왕 김일 [5]

by 운영자 posted Jul 0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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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면 누구나 한 차례 이상 죽을 고비를 경험한다. 더욱이 광복과 6.25전쟁 등 질곡의 한국 현대사를 겪어 온 사람들에게 죽음은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나도 숱한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살았다. 사각의 링은 말할 것도 없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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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대 초 역도산체육관 앞에서 일본 학생들과 기념 촬영을 했다.
이들을 보니 1948년 11월 발생했던 여순 사건 때 희생된 친구와 선,후배들이 생각난다.

 

 

1948년 11월 19일 나는 죽음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그날 여수에 주둔하고 있는 14연대의 좌익 계열이 제주 4·3사태 진압 출동을 거부하고 남북 통일과 인민 해방을 앞세워 봉기했다. 이른바 ‘여순 반란’ 사건이었다. 그때 내 나이는 우리 나이로 스무 살이었다.

 

사실 난 나를 잘 알고 있는 기자들과 인터뷰할 때면 이 사건과 나와의 연관성에 대해 질문을 받곤 했다. 그럴 때면 “당한 것만도 지긋지긋한데 대답은 무슨 대답이냐” 며 질문을 회피했다. 그만큼 이 사건은 기억조차 하기 싫은 끔찍한 사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사건으로 인해 1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죽었다.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의 넋을 위로하며 이 사건의 악몽을 더듬어 본다.

 

나는 키 크고 마른 농사꾼에 불과했다. 집이 고흥이라 고흥과 가까운 여수와 순천을 자주 오갔다. 한 해 지은 농사에서 거둬들인 산출물과 수산물을 팔기 위해 내 집 드나들 듯 많이 오갔던 곳이 여수와 순천이었다. 또 가끔 이곳에서 개최되는 씨름대회에도 참가했었다.

 

좌·우익의 대립이 극심했던 1948년 11월 말. 여수시가 불바다가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민중 봉기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군과 경찰은 봉기에 가담한 자들을 색출하기 위해 곳곳에서 보복적 테러·방화·약탈. 그리고 무자비한 학살을 자행했다.

 

그 학살은 내 주변을 비켜가지 않았다. 친구와 동네 사람들도 희생당했다. 당시 나는 결혼한.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좌익도 우익도 몰랐다. 그저 농사 짓고 팔고. 가족을 먹여 살리는 데 급급했었다. 그런데 피 끓던 청년 시절이라 나의 친구들이 희생당했으니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울컥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나는 단지 억울하게 죽은 친구들의 넋을 조금이라도 위로해 주기 위해 봉기에 가담하려고 했었다. 그리고 친구들과 가담 계획을 세웠었다. 우리는 거금도를 출발. 여수로 가기로 작정했다. 그 다음날 일찍 약속 장소로 갔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친구들은 나만 빼고 가버렸다. 나에게 남겨진 것은 쪽지 한 장. “김일아. 넌 가정이 있지 않느냐? 우리만 간다”였다.

 

결국 내 고향 거금도도 여순 사건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군인과 경찰이 우리 마을까지 들이닥치며 여순 가담자 색출에 나섰다. 당시 진압군들은 무고한 사람들을 마구 학살했다.

 

나는 죽음의 그림자를 피하기 위해 낮에는 산으로 올라가고 밤에는 내려왔다. 하지만 그해 12월 중순경 군경에 체포되고 말았다. 뚜렷한 이유가 없었다. 단지 친구들이 죽은 것에 대해 분노했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은 아주 단순했고 간단했다. 우익 진영과 진압 군인으로 이뤄진 몇 명의 심사위원들이 시민들을 열 지어 앉혀 놓고 사람들의 얼굴을 훑고 다니다가 가담자가 눈에 띄면 “저 사람”하고 손가락질만 하면 죽이는 것이었다. 곧바로 학교 건물 뒤에 파놓은 구덩이 앞으로 끌고가 불문곡직하고 즉결 처분(총살)했다.

 

내가 잡혀 갔을 때는 남녀노소 많은 사람들이 불안에 떨고 있었다. 숨소리 하나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등골이 오싹한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때 심사의 또 다른 기준이 있었다. 교전에 참석한 자. 총을 만진 자. 미국 군용 제품을 갖고 있는 자. 머리를 짧게 깍은 자 등.

 

뼛속까지 파고드는 초겨울의 찬 서리를 맞으며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두려움에 떨어야만 했었다. 다행히 난 이런 기준에 들지 않았지만 다시 광주까지 끌려갔다. 그리곤 군 검찰로부터 심문을 받았다.

 

“너. 빨갱이지?” 군 검사는 집요하게 물었다. “아닌데요”라고 말해도 소용없었다. “왜 국가에 반역하는 부역(附逆)을 했냐”며 마구 캐물었다. 하지만 나는 부역이 뭔지도 몰랐다. 그래서 “부역이 뭡니까”라고 되물으면 “이 자식 부역도 몰라”라며 다시 심문이 이어졌다.

 

군 검사는 내가 계속 “모른다”는 답변으로 일관하자 책상을 ‘꽝’ 쳤다. 그 순간 법모가 떨어졌다. 나는 꿇어 앉은 상태에서 법모를 얼른 주워 허벅지에 대고 먼지를 닦은 후 제자리로 올려놓았다.

 

군 검사는 그런 내 모습이 너무 천진난만하게 보였는지 씩 웃었다. “자식. 너 같은 애가 왜 끌려왔어”라며 부하 수사관에게 “이 자식 빨갱이 아니니 풀어 줘”라고 말했다. 기적처럼 풀려났다.

 

그후 난 일상으로 돌아왔다. 여순 사건이 기억 속에서 점차 사라질 즈음 씨름대회에 출전했다. 그때 김기수란 후배가 나를 찾아와 꾸벅 인사했다. 그가 우리나라 최초 프로복싱 세계 챔피언 김기수였다.

 

정병철 기자
사진=이호형 기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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