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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 우두(牛頭) : 마을의 지형(地形)이 소의 머리와 같이 생겼으므로 쇠머리라고 부르다가 한자를 訓借(훈차)하여 우두(牛頭)라 불러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04.10.15 04:39

김삿갓

조회 수 2513 추천 수 0 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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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지금 여행할 시간이 있다면 제일 가보고 싶은 곳이 강원도 영월이다.
영월은 내가 두 번인가 가본 적이 있었지만 또 가오고 싶은 이유는 그 곳에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동경했던
사람이 계시기 때문이다.

바로 난고 김병연 선생님!
우리에게는 방랑시인 김삿갓으로 더욱 많이 알려진 천재시인 김삿갓.
정비석 선생님께서 1985년엔가 「소설 김삿갓」발표하면서 머릿글에 당시 선생님의 묘소를 찾아가는 길을
묘사한 대목을 읽은 기억이 있어 여기 싣는다. 그 때에는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을 정도의 깊은 골짜기였는데
이제 그 곳을 성역화해서  선생님을 그리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쉽게 갈 수 있다고  하고, 또  매년 10월에는
삿갓문화제가 열리고 있다고 하니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가봐야겠다.


죽장에 삿갓 쓰고 전국을 떠돌던 김삿갓도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마침내 1863년 3월 25일, 57세의
나이로 전라도 화순군 동복면에서 객사를 하게 된다.  부친의 행방을 찾아헤매던 익균은 부친의 유골을 자기
집 가까운 영월로 이장을 해온다.
역사적 기록은 여기까지였다. 이후 김삿갓이라는 이름은 조선 팔도의 그 어느 누구도 모르는 이 없이 세월을
뛰어넘어 전해져 내려왔지만 아무도 김삿갓의 묘에는 관심이 없었다. 까마득하게 잊혀질 뻔했던 김삿갓의 묘
를 찾아낸 것은 80년대 초 영월 읍내의 유지였던 고 박영국 선생 덕택이었다.
전국으로 널린 김삿갓의 시편과 일화를 모으며 그 누구도 몰랐던 김삿갓의 시를 39편이나 더 찾아내기도 했던
선생은 영월 구석구석을 수소문한 끝에 마침내 와석리 노루목에서 김삿갓의 묘를 찾아내기에 이르렀다.  그리
하여 안동 김씨 대종회에서는 그 사실을 확인한 후에 사초를 하고 정식으로 묘비를 세우게 되었다. 그것이 84
년도의 일이다.
영월읍내에서 와석의 노루목까지는 70리길. 당시만 해도 노루목까지 가려면 버스를 타고 와석까지 가서 거기
서부터 20리 산길을 걸어가야 했다. 지금은 그 산길 20리 계곡이 김삿갓계곡이라 하여 모두 포장되어 묘역까
지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지만 말이다.
발견 이듬해인 85년 9월에 소설가 정비석은 <소설 김삿갓>을 쓰기 위해 그에 앞서 일흔다섯의 노구를 무릅쓰
고  김삿갓묘를 찾게 되는데 그 일화가 매우 재미있다.

