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말쯤 되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미국 선수와 일전을 앞두고 있었다. 내가 세계적 선수로 발돋움할 것인가, 국내(일본)용 선수로 머물 것인가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한판이었다. 스승 역도산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며 훈련을 독려했다. 난 그 경기에 거의 사활을 걸다시피 했다. 그리고 더욱 박치기 훈련에 매진하면서 머리를 돌덩이로 만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도장 서무가 "조선에서 누군가 당신을 찾아왔다"고 전해 주었다. 누군가 무척 궁금했다. 훈련을 중단하고 휴게실로 갔다. 안면이 있던 고향 분이셨다. 한국서 밀항한 그는 나의 손을 덥석 잡고 "네가 일본서 레슬링 선수로 성공했다는 것은 고향 사람들도 알고 있다"며 축하해 줬다. 그 칭찬에 어색해 하는 나를 보며 "혹시 아버지 소식은 들은 적 있나"라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가족에게 면목이 없습니다. 아버지도 건강하시죠"라고 되물었다.
그런데 그는 머뭇머뭇거리면서 무겁게 입을 열었다. "자네 아버지는 돌아가셨네"라며 아버지 작고 소식을 알려 줬다.
난 그 말이 믿기지 않았다. 장골이 좋고 튼튼했던 아버지가 그렇게 빨리 세상을 뜰 리 없었다. 난 사실인가를 되물었고, 그는 머리를 끄덕였다.
난 그날 훈련을 중단했다. 마음 같아선 당장 한국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이 국교가 수립되지 않아 한국을 간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또 한국에 가더라도 일본으로 다시 오는 것도 쉽지 않았다.
아버지 타계 소식은 나를 충격에 빠뜨렸다. 갑자기 현기증이 나듯이 눈앞이 캄캄했다. 고향 분에게 인사치레로 얼마의 돈을 준 후 헤어졌다. 혼자 있고 싶었다. 가게에 들러 술·오징어·초를 샀다. 그것을 들고 숙소로 갔다. 상에 올려놓고 고국 땅에 누워 계신 아버지를 향해 큰 절을 올렸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혼자서 목 놓아 "아버지! 불효 자식을 용서하십시요"라며 통곡했다. 고향을 떠나오기 전 아버지가 내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난 아버지에게 말항 사실을 숨겼지만 아버지는 눈치를 챈 것 같았다. 아버지는 내가 어디인가로 떠나갈 것으로 짐작했었는지 한 번은 나를 불러 집 근처 용두산 쪽으로 데리고 갔다. 아버지는 그곳에서 "내가 죽으면 이곳에 묻어 달라"고 말씀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이 아버지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아버지 장례도 치르지 못했던 불효자식인 난 며칠 동안 어깨가 축 처져 있었다. 평소 파이팅이 넘쳤던 내가 미국 선수와 일전을 앞두고 의기소침했던 것이 동료들 눈에도 이상하게 비친 것 같았다.
동료들은 "긴타로, 왜 그래? 무슨일 있어"라고 물었지만 난 대답하기 싫었다. 사람이 기운이 없어지고 풀이 죽으니 몸이 아픈 것 같았다. 난 경기를 이틀 앞두고 증발했다. 스승뿐만 아니라 도장 사람들도 나를 찾느라 야단법석이 났다.
난 혼자서 도쿄 인근 항구로 갔다. 마음이 울적하고 힘들 때면 항구에서 고향 쪽을 보며 남몰래 눈물을 훔치곤 했던 곳이다. 그 바다를 봐야만 속이 뚫릴 것 같았다. 난 경기를 포기할까란 생각도 했다. 하지만 경기는 팬들과의 약속이다. 이 경기는 TV까지 방송될 예정이었다.
난 경기 당일 경기장으로 곧바로 갔다. 평소 한 번도 그런 것을 보지 못했던 스승은 너무 황당해 했고, 경기가 끝나면 나를 불러 박살 낼 표정이었다. 납덩이 같은 게 가슴을 짓누르는 듯한 느낌 속에서 링에 올랐다. 링에서 고목나무가 쓰러지듯 휘청하며 매트에 누워 버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