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의 소원을 담았던 정월 대보름 둥근달이 이그려지니
여인의 실 눈썹 같은 그믐달이 되었다.
희미한 그 빛은 새벽녘의 차디찬 정원의 잔디밭을
쓰다듬고 저 멀리 산 아래동네 깜박이는 가로등과 가벼운 입맞춤으로 정을 나누고 있다.
만상이 침묵속에 잠겨 있는 새볔시간,
지금은 호남고속도로로 변했지만 그 옛날 산남대로가 마을 뒤쪽에 있었기에 변방의 긴급상황을 알리는 파말마가 달려가고 이도령은 꿈속에 그리던 여인 춘향이를 만나러 갔었고
과거보러 한양천리 오가는 길목에 있었던 이 마을 지하골이 지금은 사람들의 관심속에 멀어져간
외진 마을이 되고 말았다.
주인 잃은 빈 집들은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서 힘 없는 노파의 허리처럼 휘어있고 잡초에 묻혀있다.
이 낯설고 물 선 곳에 남쪽나라에 고향을 둔 이방인은 처량한 달빛과 싸늘한 새볔의 한기를 온몸에 흠뻑 맞으며
향수를 달래 본다.
얼마쯤 왔을까!
내가 가고 있는 이길을...
밤 하늘에 수 많은 별들이 빛을 뿌리고 사라져 가듯이
나 또한 이름없이 빛도 없이 떠나가리라~
무명의 한 나그네가 이곳 지하골 마을에서 잠깐 머믈다 떠난 자리엔 어김없이 잡초가 무성하고
희미한 달빛이 어루만져 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