영월읍에서 하동면 와석리까지는 70리밖에 안 된다기에, 지프라면 쉽게 다녀올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50리쯤 가면 제법 큰 개울이 있는데, 만약 지프가 못 건너가게 되면 사람은 옷을 벗고 건너가, 20리쯤은
걸어서 다녀와야 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은근히 걱정스러웠다. 70을 넘은 늙은이
가 옷을 벗고 물을 건넌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질색이기 때문이었다.
우리 일행은 천신만고하여 마침내 와석리의 노루목 마을에 도착하였다. 마을이라는 것은 이름뿐이고, 개울
가 좌우편 언덕배기에 서너 채의 집이 쓸쓸하게 매달려 있을 뿐인 곳이었다.  박영국씨가 경사진 언덕배기
위로 달려 올라가더니, 화전 한 귀퉁이에 오직 하나뿐인 무덤을 가리켜 보이며 말했다.
"이 무덤이 바로 김삿갓의 무덤입니다."
첫눈에 보아도 외롭기 짝없는 무덤이었다. 그 무덤 앞에는 높이가 두어 자 가량 되어보이는 묘비가 서 있는
데 그 묘비에는 "蘭皐 金炳淵之墓"라는 일곱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이렇듯 김삿갓묘는 발견되고 나서도 접근하기 어려운 점으로 인하여 한동안 관리도 소홀하게 이루어졌으며
찾는 이들도 뜸한 편이었다. 그러던 것이 90년대 초부터 진입로 공사가 이루어지고 묘지 부근 밭을 모두 사
들여 묘역일원을 개발하면서부터 전국에서 시인을 기리는 많은 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98년에 제1회 난고 김삿갓문화큰잔치가 개최된 이후 매년 10월이면 묘역일원에서 문화제가 열리며, 근처에
김삿갓문학 기념관이 건립예정이고, 그리고 좀 더 들어간 골짜기에 김삿갓 생가가 복원 예정에 있다.


글 서두에서 밝혔듯이 어렸을 적에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동경했던 사람은 난고 김병연 선생님이었다.
어찌 감히 나 같은 필부가 흉내라도 낼 수 있을까만 내가 그 분의 겉 흉내라도 내볼 욕심으로 그 분이 쓰고 다니
셨던 삿갓을 구하여 듬뿍 술(막걸리)에 절여서 현관의 벽에 걸어 둔지가 어언 20여년!
그 때만 해도 내가 그 삿갓을 쓰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가 버릴까 봐 전전긍긍했던 우리 마눌님이 글쎄 최근 언젠
가 나도 모르게 그 삿갓을 창고에다 옮겨 놔  버렸지 아닌가.
몇 년 전만 같아도 벼락땅불 날 일이만 이제는 (나도 힘이 예전같이 못하여?) 마눌님을 탓할 수가 없어 현관으로
옮겨올 생각은 엄두도 못 내고 혼자서만 내색도 아니하고 몰래 창고에 가서 삿갓을 만져보곤 하고 있으니..........
(혼자 말로) 참 세상 많이 변했다!
집안에 고이 둔 그 삿갓도 20년이 지나자 하얗게 색깔이 바래 가고 있는데 선생님과 함께 40년 동안을 모진 풍상
을 겪었을 그 삿갓은 더 말해 무엇할까!

이 곳 광주의 무등산기슭(제4수원지 위)에도 선생님의 시비가 있어(1978년에 건립했다고 씌여 있음) 이따금씩
(바람 쏘이러) 소주 한 병 들고 다녀오고도 하지만, 이제 마음으로만 동경했던 선생님의 묘소나마 방문할 수 있다
니 그 아니 반가운가.

마지막으로 걸식의 서러움을 숫자를 이용하여 회화적으로(한시의 격식을 파괴하여) 묘사한  선생님의 시 한수를
옮겨 실으며 맺는다.

二十樹下三十客 (이십수하삼십객)
四十村中五十食 (사십촌중오십식)
人間豈有七十事 (인간개유칠십사)
不如歸家三十食 (불여귀가삼십식)
(스무나무아래 앉은 설운 나그네에게
망할놈의 동네에선 쉰 밥을 주는구나
인간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고향집에 돌아가 설익은 밥 먹느니만 못하구나)

?
  • ?
    김병옥 2004.10.16 23:13
    철용아

    나를 서울로 보내 버리고 가슴이 허전했구나
    방랑 시인이 생각나시게
    그렇게 내가 보고 싶으면 전화라도 하지
    혼자서 그렇게 고독을 삼키며
    푸른 가을 하늘에 시선을 주고 있는
    철용이가 생각나서 빨리 광주 가고 싶다.

