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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도전] ‘박치기왕’ 김일 [75]

by 운영자 posted Jul 0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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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 시간은 오후 6시 LA시립경기장이었다. 눈을 뜨니 오전 8시경이었다. 전날 리셉션 장소에서 상대 선수들로부터 돌인지 아닌지 확인시켜 주기 위해 머리를 워낙 많이 맞아 경기를 잘 펼칠지 걱정이 됐다. 머리가 띵하니 헛구역질까지 났다.

 

그 순간 모터 선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오오키 긴타로. 일본서 급한 전화가 왔다. 빨리 받아라.” 숨넘어가는 목소리였다. 난 스승이 태그매치를 앞두고 “열심히 해서 꼭 챔피언 벨트를 따라”는 격려 전화를 건 것으로 생각했다.

 

난 속으로 모터 선배가 안부 전화를 받으면 조용히 바꿔 주면 되지 왜 그렇게 나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부르고 야단법석인가 생각하며 무심결에 전화를 받았다. 순간 난 진짜 해머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이 띵했다. 누가 전화를 걸었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지만 안토니오 이노키 같기도 했다. 그는 “선배님. 놀라지 마십시요. 스승님이 야쿠자 칼에 맞았습니다”라고 전했다.

 

내가 전화를 받은 시간은 9일 오전 8시경이었다. 일본 시간으론 10일 새벽 1시경이었을 것이다. 스승이 가끔 야쿠자와 시비끝에 단도에 찔린 경우가 몇 번씩 있었지만 제자 중 한 명이 내게 전화를 걸어 다급함을 알린 것은 처음이라 ‘뭔가 큰 일이 벌어졌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스승님은 괜찮은가? (스승님을) 칼로 찌른자는 누구인가”를 물었다. 그는 “다행히 스승님은 큰 이상이 없다. 칼로 찌른 자는 야쿠자 스미요시 조직원인 것 같다”라고 답했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전율이 느껴졌다. 드디어 일이 벌어졌구나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난 언젠가는 스미요시 조직원들이 스승을 칠 것으로 예상은 했었다. 그것은 스승이 동성회 정건영과 야마쿠치 다카오 오야붕들과 친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스승으로부터 외면당했던 스미요시 조직원들이 언젠가 스승을 손볼 것 같은 예감을 갖고 있었다.

 

이유야 어쨌든 스승이 칼에 찔렸다는 소식을 듣고 챔피언이고 뭐고 간에 그날 경기에 출전하고 싶지 않았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피가 거꾸로 치솟았다.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당장이라도 스승 곁으로 달려가야겠다는 것 외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10시간 뒤면 태그매치 타이틀을 앞두고 있었지만 경기를 포기하고 싶었다. 모터는 이렇게까지 고생하며 지금까지 왔는데 여기서 포기하면 안된다고 설득했다. 타이틀을 딴 후 당당히 일본으로 돌아가자고 말했다.

 

난 그때 두 번의 눈물을 흘렸다. 스승이 칼에 찔린 소리를 듣는 순간 분노의 눈물. 그리고 크게 다지치 않은 것에 대한 안도의 눈물이었다. 그 눈물을 가슴속에 품고 경기장으로 향했다. 일본선 별 탈 없다고 했지만 경기장으로 가기 전 일본으로 전화를 걸어 스승의 안부를 한 번 더 확인했다. 다행히 스승은 응급처치를 취해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 소리를 들었다.

 

챔피언 타이틀 벨트를 찬 후 당당히 스승 앞에 나타나 그 벨트를 스승에게 바치고 싶었다. 나의 충격을 아는지 모르는지 관중석에서는 한국과 일본의 교포 수백 명이 태극기와 일본기를 흔들며 응원했다. 난 그것을 보는 순간 다시 힘이 솟아났다. 라카룸에 대기하고 있었다. 드디어 나의 입장을 알리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내가 링에 오르자 수많은 사람들이 나의 이름을 부르며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미국 선수들도 링에 올랐다. 동양인과 서양인의 한판 대결이었다. 미국인 팬들은 당연히 미국인 승리를 예상하며 그 경기가 몇 분 몇 초에 끝날지에 관심을 모았다. 더욱이 미국 선수들의 홈 링이 아닌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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