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7화 : 충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키(곡식 따위를 까불러 죽정이나 티끌을 골라내는 도구)질도 하였고, 체(가루를 곱게 치거나 액체를 받거나 거르는데 쓰는 기구)질도 하였으며, 심지어 절구질도 하였다.(우리는 키를 ‘체이’라고, 체를 ‘얼게미’라고 하였으며 절굿공이를 ‘도굿대’라고 하였다)
또한 건강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하여 주경야독(晝耕夜讀)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처지이기에 봄에는 논밭을 갈아 씨를 뿌리고 가을에는 수확을 하시는 농부인 부모님을 도와주는 일꾼으로 성장하여 갔다.
그렇게 길들여진 나는 1979년 4월 초에 군을 제대하고 그해 가을에 한 여자를 만나 결혼을 약속하였다. 하여 어쩌다가 그녀의 집 가을걷이를 거들어 주게 되었는데 가을걷이라야 이미 캐놓은 고구마를 빼깽이(절간고구마)로 만들기 위하여 기계로 써는 작업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 일이 장차 아내가 될 사람에게는 그렇게도 신기하였나 보다. 세상에 남자가 밭일을 거들어주다니?
그 사람도 우리 마을에 가끔씩 오곤 하였는데 우리 마을 어른들이 밭일을 하는 것은 이미 한번 놀란 일이기에 변론으로 하고 이번에는 우리 부모님의 회갑연 때 마을 어른들(남자들)이 마루에서 전을 부치는 것을 보고 더욱 놀란다. 남자들이 어떻게 부엌일을, 그것도 전을 부치느냐고?????
그 마을 어른들(남자들)이 밭일을 한다거나 전을 부치는 따위의 일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해볼 수 없는 어림없는 일이란다.
이렇듯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섬이자, 우리의 영원한 마음의 안식처이고 고향인 거금도도 각 마을마다 생활방식이 이렇게 달랐으니 그것은 나 혼자만이 느끼는 감상이었을까?
어떻게 보면 나는 그 마을(신촌마을)로 장가 든 것이 큰 행운인 듯하다.
남자들이 밭일, 부엌일을 하는 것을 보지 못한 집사람이므로 내가 그런 일을 하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는 부엌일은 거의 거들지 않는다.
결혼하기 전에는 지취생활 몇 년 운운하며 조금은 거들어 줄 것 같더니만 결혼하고 난 후에는 언제 그랬느냐 하면서 거들어 주지 않는다고 이따금 집사람이 핀잔 아닌 핀잔을 주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바라지도 않는 것 같다.
농사일과 관련되어 추억이 담긴 ‘사래질’과 ‘충이다’를 설명하려다가 이야기가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 버렸다.
사람들도 좋은 의식들을 이렇게 충이어 차곡차곡 쌓여지면 좋으련만……
한편, ‘노깨’라는 조금은 생소한 단어가 있다.
노깨를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체로 쳐서 밀가루를 뇌고 남은 찌꺼기.’라고 풀이하고 있는데 나는 이 풀이를 읽으면서 순간적으로 풀이에 있는 ‘뇌고’가 ‘내고’의 오타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다가 내처 ‘뇌고’의 원형인 ‘뇌다’를 찾아보니 아래와 같이 풀이하고 있었다.
사래질 - 키 따위에 곡식을 담고 흔들어서 굵고 무거운 것과 잘고 가벼운 것을 가려내는 일.
충이다 - 곡식 따위를 많이 담기 위하여 자루나 섬을 상하좌우로 흔들거나 까불다.
노깨 - 체로 쳐서 밀가루를 뇌고 남은 찌꺼기.
뇌다 - 굵은 체에 친 가루를 더 곱게 하려고 가는 체에 다시 치다.
조금 있다 가봐야 될 결혼식장과
수술하고 아직 병원에 누워 있는 마눌님 때문에
나들이하기 좋은 이 봄날에
사무실에 혼자 앉아 있으려니 이거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