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8화 : 괴발개발
우리가 쓰는 글은 혼자서만 보기 위한 글(일기 등), 단둘이만 보기 위한 글(편지 등), 몇몇 관계자만 보게 되는 글(직장의 업무보고서 등), 그리고 여러 사람에게 읽히기 위하여 쓴 글(문학작품 등) 등 여러 형식이 있지만 그것들은 모두 글씨(쓴 글자의 모양)라는 형식을 거쳐서 나타난다.
여기에서 나는 ‘글씨는 그 사람의 얼굴이다.’라는 말을 음미해 보면서 ‘혼불’의 작가인 최명희님의 글씨를 다시 한 번 떠올려본다.
그녀의 글씨는 남원시 사매면에 있는 ‘혼불 문학관’에 가면 볼 수 있는데 거기에 전시되어 있는 원고지의 글씨를 보고 있노라면 하도 정갈하고 예뻐서 볼 때마다 작가의 순수한 영혼을 대하는 듯 했다.
나는 이렇게 글씨를 예쁘게 잘 쓰는 사람을 보면 너무나도 부럽다.
요즘의 학생들도 글씨를 바르게 쓰는 연습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글씨를 좀 더 잘 써 보고자 펜글씨 교본을 가지고 쓰기 연습을 했는데도 글씨가 잘 써지지 않는다. 처음의 몇 줄은 반듯 반듯이 쓰지만 조금만 더 쓰다 보면 글씨가 나 혼자만 알아볼 수 있게 제멋대로인 것이다. 컴퓨터가 생활화된 요즘이야 나처럼 글씨를 못 쓰는 사람들이라 해도 별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우리가 직장생활을 시작했던 그 시절(훨씬 그 이전부터)에는 모든 보고서 등 공문서를 직접 손으로 써야만 했는데 내 기억에 지독히도 글씨를 못 쓰는 한 동료직원(이하 ‘갑’이라고 한다) 있었으니………
‘갑’이 만든 서류는 관리자의 결재과정에서부터 문제가 생긴다. 결재권자가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글씨를 읽어보려고 해도 읽지를 못하겠다는 것이다.
결국은 ‘갑’을 불러 직접 읽으라고 하여 내용을 파악·결재를 끝내곤 했는데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상부기관의 감사에서도 웃지 못 할 일들이 수 없이 벌어졌다. ‘갑’ 혼자만이 읽을 수 있는 글씨를 감사관이라고 하여 읽을 수 있겠는가? 결국 감사관도 ‘갑’을 불러 내용을 파악하지만 하도 어처구니가 없는지 그 내용을 불문하고 웃어넘길 수밖에 없어 ‘갑’은 한 번도 감사에 지적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한 ‘갑’의 글씨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는데 어느덧 세월이 흘러 그도 직장을 떠나고 말았다.
이렇게 글씨를 아무렇게나 갈겨 쓴 것을 ‘괴발개발’이라고 하는데 국어대사전에는 아래와 같이 풀이되어 있다.
괴발개발 - 고양이의 발과 개의 발이라는 뜻으로, 글씨를 되는대로 아무렇게나 써 놓은 모양을 이르는 말.
한편, 요즘에는 일반 사무실은 물론이요 각 가정에도 컴퓨터가 많이 보급되어 간단한 적바림 외에는 글씨를 쓰는 경우가 매우 드물어 졌다.
나의 경우도 작년까지 몇 년 동안은 요점을 빠르고 많이 써야 하는 수험 준비 때문에 잘못 쓰는 글씨나마 새끼손가락과 펜이 닿은 가운데손가락에 굳은살이 박일 정도로 많이 썼는데 이제는 그렇지도 않다.
마지막으로,
작가 조정래 선생님께서 2002년에 탈고한 ‘한강’의 「후기」에 의하면 선생님께서는 아들이 대학생이 되자 아들에게 ‘태백산맥’의 원고를 베껴 쓰라고 하셨단다. 이에 그치지 않고 후일 아들이 예비 며느리를 데리고 오자 그녀에게 “결혼해서 태백산맥의 원고를 똑 같이 베껴 쓴다는 것을 약속하면 결혼을 승낙하겠다!”고 하여 이제는 집에 세 벌의 ‘태백산맥’ 원고가 있단다.
‘태백산맥’의 원고는 몇 장이나 될까?
10권으로 발간된 ‘한강’의 원고가 15,000여 장이라니 태백산맥도 그 정도 될 것이다.
그러면 선생님께서는 왜 아들과 며느리에게 이러한 명령(?)을 하셨을까?
선생님께서는 그 이유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신다.
“문장 공부, 인생 공부, 역사 공부 ………, 여러 가지 얻어지는 것이 많겠지만, 특히 작가의 아들로서 최소한 애비가 어느 정도의 고생을 겪어냈는지 체득시킬 필요가 있었다. 또한 모든 작품의 저작권을 부모 사후 50년 동안 보유하려면 그 정도의 어려움은 치러봐야 기본 자격을 갖추는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다.”고.
박이다 - ①버릇, 생각, 태도 따위가 깊이 배다. ②손바닥, 발바닥 따위에 굳은살이 생기다.
요 며칠이 어떻게 지나간 지도 모르게 바쁘게 지나갔다.
오늘이 지나야 맥을 좀 추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