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3화 : 감 잡았나요?
내 딸네미가 이제 사회생활을 배우고자 집에서 멀지 않은 유치원에 다닐 때는 아직 통학차가 없던 시절인지라 엄마가 데려다 주고 데리려 가고 하였는데, 어쩌다가 늦게 데리려 가면 집으로 전화가 온다.
“엄마, 왜 데리려 안 와?”
“응. 집에 일이 있어 조금 늦었다.”
“그럼 오지 마. 내가 혼자 올께!”
아직까지 ‘오다’와 ‘가다’의 개념이 정리되지 않은 딸네미는 어떤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의 이동을 ‘오다’라는 단어 하나로만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 어린 딸네미는 그렇다 치더라도 국어공부 좀 했다고 자부하고 있는 나는 어휘를 잘 선택해서 쓰고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면 자신이 없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어떤 상황을 설명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설명방법이 직접적 것과 간접적인 것이 있다.
설명은 직접적인 것이 가장 좋지만 직접적으로 설명하기 곤란한 어떤 상황에서는 간접적인 방법을 사용해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때 그 간접적인 설명이나 혹은 상대방의 몸짓(손짓, 발짓, 눈짓 등 모든 시그널)으로 그 뜻을 이해하여 알 수가 있을 때 우리는 보통 ‘감잡았다’라고 표현한다.
이 ‘감잡았다’는 표현은 인터넷 등 어디를 뒤져 보아도 그 풀이가 없으니 앞으로 이 단어를 사용해야 되는 것인지 사용하지 않아야 되는 것인지 감을 못 잡겠다. 오히려 그 반대어인 ‘감잡히다’는 ‘남과 시비를 다툴 때, 약점을 잡히다.’라고 풀이하고 있는데 말이다.
또한 ‘뒤뿔치기’와 ‘뒤통수치다’라는 단어가 있다.
이 단어들도 어감 상으로는 뒤에서 남을 해찰하는 정도의 뜻으로 유추되는데 실제의 뜻은 ‘남의 밑에서 그 뒤를 거들어 도와 줌.’ 과 ‘바라던 일이 이루어지지 아니하여 매우 낙심하다.’라고 되어 있어 당초의 유추와는 정반대인지라 나의 놀라움은 클 수밖에.
또, 우리가 금산에서 자주 사용했던 ‘보초대가리 없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조금은 싹수가 없는 아랫사람을 비하할 때에 쓰는 말인데, 여기에서의 ‘보초’도 ‘대가리’와 어울려 별로 좋은 의미로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보초’는 ‘보추’의 사투리로 확인되며 ‘보추’는 ‘진취성이나 내뛰는 성질’이란다. 결국 ‘보추가 없다’는 것은 진취성이 없다는 뜻이 되어 듣는 이에게는 욕이 된다..
마지막으로 ‘에누리’란 단어의 뜻을 살펴본다.
보통 ‘에누리’ 하면 우리는 ‘물건 값을 깍는 것’으로만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풀이 ①과 같이 ‘물건 값을 더 많이 부르는 일’도 에누리라고 하고, ④와 같이 ‘용서하거나 사정을 보아 주는 일’도 에누리라고 하니 많이 헷갈린다.
어째 감 잡았나요? 세상만사가 다 이렇게 복잡하고 어렵답니다!
감잡히다 - 남과 시비를 다툴 때, 약점을 잡히다.
뒤뿔치기 : 남의 밑에서 그 뒤를 거들어 도와 줌.
뒤통수치다 - 바라던 일이 이루어지지 아니하여 매우 낙심하다.
보추 - (주로 ‘없다’와 함께 쓰여) 진취성이나 내뛰는 성질.
에누리 - ①물건 값을 받을 값보다 더 많이 부르는 일. 또는 그 물건 값. ②값을 깎는 일. ③실제보다 더 보태거나 깎아서 말하는 일. ④용서하거나 사정을 보아주는 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