    아니면
    세무회계론을 뒤적이다가
    술잔이 아른거리고
    나를 포함해서 친구들의 농담소리가 귀전을 맴돌아
    회계론의 "회"자가 허공을 떠 다녀서
    친구들과 함께
    그 방랑 시인같이 훨훨 날아 다니고 싶어서 그러지

    나도 좋아 하는 孤山의 싯귀 한구절을 읊어 줄테니
    딴 맘 갖지 말고 열심히 정진하기 바란다.


    잔들고 혼자 앉아 먼뫼를 바라보니

    그리던 님이 오다 반가움이 이러하랴

    말씀도 웃음도 아니어도 못내 좋아하노라
    (山中新曲 중 漫興)

    광주가서 보자.
  • ?
    무적 2004.10.16 23:32
    문디같은 자석, 빙하고 자빠졌네!
    어지께 새복에 수원갔따가 오늘 광주에 왔는디
    뭐가 허전하고 했다냐
    수원서 동효도 만나고
    우리 직원들하고 노래방에 가서 난리부르스도 추고
    또 다른 사람들 들여보내고
    새복 두시까장 놀았는디.

    그래도 보고싶다.
  • ?
    콩새 2004.10.17 22:28
    어렸을적에
    `김삿갓 방랑기`를 무척 좋아했던 기억이 나네요.
    구름처럼 바람처럼 유랑하며
    산.천.초.목을 누비는 김삿갓이 너무 신기하기만 했었죠.
    우리네 보통 사람과는 생김새나 모는게 다른
    산신령 같을거라는 상상을 했드랬어요.

    아이들 좀 크면 저도 좋아하는 그림도 그리고 (조금 그리다 말았죠.)
    예전에 즐겨 다녔던 사진 여행도 다니고
    그러고 싶어요. 꼬마 아이들이 되고 싶은게 많은것처럼
    나이를 먹어도 하고 싶은게 많아서 탈이예요.

    병옥 선배님 윗글을 언니께서 보시면 섭하다 하시겠네요.
    남자들끼리 뭐하는거냐구요.
    두분 오라버니 주고 받으시는 우정이 저도 시샘이 나네요...ㅎㅎㅎ

    편안한 밤 보내세요.
  • ?
    무적 2004.10.18 01:09
    오늘(아니 어제) 무등산 꼬막재엘 가렸더니
    마지막 가는 님(억새)의 발자취가 아쉬운 듯
    광주 사람 다 모였나 발 뒤딜 곳 없어서
    아쉬운 맘 뒤에 두고 발길을 돌렸는데
    내 부르는 소리 있어 발길을 멈췄다오.

    내 부른이 누구인가 김삿갓 어른이오
    어이 친구 다시 온다 그 약속 언제였나
    그대 채취 느껴지니 내 아니 부를손가
    당신 아니 불러도 내 아니 가겠소만
    내 잊지 아니하니 그 더욱 반갑구려

    너 내 되고자 나 너 되고자하는
    선생님의 깊은 뜻 만고에 사무친데
    우리네 못 난 후생 제 앞 길만 생각하니
    지하에 계신 선생님 안타까운 그 눈물
    당신의 깊은 뜻을 내 아니 모르겠소!

    선생님의 무등산 시비에서 한 컷 찍어서
    맨 위에 올렸습니다.
  • ?
    김병옥 2004.10.18 10:57
    어~이! 콩새 ! 안녕하신가

    어제도 서울 집에서 점심을 먹고
    돌이(개)와 마당에서 눈물어린(거짓말) 송별식을 갖은 다음
    광주행 기차에 몸을 싣고 깊어가는 가을정취를 만끽하며
    광주에 거의 왔을 무렵
    그 웬수 무적이가
    너 어디냐?
    나 여기 있는데 얼른 와라! 하지 않는가
    그래서 나도 굳이 사양할 사람도 아니고 해서 저녁도 먹고 또 한잔 했지
    또 존경하는 선배 누이되시는 자미원 妹氏와 통화도 하고 그랬네

