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화 : 토렴
‘토렴’이라는 재미있는 단어를 글의 소재로 찜해 놓고서도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할까를 생각하며 계속 뒤로 밀쳐놓은 지가 한참 되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예전 우리의 생활에서 ‘토렴’ 비슷한 무엇인가가 분명히있었는데!!!!?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그 무엇인가를 생각해 내었으니, 그것은 참으로 어려웠던 시절의 가슴 아픈 기억이었다.
그 시절,
솥의 맨 밑에는 한 번 삶은 보리쌀을 넣고 그 위에다 웁쌀을 조금 얹어 밥을 짓던 시절!
여름철이면 엄마들은 아침에 한 보리밥을 낮에 점심으로 먹기 위하여 밥이 쉬지 않도록 대나무로 만든 소쿠리(우리는 그것을 ‘밥고리’라고 불렀다)에 담아서 바람이 잘 통하는 시원한 처마 밑에 걸어 놓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러나 사람의 일인이라 그 밥을 그 날에 먹을 수가 없는 경우도 있었는데, 다음 날에나 그 밥을 먹으려면 꼭 냄새를 맡아봐야만 했다.
밥이 쉬었는지 괜찮은지를 판별하는 것이다.
다행히 밥이 쉬지 않았으면 그대로 먹는데 만약 밥이 쉬었으면?
밥이 아주 많이 쉬었으면 돼지나 닭의 먹이가 되지만 조금 쉬었으면 엄마들은 그 밥을 쉰 냄새가 나지 않을 때까지 찬 물로 몇 번이고 헹구어서 먹었던 것이다.
그 행위가 바로 오늘의 단어인 토렴과 비슷하다.
토렴은 식은 음식을 덥히기 위하여 뜨거운 국물을 이용하였고, 위 행위는 찬 물로 헹구어 내는 것이 다르긴 하였지만.
정말 다시 생각하기도 싫은 아픈 기억을 요놈의 토렴 때문에 되살렸다.
요즈음에도 서울의 유명한 순댓집에서는 새벽부터 준비해 놓은 순대를 냉장고에 보관하였다가 손님이 주문하면 토렴을 해서 내놓는다고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맛이 더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 시절 그 향수를 느끼고자 하는 고객들은 그렇게 토렴을 하는 것만 보아도 마음이 흐뭇하다고 하니 실제로 먹을 때는 더 말해서 무엇 하랴.
먹으면서 하는 말이 “그래, 바로 이 맛이야!”라고 하겠지.
내가 사는 이곳 빛고을의 인근에 있는 ‘나주시’는 나주곰탕으로 유명하여 우리도 자주 이용하는데, 그곳의 곰탕집에서도 수육을 내올 때 토렴을 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그 토렴을 보면서 여태껏 소싯적의 밥 헹굼을 생각해 내지 못한 나의 짧은 의식이 어리석기만 하다. 아니 생각하기 싫은 아픈 기억인지라 생각해내지 못하게 어떤 무의식이 작용했을까?
토렴 - 밥이나 국수에 뜨거운 국물을 여러 차례 부었다 따랐다 하여 덥게 함.(퇴염(退染 : 물들였던 물건의 빛깔을 도로 빨아냄.)에서 유래).
지금이야
건강식(보양식), 다이어트식 하면서 골라서 먹지만
그때 그 시절
오직 배에 힘을 넣게 위하여 먹어야만 하는
그래서 쉰 밥도 헹구어서 먹었던 그 아픔을
당신은 기억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