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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북방에서> :" 나의 자랑은 나의 힘은 없다. 바람과 물과 같이 지나고 없다 "  

아득한 옛날에 나는 떠났다.
부여를 숙신을 발해를 여진을 요를 금을
흥안령을 음산을 아무우르를 숭가리를
범과 사슴과 너구리를 배반하고
숭어와 메기와 개구리를 속이고 나는 떠났다.

나는 그때
자작나무와 이깔나무의 슬퍼하든 것을 기억한다.
갈대와 장풍의 붙드든 말도 잊지 않았다.
오로촌이 멧돌을 잡어 나를 잔치해 보내든 것도
쏠론이 십리길을 따러나와 울든 것도 잊지 않았다.

나는 그때
아모 이기지 못한 슬픔도 시름도 없이
다만 게을리 먼 앞대로 떠나 나왔다.
그리하여 따사한 햇귀에서 하이얀 옷을 입고
매끄러운 밥을 먹고 단샘을 마시고 낮잠을 잤다.
밤에는 먼 개소리에 놀라나고
아츰에는 지나가는 사람마다에게 절을 하면서도
나는 나의 부끄러움을 알지 못했다.

그동안 돌비는 깨어지고 많은 금은보화는 땅에 묻히고
가마귀도 긴 족보를 이루었는데
이리하여 또 아득한 새 옛날이 비롯하는 때
이제는 참으로 이기지 못한 슬픔과 시름에 쫓겨
나는 나의 옛 한울로 땅으로 - 나의 태반으로 돌아 왔으나

이미 해는 늘고 달은 파리하고 바람은 미치고
보래구름만 혼자 넋없이 떠도는데

아, 나의 조상은 형제는 일가친척은 정다운 이웃은
그리운 것은 사랑하는 것은 우러르는 것은
나의 자랑은 나의 힘은 없다 바람과 물과 같이 지나가고 없다.

- < 북방에서 > 백석(白石) -


아름다운 시인이었다. 누구에게도 말없이 새김질하는 시였다.

머리에 손깍지 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게 새김질하는 것이었다.
아내도 집도 다 없어지고
압록강 끄트머리
신의주 목수네 집 문간방에 들어
싸락눈 문창을 때리는 추운 날

다 가라앉아버린 마음 속 앙금
먼 산 뒷섶 바위섬에 따로 서서
어두워오는데
하이얀 눈 맞고 서 있는
할매나무 한 그루를 생각하고 있었다.

태어나서 자란 평안북도
말더듬이 인 듯
그 고장 말 아니면
다른 말은 몰라
여학교 영어교사를 아무리 해도
나는 말은 몰라
어쩌다 사랑하는 여자를 나타샤라고 불러보고는

도대체 시인이란 유난히 우렁차거나
유난히 애절하거나
그것말고
이리도 이른 봄날의 가난으로 남은 잿빛인가
어스름인가
누구인듯
아니 달밤의 박꽃인 듯
차츰차츰 밝아오는 어둠 아닌가
한국시의 가슴속 진짜

몇십년 동안 없다가 열이레 열여드레 하현달로 떴다.
먹고 싶게
울며
먹고 싶게

- < 백석(白石) > 고은(高銀) -


"녹두빛 더블 양복에 검은 웨이브(물결머리)를 날리면서 광화문을 지나는 백석의 풍모는 어찌보면 필리핀 사람 같기도 한 것이 과히 이국적이다!"

백석(白石)은 본명이 기행(夔行)이다. 1912년 7월 1일 평북 정주(定州) 출생이고, 그간에 오산소학교를 거쳐 오산중학을 마쳤다.

그러고 보면, 그들은 고향이 다 같고 같은 학교가 우연이 아니다. - 안서가, 소월이, 백석이. 그러나 깊숙이 보면 그것만이 아니다.

`白石의 시`가 생소하지 않으면서도 한울에서도 느끼는 생소함이 있다며야, 그것은 물 흐르듯 주저리 엮어내리는 정주(定州) 지방의 토속어, 사투리다. 멋쟁이며 동경 아오야마를 유학한 영문학도이고 보면 곱상한 한양말을 잘도 쓸 법도 한데 굳이 물리치고 자기 말을 고집한 까닭이. 그리고 서술적인(narrative poetry) 것까지가.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 큰집으로 가면
얼굴에 별자국이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쩍거리는
하루
여 베 한 필을 짠다는 벌 하나 건너 집엔
복숭아나무가 많은 신리(新里) 고무 고무의 딸
이녀(李女) 작은 이녀(李女)
열여섯에 사십(四十)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가 된
포족족하니
성이 잘 나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입술과 젖꼭지를
더 까만 예수 .....
- 이하 생략 -

그간의 쏟아낸 숱한 그의 시, 그 제목들만 보아도 대강 그것을 알 것이다.