    친구를 사귐에 있어 일정한 규칙은 없으며
    다만 信義만 염두에 두면 된다고 보네
    아무리 고결한 이상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동기가 불순하면 그것은 이미 信義가 아니며
    조금도 의탁하거나 피해를 줌이 없이
    오로지 信義가 가져다 주는 아름다움으로
    차곡 차곡 쌓아 나가다 보면
    서로의 尊重으로
    마음의 큰 힘으로
    남을 것이라 여기네

    남여간에 사랑하고 싫어하는 것은
    명확한 因果관계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인간 본연의 알 수 없는 어떤 느낌에 의한다고 하지
    우정도 이와 비슷하지만
    남여관계는 인간 본연의 性적 욕구와 긴밀하게 결부되어 있어
    남여관계의 생명도 성적 욕구에 따라 결국 결판이 나고 말지
    그래서 우정이 뒷받침되지 않은 남여관계는 3년을 넘기기 힘들며
    세상에 태어나 새롭게 맺어진 부부는 어느 누구보다도 가장 가까운
    친구라 하는 것은 애정보다도 두사람의 마음 속에 굳은 信義가 쌓여서
    영원한 친구가 되어 가는 것이라 믿네.

    콩새 !
    이 글을 한번에 다 작성해 버려야 하는데 손님이 오셔서
    30분정도 이야기 하다보니
    할 이야기가 많았는 것 같았는데 금새 전부 잊어 버렸네

    어쨌든
    信義는 설사 분순하지 않더라도
    어느 무엇과 연결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으며
    그래야만 그 생명이 길어지며 깊이가 생기네
    인간관계의 최고봉인 연인관계도 性욕과 결부되어 있어
    그 생명에는 한계가 있다고 예를 들어 주었지

    콩새 !
    철용이와의 관계가
    자네들이 더욱 시샘하는
    우정이 쌓이는 관계가 되기를 기대하며

    다음에 또 이야기 하세.
  • ?
    대풍이 2004.10.29 07:02
    (h3)선배님!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금산 15회 구요, 신촌 중동이 저희 고향집입니다.
    선배님이 쓰신 글들을 다 읽어불다가 날이 새 버렸다는거 아닙니까!ㅋㅋㅋㅋ
    너무나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특히 황당한 야기 때문에 배꼽이 빠진줄 알았습니다.
    지도 그런 경험이 많이 있어서리....,ㅋㅋㅋ
    글구 원래 지도 워낙 돌아다니기를 좋아해서 한때는 제 아이디가 김삿갓 이었는데...,
    그만큼 지도 김삿갓을 좋아 했었는데 선배님 처럼은 아니었나 봅니다.
    찾아 다니실 정도로 좋아 한다는기 그기 보통 사람은 아닐건디...,
    무조건 지가 졌습니다.
    앞으로는 절대 김삿갓 아이디를 쓰지 않을 랍니다.
    저두 함 광주가면
    선배님 따라 제4수원지에 가 시비앞에서 막걸리나 한사발 얻어먹어 볼라그라는디
    함 데려가 주시길 간절히 빌랍니다.
    리플에 전화번호라도........, 일썽 감사 드릴랍니다.



  • ?
    무적 2004.10.29 07:31
    저의 글을 다 읽었으면 저에 대해서 알 수 있었을 텐데.

    자유게시판과 동문회(금산초교 40회, 중학교로 치면 4회)에도 글 올렸으니까.

    017-604-4991, 062-456-4991(집), 062-370-5344(사무실).

    연락하면 막걸리 한 사발 정도는 같이 마실 수 있을거야.

    참,

    금산사투리 방에도 와 봐요.

    좋은 선배님들을 만날 수 있을테니까!

