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초였다. 8월말 도쿄에서 경기를 끝낸 후 10여일 휴식기가 있던 때였다. 체육관에서 훈련중이었는데 스승이 나를 불렀다. "오로키 긴타로, 오늘 밤 나랑 술 한잔 하자"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난 깜짝 놀랐다. 스승은 "오늘은 아무도 부르지 않아, 너 하고만 술 한잔 할거다"라고 말했다.
↑ 스승과 단둘이 술을 마셨다. 이것이 이승에서 찍었던 스승과 나의 마지막 한장 남은 사진이다. 스승은 "12월 미국에서 WWA (세계레슬링협회)태그챔피언 대회가 열린다"면서 반드시 벨트를 따라고 강조했다. 스승은 이미 그에 따른 만반의 준비를 다 해뒀다. 스승은 LA에서 파트너인 미스터 모토와 석 달간 호흡을 맞추라고 했다. 상대는 거물 프로레슬러였다. 미 서부 태평양 연안을 휘어잡고 있던 랩 마스터 콤비였다. 
난 스승이 술 한잔 하자는 소리에 현기증을 느낄 정도로 멍했고, 놀랐다. 사실 난 스승이 야단칠 줄 알고 갔는데 술 한잔 하자고 하니 속으론 기분이 좋았지만 얼떨떨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술집은 긴자의 유명한 고급클럽인 '히메'였다. 스승의 단골집이었다. '긴자 호랑이'였던 동성회 정건영 오야붕이 간여하는 술집이었다. 난 스승이 단 둘이만 술 한잔하자고 했지만 그곳이 정건영 형님의 술집과 같은 곳이라 함께 술을 마시는 줄 알았다. 그곳은 야구 선수 장훈도 자주 찾는 클럽이었다.
저녁 7시경 그 클럽 안으로 들어갔다. 스승이 보이지 않았다. 10분 지났을까 스승이 클럽에 나타났다. 스승은 "오오키 왔구먼, 자 안으로 들어가자" 라면서 상냥한 표정으로 나를 데리고 들어갔다. 넓은 룸에는 아무도 없었다. 밖에서 음악소리만 들렸다. 스승과 단둘이 앉아있는 것이 영 어색했다.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랐다.
스승은 종업원에게 맥주를 여러병 가져오라고 했다. 스승은 술을 따라 주면서 "힘드냐"라고 묻는 것이었다. 난 "괜찮습니다. 힘들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분위기를 봐선 스승이 뭔가 말을 할 것 같았지만 계속 말을 빙빙 돌리며 뜸을 들이는 것 같았다.
스승은 레슬링을 하면서 겪었던 여러 문제와 어려움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마치 넋두리를 늘어놓는 자리같았다. 난 스승이 따라주는 술은 마시지 못했다. 스승 앞에서 술을 마시는 것이 예의 범절에 어긋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따라 주는 술은 바지 밑으로 부었다.
스승은 이런 말도 했다. "오오키와 한조가 돼 경기를 펼치고 싶다. 기회가 되면 반드시 태그매치를 이뤄 경기를 하자"라고 제안했다. 평소 스승답지 않은 말을 털어놓는 것이었다. 스승의 얘기는 점점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맥주를 네 다섯병 비웠을까. 스승은 나를 나즈막한 소리로 부르며 이렇게 말했다. "오오키 긴타로, 너 세계챔피언 벨트 따올 수 있지." 난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줄 몰랐다. 스승의 그 말에 머리만 푹 숙였을 뿐이다.
스승은 맥주잔을 단숨에 비웠다. 그리고 맥주잔을 내려 놓으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너, 미국에 가서 태그챔피언 따와"라고 명령했다.
스승은 "너라면 할 수 있을 것이다. 너가 벨트를 따야만 나의 뒤를 이을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스승은 나를 그렇게 모질게 훈련시켰던 것이 결국은 나를 세계챔피언으로 만들기 위한 혹독한 수련의 과정이었다.
스승은 세계챔피언에 도전하는 나를 위로하고 격려해 주기 위해 클럽으로 부른 것이었다. 스승은 다음주 당장 미국으로 가라고 했다. 그때가 1963년 9월7일. 그날 이승에서 스승을 마지막으로 보았다. 지금 생각하니 그 눈빛이 너무나 처량하고, 허전했던 것 같았다. <계속>
[나의 삶, 나의 도전] ‘박치기왕’ 김일 [70]
by 운영자 posted Jul 05, 2010
난 그때 스승 앞에서 술을 마시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해 스승이 따라주는 술은 바지 밑으로 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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