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항 전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이렇게 부둣가에서 밤을 지새우고 내일 하루만 배에 몸을 맡기면 역도산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기대가 잠을 달아나게 했다. 이 바다를 건너면 역도산이 틀림없이 나타날 것이다. 동화 <엄마 찾아 삼만리>처럼 나는 역도산 찾아 현해탄을 건너게 된다.
나의 이 무도하고 원대한 밀항 계획은 비밀이었다. 나한테 몰래 위조 선원증을 부탁받은 중간 매개자 이외는 아무도 몰랐다. 친한 친구는 물론 가족에겐 더더구나 비밀이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 괜한 분란과 걱정을 끼칠 것 같아 나는 나만 아는 비밀로 간직한 채 배에 올랐다.
사실 나라고 밀항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일본 도착 그 이후 미래는 신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미래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을 잠재운 것은 역도산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었다.
여수항을 출항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선원들과 몇 마디 나눴다. 그들은 내가 밀항하는 이유에 대해 무척 궁금해 했다. 그리고 그들의 질문은 한결같았다.
"왜 밀항하느냐, 고향에는 누가 살고 있는가, 가족들은, …?" 일상적 질문이었지만 나는 가족 이외에는 답변하지 않았다. 밀항 이유에 대해선 그냥 "돈 벌려고"라며 둘러댔다.
"역도산 제자가 되기 위해 밀항한다"라고 말하면 그들은 아마도 나를 정신 나간 사람쯤으로 봤을 것이다. 나도 나를 그렇게 생각했으니. 밀항이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을 뿐만 아니라 `밀항자인 내가 죽었다가 깨어나도 영웅인 역도산을 만날 수 있을까`라는 의문심이 드는 걸 나 자신조차도 억누르기 힘들었다.
기분과 분위기를 잡치게 하는 대화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역도산 아십니까?"
"아! 알고 말고요. 프로레슬링 하는 사람이죠."
선원들은 역도산을 잘 알고 있었다. 일본인 앞에서 기죽는 그들이 목에 힘줄 수 있는 때는 `조선인 역도산`을 이야기할 경우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음 질문도 역도산으로 이어졌다.
"혹시 역도산 사생활은 알고 있습니까. 가령 집과 체육관이 어디인지 아십니까?"
선원들은 내가 왜 갑자기 역도산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는지 의아해 했다. 이들은 자기네끼리 얼굴을 쳐다보면서 "역도산이 동경에 살지"라고 반문했다. 그들도 역도산이 동경에 산다는 것 정도를 빼고는 사생활에 대해서는 별달리 아는 바가 없었다.
그 가운데 나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함경도가 고향인 역도산이 열여섯 살 때인 1940년 겨울 부산에서 관부연락선에 몸을 싣고 일본 시모노세키항으로 갔다는 것이었다. 관부연락선은 한국과 일본 사이에 얽혀진 숱한 그늘진 역사를 안고 있는 배였다.
역사의 반복일까. 나는 비록 관부연락선은 타지 않았지만 역도산이 혈혈단신 현해탄을 건넌 지 16년 만에 목선을 탔다. 현해탄은 마치 신이 정해 준 코스 같았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밀항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충격적 사실을 전해 들으면서 내일이면 헤어질 이들에게 굳이 나의 밀항 이유를 숨길 까닭이 없었다.
"저는 역도산 제자가 되기 위해 일본으로 가는 겁니다."
이 말을 듣자 그들은 놀라 자빠졌다. 내가 호남 씨름왕 출신인 줄은 아는 그들이었지만 어이가 없는 듯 "왜 그런 무모한 짓을 합니까? 내일 시모노세키항에 도착한 후 우리랑 다시 여수로 돌아갑시다"라고 권유했다. 하지만 그럴 순 없었다. 어떻게 실행에 옮긴 밀항인가.
나는 주위가 온통 어둠에 둘러싸인 선상에서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배는 내일 새벽녁 시모노세키 항구에 도착할 예정이다. 그 항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나의 수수께끼는 생각할수록 커져만 갔다.
선상에서 짙게 퍼져 가는 어둠을 응시하고 있었다. 암흑의 바다에선 시계는 거의 제로 상태다. 한국에서 청승맞아 부르지 않았던 <아리랑> 노래가 나도 모르게 절로 나왔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청천 하늘엔 잔별도 많고/우리네 가슴엔 수심도 많어/ ….` 가슴이 뭉클해졌다.
파도에 출렁이는 배는 나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가족을 남겨 두고 밀항한 나를 벌이라도 주는 듯싶었다. 배멀미를 계속했다. 한 끼도 먹을 수 없었다. `일본에 닿기 전 배에서 죽겠구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가족이 떠올랐다. 가족을 생각하니 온몸이 파도에 맞는 기분이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아버지는 밀항 전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그때는 몰랐는데 훗날 그것은 유언이었다.
정병철 기자
사진=이호형 기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