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4화 : 옷깃을 여미다?
예전에는 우리나라의 겨울날씨가 삼한사온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요즘에는 기상이변으로 언제 추울지 언제 따뜻할지 종잡을 수가 없다고 한다.
그렇지만 겨울은 역시 겨울.
날씨가 많이 추운 날의 TV 새벽 뉴스는 새벽 어시장의 상인들이 불을 쬐는 모습을 비춰 주고, 밤 뉴스는 귀가 길의 시민들이 포장마차에서 김이 무럭무럭 나는 국물을 마시는 모습이나 집을 향하여 종종걸음을 치는 광경을 비춰 주는데, 옷을 두툼하게 입은 아나운서는 입김을 호호 내불며 이렇게 말한다.
“바람이 불어 체감온도가 영하 15도인 날씨에 집으로 향하는 시민들은 옷깃을 여미고 종종걸음을 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이런 멘트를 들을 때마다 짜증이 난다.
이것들은 신문에서 늘 볼 수 있는 맞춤법이나 띄어쓰기의 오류와는 그 성격이 다른 문제인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면 작가가 써서 주었든지 아니면 아나운서가 직접 멘트를 했는지를 불문하고 여기에서의 ‘옷깃을 여미고’는 틀렸다는 것이다.
‘옷깃을 여미다’는 「경건한 마음으로 옷을 가지런하게 하여 자세를 바로잡다.」는 뜻의 관용구인데 추워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종종걸음을 치고 있는 사람이 무슨 경건한 마음?
이런 경우는 ‘(찬바람을 막기 위하여) 옷깃을 세우고’라는 표현이 옳다.
누구의 잘못인가?
작가? 아나운서? 제작진? 보도국장?
매번 되풀이되고 있는 이런 종류의 멘트에 대하여 방송국으로 전화로 지적도 해보곤 하지만 아직도 고쳐지지 않은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까?
어느 한 사람이라도 정신을 바짝 차린다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을 터인데 말이다.
이러한 현상은 방송뿐만 아니라 신문들도 마찬가지이기에 실제로 활자화되었던 신문의 맞춤법 및 띄어쓰기 오류로 정리되었던 몇 개를 간추려 본다.
① 올 회계연도(2009년4월~2010년3월)부터 일본 상장기업들은 임원의 보수를 낱낱히 공개해야 한다. → 낱낱이
② 퇴임 총리의 이 같은 모습은 일찌기 볼 수 없었던 장면이다. → 일찍이
③ 귀병 없는데 어지럽다면 ‘뇌혈관 질환’ 의심 → 귓병
④ 이 돈으로 구두약과 수선재료비를 사고 아내에게 생활비까지 주고 나면 남은 돈이 그리 넉넉치 않다. → 넉넉지
⑤ 생각컨대, 남북한의 하천은 국제수로의 비항행적 이용에 관한 국제적 기 준이 적용된다고 본다. → 생각건대
⑥ 육회는 반드시 소의 살고기로 만들어야 한다. → 살코기
⑦ 우리 농산물인 햇쌀 1000포를 익산시청에 전달했다. → 햅쌀
⑧ 수천 만원에 이르는 자리세 → 만 원, 자릿세
⑨ 그럼에도 달달이 8천여 명의 난민이 추가로 유입되고 있다. → 다달이
⑩ 아이들은 유치(젓니)에서 영구치로 바뀌면서 → 젖니
⑪ 몸빼와 꽃무늬 윗옷을 입은 할머니들과 → 웃옷
⑫ 뜨게질로 된 세계 최대 전통 팔레스타인 의상 → 뜯게질
⑬ 한국에 더욱 가까와지고 있다. → 가까워
이 외에도 수 없이 많지만 지면상 생략하면서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엘리트라고 자부하면서 글과 말로 밥을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의 각성을 기대해 본다.
여미다 - 벌어진 옷깃이나 장막 따위를 바로 합쳐 단정하게 하다.
옷깃을 여미다 - 경건한 마음으로 옷을 가지런하게 하여 자세를 바로잡다.
사용 예 : ①학생들이 옷깃을 여미고 순국선열에게 묵념하고 있다.
②치맛자락을 여미고 다소곳이 앉은 아낙의 자태가 더없이 곱다.
나라고 해서 모두 옳게 쓴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내가 이런 글을 올리는 이유는
본문에도 표현 했듯이
말을 하고 글을 쓰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엘리트들의 자각을 바라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