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민단체들 "인권침해".. 명예회복 특별법 청원추진
1월28일은 한센복지협회가 정한 '한센병의 날'이다. 매년 이날을 맞아 한센병에 대한 편견과 과거에 이들을 유린했던 '인권'을 되짚어 보기 위해 제정된 날이다. 구약성서에 문둥병으로 기록되어 있고, 천형으로 인식해 환자들을 강제 격리시키기도 했던 한센병. <오마이뉴스>는 이날을 맞아 최근 소록도 한센병 환자들의 변화되고 있는 인권 의식을 조명해보았다. -<편집자주>
버려서는 안될 것, 잊어서는 안될 것들
하마터면 어리석게 돌아설 뻔했습니다.
세상을 있게 한 후 나를 부르신
그 분의 은근한 뜻을 지나칠 뻔했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정말 아무 것도 모를 뻔했습니다. -소사모 축시, 이향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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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록도 중앙교회에서 가진 소사모 창립대회와 사회복지 과제에 대한 토론회 ⓒ 소사모 |
한센병 환자에 대한 강제 격리는 명백한 인권침해이라고 주장하는 '소록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하 소사모)'과 '소록도 병원 원생자치회', '한성 협동회'.
이들은 국가를 상대로 소록도 입소자들의 피해에 대한 진상 조사와 환자들의 명예회복을 골자로 하는 특별법 청원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원생자치회(회장 강대시 장로)는 1945년 해방 이후 병원 운영권 문제로 학살당한 원생 84명에 대한 유골을 발굴하고 위령비 건립 사업을 전개하는 등 방치돼 있던 자신들의 명예회복에 나섰다.
강제격리는 인권침해, 과거 진상파악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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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사모는 지난해 3월 학계·의료계·시민단체 인사들이 중심이 돼 소록도 주민들(한센병 환자)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연구활동과 정책제시, 후원사업을 위해 창립됐다. 소사모는 첫 사업으로 나이든 환자들의 고향방문을 추진하고 광주중앙교회의 협조를 얻어 미용봉사 활동을 해오고 있다. 또 소록도에 철쭉 5000주를 심어 꽃밭을 조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덕모(호남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집행위원장은 "소록도 주민들에게 고향방문은 간절한 소망이면서 쉽게 나설 수 없는 길"이라면서 "가족에게 피해만 준다는 걱정이 먼저 앞서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소록도 주민들은 천형(天刑)으로 여겨졌던 한센병으로 인해 가족 앞에 나타나지도 못하고 잊혀져갔다. 이는 한센병이 무조건 유전된다는 잘못된 인식과 사회적 편견이 가져다준 결과다.
지난해 5월 일본의 구마모토 지방법원은 '나병환자 격리정책은 인권상의 제한과 차별'로 규정하고 일본 정부를 상대로 '127명에게 18억엔의 보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려 한센병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정책에 경종을 울린 바 있다.
이와 관련 소사모는 "강제격리 수용법이 1963년 임의규정으로 완화되기까지 정부가 환자들을 강제 격리시킨 것은 명백한 인권침해"로 규정하고 격리 수용된 이들의 피해 진상파악과 배상을 주 내용으로 하는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2000년말 정부기관 등록자수는 1만8260명으로 점차 줄고 있는 추세로 이 중 한센병환자(양성환자)는 535명으로 3%를 차지해 1975년의 9.3%보다 크게 낮아졌다.
한센병력자(음성환자)들이 집단으로 주거하는 정착촌은 전국 88곳이며 보호시설은 7곳이다. MDT를 100% 시행한 결과 1999년 말 현재 신환자 발생은 21명(0.04/인구 100,000 명)으로 나타났다.
정착촌 또 다른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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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록도 중앙공원의 구라탑ⓒ 자오나눔선교회 |
더욱이 소록도에서는 환자들이 대를 잇지 못하게 강제 단종(斷種, 생식능력 제거) 수술을 1960년대 초까지 해왔으며 심지어 어린 소년에게까지 메스를 들이댄 적도 있었다.
현재 원생자치회, 한성협동회는 소사모와 협조해 당사자들을 중심으로 특별법 제정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또 지난해 7월 소사모는 구마모토현을 방문해 피해보상 청구 소송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고 일본 인권단체와 연대해 해방 전 인권유린을 자행한 일본 정부에 대한 소송을 제기할 것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이러한 격리와 편견은 과거의 역사가 아닌 현재진행형이다.