- 여우난곬죽. 정주성. 박각시 오는 저녁. 꼴두기. 야우소회. 남향. 대산동. 물계리. 삼호. 물닭의소리. 노루. 산곡(山谷). 고사(古寺). 통영(通營). 이주하 이 곳에 눕다. 바다. 가무래기의 약(藥). 선우사(膳友辭). 북관. 넘언집 범같은 노큰마니. 외가집.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개. 절망. 고향. 석양. 나와 나타샤와 힌당나귀. 야반(夜半). 향악(鄕樂). 산숙(山宿). 산중음(山中音). 단풍. 백화(白樺). 북방에서. 등.

그렇지만, 그 무엇보다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 북방에서 >이다.

독자들을 숨막히게 줄줄하는 질곡(桎梏)의 사투리들. 그러나 그것은 하등의 구속일 수가 없다. 오히려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자유다. 생경한 그것이야말로 우리를 일깨우는 참 정신이다. 바로 그것이 白石이다.

아득한 옛날에 내가 떠났기에 지금 나는 내 강산을 잊지 못한다. 내 영혼의 언어들이 지금 나를 감시하고 있지 않은가.

기필코 부정할 수 없는 그들을 속이고 무력감에 달콤한 낮잠까지 즐기면서. 때론 하찮은 개소리에 놀라기도 하고 비굴하게 타인에게 나를 굽히기까지 하면서.

그렇지만, 산하(山河)는 그동안 만신창이로 할퀴이고 깨지고, 곧은 보배로운 정신은 땅에 묻히고, 족보조차 짓밟히고 불살라져 끊겼다.

이리하여 또 아득한 새 옛날이 비롯하는 때

슬픔과 시름에 쫓겨 내 한울 땅 - 내 본연의 태반으로 돌아왔으나 이미 앗아가고 없는, 내 조상, 형제, 일가친척, 정다운 이웃. 내 사랑하고 우러르는 일체가 소멸되고 없는 역사의 시제(詩制) 앞에서. 나는 자랑할 것도 힘쓸 그 아무것도 바람과 물과 같이 지나가고 없다.

<북방에서>. - 그것은 "내 앞에 놓인 역사의 시제"다.


백석(白石) 연보

어린시절의 이야기를 북방정서를 통해 시화(詩化)했다. 본명은 기행(夔行).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신식교육을 받았다. 1918년 오산소학교를 거쳐 오산중학교를 마치고 조선일보사 후원 장학생으로 일본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귀국하여 조선일보사에 입사, <여성>에서 편집을 맡아보다가 1935년 <조선일보>에 <정주성>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36년 조선일보사를 그만두고 함경남도 함흥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 교사로 있었으며 만주 신정(新京)에 잠시 머물다가 만주 안동으로 옮겨 세관업무를 보기도 했다. 해방 후 고향 정주에 머물면서 시를 썼으며, 6,25전쟁 후에는 북한에 그대로 남았다.

1936년에 펴낸 시집 <사슴>에 그의 시 대부분이 실려 있으며, 시 <여승(女僧)>에서 보이듯 외로움과 서러움의 정조를 바탕으로 했다. <여우 난 곬족> 조광 1935,12.<고야(古夜)> 조광.1936,1에서처럼 고향의 지명이나 이웃의 이름, 그리고 무술(巫術)의 소재가 자주 등장하며 정주 사투리를 그대로 썼는데, 이것은 일제 강점기에 모국어를 지키려는 그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사슴> 이후에는 시집을 펴내지 못했으며 그뒤 발표한 시로는 <통영(統營)> 조광1935,12. <고향> 삼천리문학1938,4.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南新義州柳洞朴時逢方)> 학풍,1948,10. 등 50여편이 있다. 시집으로 1987년 창작과 비평사에서 <백석시선집>과 1989년 고려원에서 <흰 바람벽이 있어> 등을 펴냈다.



# 詩人 약력

백기행(白夔行1912,7,1 ~ ?1963 ). 평안북도 정주출생. 1929년 오산고보 졸업. 동경 아오야먀(靑山)학원 영문과. 1935년 시 <정주성(定州城)을 조선일보에 발표하여 등단. 함흥영생여고 교사. 1942년 만주의 안동에서 세관업무종사. 1945년 이후 북한 고향에서 문학활동 중 사망(xx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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