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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도전 : 박치기왕 김일 [39]

by 운영자 posted Jul 0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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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토니오 이노키는 운동 선수가 지녀야 할 체격 조건을 다 갖췄다. 일반적으로 체격이 좋으면 몸의 유연성이 떨어지지만 이노키는 그렇지 않았다. 유연성·순발력·민첩성, 거기에다 파워까지 막강했다.
 
스승 역도산은 처음부터 이노키에게 프로레슬링 기술은 가르치지 않았다. 그에게 근력 운동을 집중적으로 시켰다. 약간 마른 체질이어서 우선 근력이 붙도록 했다. 근력 운동을 시킨 것은 시각적 효과도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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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토니오 이노키와 난 매일 같이 운동을 했으며 이노키의 레슬링 데뷔 첫 상대자는 나였다.
이노키가 몸에 근력이 붙자 나에게 팔씨름을 도전해 팔씨름 내기를 하고 있다.


 
예컨대 레슬링 선수는 옷을 벗었을 경우 근력이 좋아야 한다. 근력이 좋다는 것은 상대 선수에게 강인함과 팬들에게는 볼거리를 제공한다. 이노키가 근력 강화를 위해 하는 것은 돼지처럼 먹고, 운동하는 것이었다.

몸에 근력이 붙으면서 이노키는 서서히 레슬링 기술을 익히기 시작했다. 굳이 나와 이노키 훈련의 차이점을 비교하라면 매였다. 스승은 나는 그렇게 때렸지만, 이상하게 이노키는 때리지 않았다. 난 스승의 매에 이골이 나 이노키에게 이런 귀띔을 했다. "이노키! 스승의 매를 견뎌야 한다. 스승에게 맞더라고 서운해 하지 마라. 스승이 널 미워서 때리는 것이 아니다."
 
헌데 나의 이런말은 거짓말이 된 셈이다. 스승은 이상하게도 이노키는 때리지 않았다. 조선인을 그렇게 때리고 일본인은 때리지 않는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거나 스승에게 맞지 않았던 이노키는 스승을 무서워하거나, 어려워 하지 않았다.

이노키의 레슬링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급성장했다. 이노키는 몸에 근력이 생기고 이런 저런 기술을 익히면서 자신만의 특기를 갖고 싶어 했다. 레슬링 선수에게 특기는 자신의 '히든 카드'나 다름없다.
 
자신만의 고유한 특기가 있어야만 팬들에게 사랑을 받고, 롱런 할 수 있다. 잘 알다시피 스승은 가라데 촙이 특기다. 또 난 박치기였다. 이외 스승의 제자중 유도로 단련된 자들은 대부분 꺾기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스승도 이노키가 프로레슬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특기를 가져야 한다며 그에게 특기를 연마토록 했다. 워낙 운동신경이 발달했고, 몸의 유연성과 민첩성이 좋기 때문에 이노키는 어떤 기술이든 다 소화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 슬램기술을 집중적으로 익혔다.
 
이노키는 보디슬램과 파워슬램을 곧잘 구사했다. 하지만 그것은 레슬링 선수라면 기본으로 구사할 줄 알아야 하는 기술이다. 상대방의 두 다리를 잡고 반동으로 들어 올려 던지는 슬링 샷 기술도 탁월했다.
 
이런 기술은 상대에게 순간 충격은 주지만 완전히 압도하는 기술은 아니었다. 스승과 함께 이노키가 고안해낸 기술은 '코브라 트위스트'다. 올드팬들의 기억 속에 이노키 하면 코브라 트위스트가 떠오를 정도로 그는 이 기술을 자기만의의 전매특허로 만들었다.
 
상대방을 앞에 놓고 오른발로 상대의 오른발을 걸고, 오른팔로 상대의 오른팔을 걸면서 상대의 옆구리를 눌러 허리를 옆으로 꺾이게 한다음 팔을 뒤로 젖히는 기술이다. 이노키가 이 기술 습득에 매진할 때 즈음, 첫 시합 날짜가 잡혔다. 1960년 9월말이었다.
 
경기 날짜가 잡혔지만 스승은 이노키에게 첫 시합 상대자가 누구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스승은 내게도 그랬다. 궁금한 것은 당연히 이노키 였다. 이노키는 내게 "선배 첫 상대자가 누구입니까" 슬쩍 묻기도 했다.
 
나 역시 첫 상대가 누군지 모르니 말해줄 수 없어 답답할 노릇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스승이 나를 불렀다. "오오키 긴타로, 네가 이노키 첫 상대자다!" 난 깜짝 놀랐다. 냉혹한 사각의 링 승부에서 한명이 한명을 꺾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이라지만, 이노키의 첫 상대가 나 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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