김덕모 집행위원장은 "한센병 환자나 병력자, 그 가족들은 여전히 사회적 편견과 냉대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면서 "62년 이후 재가치료가 허용되고 있지만 여전히 집단 치료정착촌 정책으로 일관해 육지 안의 또 다른 섬이다"고 주장했다.
한센병을 치료한 사람들도 그 병력(病歷) 때문에 별도의 정착촌을 형성해 살아가고 있다. 특히 이러한 '소외'는 병력자(病歷者)의 후손에게 고스란히 대물림되고 있는 실정이다. 집단촌에 위치한 학교는 '특수지역학교'로 분류되어 있고 10명도 채 안되는 분교로 운영되는 경우에도 본교와의 통합이 안되고 있다. 학부모들의 반대 때문이다.
소록도, 역사와 인권의 학습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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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워싱턴의 홀로 코스트 박물관과 같은 인권·복지교육의 장으로, 역사 박물관으로 보존·발전시키자는 것.
고흥군 도양읍에 위치한 소록도는 여의도의 약 1.5배에 달하는 140만여 평의 섬으로 '작은 사슴을 닮아' 소록도라 불리워지게 됐다. 녹동항에서 배로 5분 정도의 거리에 놓여 있다. 행정구역상 고흥군 도양읍에 속하지만 국립나병원이 있어 소록도와 관련한 모든 행·재정적 사항은 보건복지부가 관리하고 있다.
60년대 초에는 수용인원이 6800여 명에 달한 적이 있으나 현재는 자활능력이 없는 824명이 거주하고 있다. 1988년부터 일반인들의 출입이 허용되면서 자연경관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반인의 경우 일정 시각(동결기 오후 5시경)이 되면 섬에서 나와야 한다.
그 곳에는 사망한 환자들을 화장해 위폐를 모신 만령당, 단종 수술대, 감금실 등 인권유린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지난해 12월 8일 원생자치회가 1945년 해방 직후 병원 운영권 문제로 갈등을 빚어 급기야 직원과 무장 치안대들에 의해 학살당한 원생대표들의 유골 발굴작업을 벌었던 병원 앞마당도 역사의 '증언'이다.
강대시 원생자치회장은 "병원 앞마당은 우리 선배들이 학살당한 현장이고 발굴 추진위를 결성해 정강이뼈를 발견했다"며 "이들의 위령비를 세우기 위해 모금운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철거된 옛 화장터처럼 역사의 흔적이나 현장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한 토론회에서 박미은(호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소록도는 역사적 증거임과 동시에 한센병 환자에 대한 인권유린과 권리박탈, 한센병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그로 인한 뿌리깊은 냉대와 차별은 역사적 현실이기도 하다"면서 "또 나눔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곳"이라고 소록도의 역사적·사회적 의미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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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거된 옛 화장터 소록도의 역사 유적 보존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 소사모 |
소록도는 그 자체로 소중한 자산이 된다.
한편 고흥군은 소록도에 골프장과 호텔을 건설해 해양관광권으로 개발할 것으로 알려졌다. 고흥군청의 한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계획하고 있는 것이 있지만 현재는 보건복지부 관할 지역으로 뭐라 말할 단계가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미 고흥군은 도양읍에서 소록도를 거쳐 거금도까지를 연결하는 연륙교 사업을 추진 중이다.
강성관 기자 rainbow@ohmynews.com
2002/01/25 오전 11:49 ⓒ 2002 OhmyNews
※소록도 중앙공원
단일 공원으로서는 국내 최대. 6천평 넓이에 잎에 금물이 든 듯한 황금편백과 실편백, 히말리야 시다 등 쉽사리 볼 수 없는 나무들이 별천지를 이루고 있다. 70년 전 쇠약한 병자들을 강제로 내몰아 3년 6개월여 동안 만든 공원이라는 푯말이 찾은 이들의 마음을 일순 숙연케 한다. 중앙공원에서도 최고의 볼거리는 구라탑 뒤쪽 언덕에 놓인 <메도 죽고 놔도 죽는 바위>다. 딱 이불 한장 크기의 이 바위는 완도에서 옮겨왔다고 하는데, 소록도의 환자들이 이 바위를 떼매올때 허리가 부러져 죽은 사람이 부지기수고 목도를 놓았다가 매 맞아 죽은 사람들도 숱하여서 이름 붙여진 한서린 바위다. 이 바위위에 한하운의 보리피리가 새겨져 있다. 이곳에서 굽어보는 중앙공원이 아주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