    나의 처거는 신촌 내동(옛적 김공장).
  • ?
    대풍이 2004.10.30 04:19
    전화 번호 입력 해 놓았습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까정 선배님 글들을 찾아 찾아 뎅기면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많은 정보 넘 넘 고맙습니다.
    시골은 잘 다녀 오셨는지 궁금 합니다.
    그럼 다음에 광주 가면 꼭 한번 연락 드리겠습니다.
    아 글구 혹, 아실랑가 모르것네요.
    신촌 중동에 김주호 형님, 김화기형님,김원주 형님
    이분들은 사촌 형님들입니다.
    연배가 비슷 할것 같아서...,
    저의 친 형은 김대기 라고 하는데 아실랑가요?
    그럼 담에 또 문안 드리겠습니다.
  • ?
    김甫甫 2004.10.31 21:16
    무적! 수원에서 만났을 때 "좀 더 진지한 대화를 했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이으로 이제서야
    처음 거금도를 찿았는데 참으로 유익하고, 아련한 추억을 더듬게 한다.
    그리고 골몰에 사는 병옥이 글도 나를 파안대소하게 만든 멋쟁이여___
    그리고 또 김 궁전 전화도 못하고 사는 바쁜 중년이었던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쇠머리 무적,하라패(이 표기가 맞남)김궁전,골몰 병옥이!~ 중년의 멋을 제일 잘아는 친구들이 되길 바라고, 자주 거금도에서라도 만나자.
  • ?
    무적 2004.11.01 06:08
    가장 반가운 손님이 오셨구먼.

    동효, 반가우이.
    엊그제 수정,수복이 아버님이 타계하셔서 갔다가
    기주랑 상만이 만나서 자네 얘기도 하고 했네.

    이 곳(특히 금산사투리)에서라도 자주 만나세.
    정말 반갑네.
    닉네임도 아주 좋고!
  • ?
    김병옥 2004.11.01 15:22
    우리 동효를 여기서 만날 수 있다니 너무 반갑다.
    봄 동창회때 오랫만에 만났지만
    동창회 진행상 긴 이야기도 못했는데
    다시 만날 수 있어 무적이 말대로 반갑게 나도 맞이해 줄께

    그리고 닉네임
    甫甫에 대해 알고 싶어
    옥편도 찾아 보고 했는데
    아주 깊은 뜻이 숨어 있더구나
    특히, 남자의 美稱(영어로는 great)으로 사용한다는 것이
    아주 재미 있더구나
    나중에 만나거든 소주 마시면서
    甫甫에 대해 처음에 그 사용동기, 쓰면서 불편한 점과 좋은 점,
    또 자신이 숨겨 놓은 의미 등 여러가지로 더 알고 싶으니 가르켜 주랴.

    그리고 또
    우리 동효가 중년을 이야기 했으니 나도 중년 이야기 좀 할란다.
    우리가 중년을 맞으면서
    가장 어렵게 하는 것이
    어떤 짜여진 틀에 콱 갇히여 스스로를 얽매여 버린다는 것이
    피곤하여 그 탈출로를 찾고자 발버둥 쳐 보지만
    지가 뛰어 보았자 빠르고 긴다리 가진 벼룩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 중년이지
    자신은 그것이 싫어 한번쯤(아무도 몰래) 튀어도 보지만
    다른 중년이 그런 것을 보면 보아 주기가 힘들지
    그렇지만 동효야!
    우리 중년은 그 틀에서 탈출하여 재미있게 살아 보자는
    위대한 큰 뜻을 같이하여
    동창회도 하고
    거금도도 들어오고 하잖냐?
    그러니 동효야!
    바쁜 중년은 실제로 바쁜 것이 아니라 마음만 쬐끔 바쁜 것이니
    훌훌 털어 버리고 아름다운 중년을 보내자구나.

    동효야!
    나는 중년의 핵심적인 요소를
    - 살아 온 날보다 앞으로 살 날이 더 더 남지 않았다.- 라고 보면서
    젊었을때 자주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과 어울려
    마지막 한조각 남은 젊음의 아름다움을
    이 세상에 힘껏 쏟아 버리면서 살고 싶어서

    젊어서 노는 것도 제대로 배우지 못해 잘 안되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하고 싶어서
    무적이 그리고 우원이 또 ...
    자주 만나서 주로 술을 많이 마시지만
    나름대로 중년을 재미있게 보내고 있다.

    동효야!
    동효를 생각하면
    어릴때 기억이 새삼스럽다.

