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2화 : 가을운동회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청명한 가을 하늘에 펄럭이는 만국기를 머리에 이고 달리기, 공굴리기, 바구니 터뜨리기, 마스게임과 텀블링, 기마전, 줄다리기 그리고 마지막인 각 학년 별 남녀 두 사람씩으로 구성된 이어달리기로 막을 내리게 되어 있는 우리의 초등하교 시절의 가을운동회!
운동회 날이 확정되면 며칠 전부터 마스게임 연습 등을 하는데 그 운동회 날 엄마가 싸 오실 맛있는 점심과 요행이 하나라도 얻어먹을 수 있으면 땡잡은 심정이었던 빨간 홍시를 생각하며 우리는 고된 줄도 모르고 연습에 열중했었고………
운동회 날 아침이면 조금은 쌀쌀한 날씨도 아랑곳하지 않고 까만 팬티와 하얀 셔츠만을 입고(신은 뭐였을까??) 집에서 학교까지 내달렸던.
달리기를 잘하지 못해 등수 안에는 못 들어도 부끄럽지 않았고, 공굴리기를 잘못하여도 나무라지 않았으며, 바구니를 늦게 터뜨려도 바구니에서 쏟아지는 천연색 꽃가루를 보며 환호했던.
마스게임과 텀블링을 하다가 한두 사람이 틀려도 가볍게 웃을 수 있었고, 기마전을 하다가 떨어져 상처가 나도 아픈 줄을 몰랐으며, 줄다리기가 끝나면 다 같이 만세를 불렀던.
우리 편이 뒤떨어지면 격려의 함성을, 우리 편이 앞서 가면 환호의 함성을 함께 하여 교정이 떠나갈 것 같았던 학년 남여대표들의 이어달리기가 끝나면 가을 해는 어느덧 서산으로 뉘엿뉘엿 기울어 가고 있었지만 ‘상’이라고 선명히 찍힌 공책 몇 권씩을 옆구리에 차고 집으로 향하는 우리는 아직도 운동회의 기분으로 줄달음쳤던.
그때 하늘 높이 떠 있는 바구니를 터뜨리느라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마음껏 팔매질을 했던 그것이 바로 ‘오자미’란다.
한편, 당시의 가을운동회는 우리 어린 학생들만을 위한 잔치가 아니었다. 무슨 말인고 하니, 1년 마다 열린 가을운동회인지라 그 날은 그 학교에 소속된 마을의 체육대회도 곁들여 열렸다. 곧, 우리 금산면의 축제일이었던 것이다. 어른들의 종목이야 남자배구와 남녀이어달리기뿐이었지만 이긴 마을은 학교에서부터 마을까지 꽹과리를 치면서 가곤 했는데 우리 마을은 전통적으로 배구와 달리기가 강해서 이기는 횟수가 많아 우리 어린 학생들은 한껏 흥에 겨운 어른들의 뒤를 따라가면서 덩달아 즐거워했던 기억이 새롭다.
이런 것들이 계기가 되어 8·15광복절에는 금산면체육행사를 대대적으로 개최하였는데 그 대회는 꽤 오랫동안 지속되다가 인구의 현격한 감소로 인하여 이제는 그것마저 없어지고 금산면민의 날 행사로 축소되었으니 가는 세월이 하 수상하기만 하다.
오자미 - 헝겊 주머니에 콩 따위를 넣고 봉하여서 공 모양으로 만든 주머니.
뉘엿뉘엿 - ①해가 곧 지려고 산이나 지평선 너머로 조금씩 차츰 넘어가는 모양. ②속이 몹시 메스꺼워 자꾸 토할 듯한 상태.
이 ‘오자미’는 운동회 때에만 쓰인 것이 아니고 여자 아이들이 공기놀이를 할 때도 사용되었다는 것과 ‘뉘엿뉘엿’에 ②와 같은 뜻이 있음을 밝히며 이번 가을운동회를 마친다.
통합민주당의 참패?!
국토를 완전히 동서로 갈라 버린 듯한 빨강과 노랑.
대통령선거일까지 또 무슨 이슈가 세상을 시끄럽게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