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사중인 하반마을2005년 우주센터가 들어서는 고흥군 봉래면 하반마을. 공사가 한창이다.
여름 장마가 줄기차다. 광주에서 우주센터가 들어선다는 고흥 봉래면 예내리 하반마을까지 꼬박 세시간이 걸렸다. 점심때를 막 넘겨 횟집 겸 민박 고깃배 대여를 함께 하고 있는 집으로 들어섰다.
“여기는 파도가 쎄서 아예 양식은 안해. (파도가)한 방에 갖고 나가부러. 그래서 양식은 못해. 다 자연산이여.”
늦은 점심상을 차려준 주인 아주머니의 말 부조이다. 이름도 생소한 갯 것들을 반찬으로 점심 한 그릇 뚝딱 먹고 나니 아직 덜 여문 자잘한 복숭아를 들고 동네 아주머니들이 방으로 들어서신다. 비도 오고 ‘헹님 동생’들이 모태 앉아 소일이라도 하시려는 것이다. “이렇게 비가 와도 문어가 잡히대. 어젯밤에 두 마리, 오늘 아침에 두 마리나 잡었네.”

우주센터는 우리나라 남단인 전남 고흥군 봉래면 외나로도에 들어선다. 150만평 규모로 총 공사비 1500억원이 투입돼 오는 2005년 완공예정으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우주센터가 완공될 경우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13번째로 발사장 보유국가가 된다.
이곳 하반 마을은 우주센터의 중심지. 고흥이 우주 진출의 중심기지가 될 것이라고 들떠있는 외부와는 달리, 하반마을 주민들의 마음은 답답하다. 현재까지 육상 보상은 거의 마무리 된 상태이며, 바다어업권이 보상되는 대로 주민들은 이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반마을에서 태어나 75년 동안 하반마을에서 살고 있다는 김소아 할머니는 말을 못 잇는다.
“요 앞에 있는 섬을 목섬이라고 한디. 바다에서 비바람이 몰아치믄 이 마을로 직통으로 친디 저 섬이 목을 지키고 있어서 목섬이라고 해. 봉래믄 다 봉래가 아니고 나라도믄 다 나라도가 아니여. 곰탁곰탁 굽이굽이 이름이 다 있어. 산이고 갯빠(갯바위)고 우리 발 안 디딘데가 없거든.”
하늘을 저짝으로 본다고 해서 붙여진 하늘땀, 바위가 납작하니 생겨서 넙여, 멸치가 파도에 휩쓸려 한번 들어오면 다시 못나간다는 멜둠벙, 부채처럼 생긴 바위라 해서 부채금, 겨울에 따뜻한 따순기미, 바위가 둥글둥글해서 둥굴녀, 뽈락이 많이 잡히는 뽈락굴, 밭이 있고 밭아래 강이 있다해서 강지마밭밑에, 절벽같은 가파른 바위를 포도시 손으로 짚고 내려오다 보면 턱에 닿을 정도된 곳에서 발을 딛게 되는 턱걸이바위…. 아주머니들은 사람이름 만큼이나 낱낱이 붙은 갯바위 이름들을 설명해주신다.
“여기가 짚은 산골인 것 같애도 살기가 좋은 곳이여. 찻길이 안났을 때는 배편으로 여수로 갔었고. 양식은 못해도 전복 해삼 바지락 미역 톳 김 이런 것이 전부 자연산으로 많이 나오제. 우리 하반은 농토를 안 지어도 바다에서 모든 해산물을 묵고 살어. 그래서 돈이 흔해. 봉래에서도 하반이 최고로 살기 좋은 곳이여.”
하반(河盤)은 목섬을 사람이 밥상으로 떡 허니 앞에 두고 있는 것 같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라한다. 안 나오는 것 없이 다 나오는 바다 덕에 낚시터로 유명하다.

▲ 바다에서 하반마을로 몰아치는 비바람을 막아주는 목섬.
“제주도를 가도 우리 마을만은 못해. 더우믄 나무 밑에서 매미처럼 놀고 추우믄 내 집에서 문 닫고 들어와서 살고 그렇게 살았는디, 그정저정 있는 정 다 띠고 어디 가서 사까. 이 마을에서는 없는 것이 없이 살았는디. 돈 한 푼 없어도 고통 없이 걱정 없이 살았는디…. 조용하니 살다가 전답같은 것을 밀어불믄 가슴이 애리제. 사람이 천불이 나제. 돈은 받었어도…”
물좋고 공기좋은 마을자랑에서 떠야하는 현실로 돌아오니, 한숨만 나온다.
평생 살던 땅을 두고 다른 곳으로 이주를 가야하는 것만큼이나 마을 주민들을 분노하게 하는 것은 고흥군이란다.
“국가에서 한 일이라 어쩔 수 없는 갑다했제. 안비켜주면 안된갑다 그랬제. 고흥군에 좋은 일이라믄, 하반마을 주민들은 아버지가 조상들이 살았던 이 마을을 비워주는 것잉께 여그 사람들도 배려해줄줄 알았더니, 어찌케하믄 보상 적게 해줄 것인가만 생각하는 것 같아서 그것이 분해.”
“보상은 뭣이 보상이여. 우리 땅 팔아서 그 돈 받아서 나가는 것인디. 한 집에 2000만원 받은 사람도 있는디, 그 돈 갖고 어디 가서 전셋집이라도 얻어 살겄어? 한 50가구 산디. 대부분이 어디 가서 어떻게 살지 막막해. 이렇게 일치고 해도 한사람도 어디 자리잡은 사람이 없어. 근디 밖에 나가믄, 나로도 좋아진다고 그러고 나로도 관광지가 된다고 그럼서 도로변에 꽃길로 조성한다고 하믄 그것이 얼매나 듣기 싫은지. 여기 사람들은 쫒아내면서. 그렇게 좋아지믄 하반 주민들도 배려해야 될 것 아니여?”
마을 앞 논에는 잡초만 무성하다. 올해부터는 농사를 못 짓게 해서 그냥 묵혔단다. 마을을 헤집고 파헤치는 포크레인이 계속 윙윙거린다.

글=임정희 기자 oksusu@jeonlado.com
사진=모철홍 기자 momo@jeonlado.com
기사출력일 < 2003-07-09 11:4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