    기회되는 대로 만나서 소주 한잔 하자. 응~ ~

    마지막으로
    甫甫가 참 좋다.



  • ?
    김甫甫 2004.11.01 22:14
    어제 처음으로 반가운 마음으로 거금도에 첫 선을 보이는데 내 짝궁과
    내 떨거지들이 관심을 가지고 격려를 보내면서
    자주 거금도에 들려 좋은 사람과 만나 대화를 하여, 치매에 걸리지
    말라는 충고가 있어서
    오늘도 거금도를 찿았단다.

    살아가면서 날마다 새로운 많은 사람,또는 지난 날 알고 지냈던 친구,선배,후배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여간 즐겁고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생각해 보면 값진 선물과도 같은 기분 좋은 일이며,
    이렇게 하므로써 벌써 많은 사람들과 첫 인사를 주고 받았다.
    소중한 사람들이다.
    나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한없이 감사 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이런 기분,이 아름다움 인생을 느끼고 설계하는 때가
    중년이 아닐까 싶다.

    병옥이 생각은 어떠한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甫甫 얘기는 나중에 쇠주 한잔 하면서----

    무등산 갈대밭에서 만나고 싶은데
    아쉽게도 내가 시간이 없구나

    다음 시간 까지 바이바이다./
  • ?
    무심천 2004.11.01 23:12
    젊은 한 시절 무적님처럼 난고 김병연에게 심취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천재적인 재주와 촌철살인의 기지와 해학과 울분과 거침없는
    풍자와 바람처럼 구름처럼 떠돌았던 영원한 자유인의 모습까지도 무쟈게
    좋았던 시절이었지요.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반역의 세월을 살면서 느꼈을 고독과 쓸쓸함과
    타협할 수 없었던 가진자들로 부터 받았을 모욕과 멸시와 푸대접으로 인한
    울분과 비애는 아무리 김삿갓이라 하여도 참으로 소화시키기는 쉽지 않았을거라
    미루어 짐작합니다.
    그 촌철살인 같은 시들은 세월이 지날 수록 화려하게 부상하여 날개를 달았지만
    나날의 일상은 시만으로는 해결이 안되고 배고픔과 이슬을 피할 수 있는
    잠자리는 필요했을테니까요.
    영원한 자유인!!~~ 을 꿈꾸면서도 해떨어지면 어쩔 수 없이 집으로 향하는 많은 사람들처럼...

    유리걸식하면서 겪은 또 다른 시 한 수를 화답으로 적어봅니다.

    어느 고을에서 노랭이로 소문한 부자집에 찾아가 주인과 대화를 하고 있는데
    끼니때가 되어 하인이 아뢰기를 김병연을 앉혀 놓고
    "人良卜一(食上) 하오리까?"
    주인이 답하길
    "月月山山(朋出) 하여라"하였다.
    이에 듣고 있던 김병연이
    "丁口竹天(可笑)이로다."하면서 두말 않고 일어서서 나와 버렸다.
  • ?
    무적 2004.11.02 05:40
    가뜩이나 시간이 없는데
    제가 또 바쁘게 되었네요.

    저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아낄려면
    부득이 현상수배를 할 수 밖에요

    "무심천님을 공개수배합니다"

    무척 내공이 깊어보이시는데
    뉘신지 몰라보아 죄송합니다.

    커뮤니티 고향사투리에도 왕림하여 주시면
    여러 향우님들이 환대하실 것입니다.
  • ?
    무적 2004.11.15 22:59
    무심천님이 자수(?)하시면
    탁배기라도 한잔 권하려 했건만
    세속에 물들지 않으시려고 안 나오시니
    누굴 탓하리요.

    어제는 드리이브코스로 좋다는 화순 적벽엘 가서
    삿갓어르신을 뵙고 왔는데
    물염정에서 보라보는 영신천의 푸른 빛은 예전과 같더이다.

    (물염정:홍주 송씨 勿染 송정순이 16세기 건립했다는 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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