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8화 : 검정새치
현대를 무한경쟁시대라고 한다.
학교에서만이 아닌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적자생존(適者生存)의 원칙이 적용된다.
그러면 이러한 경쟁시대에서 어떠한 사람이 이기게 되는가?
물론 여러 가지 요인(지연, 학연 등)이 있겠지만 순수하게 경쟁이 보장된 곳이라면 정보를 빨리 얻는 사람이 이기게 될 것이다.
곧, 누가 확실한 고급정보를 얼마나 빨리 알아내는가에 따라 승패가 판가름 날 것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개인이나 기업, 국가를 불문하고 이 정보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그러한 정보를 얻기 위하여 나름대로의 조직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수사관은 곳곳에 심어놓은 정보원을 움직이고, 기업은 산업스파이를, 국가는 정보기관을 움직이면서 필요할 땐 간첩도……
007시리즈는 정보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확인시켜 준 재미있는 영화였다.
‘이중스파이’가 판을 치기 때문에 누가 누구와 같은 편인 줄도 모르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장면을 우리는 숨죽이며 지켜보다가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야 사건의 전말을 이해하고 한 숨을 돌렸던!
우리에게는 이런 ‘이중스파이’보다는 ‘이중간첩’이라는 단어가 더 익숙하게 느껴지는데 그 이유는 60년대 말에 중앙정보부에서 조작하여 발표한 ‘이중간첩 이수근 사건’ 때문이리라. 또한 1998년 말엔가 상영되어 공전의 히트를 쳤던 영화 ‘쉬리’ 때문이기도 하고.
그러나 나는 이쯤에서 위의 세 가지 경우보다 일제강점기 동안 우리 민족을 탄압하는 총독부의 앞잡이로 군림한 일본경찰을 뒤에서 암암리에 도와주며 자기들의 잇속을 챙긴 밀정들과 끄나풀들의 악랄한 행위를 생각해 본다.(소설 ‘토지’에서도 최참판을 죽인 김평산의 아들 ‘거복’이가 ‘김두수’라는 이름으로 개명하고 밀정이 되어 암약한다)
그 후 몇 십 년이 지나고 국력이 세계에서 열 몇 번째라고 자랑하고 있는 지금 이 시대에도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없으리라고는 감히 보장 못하리라.
젊은 사람의 검은 머리에 드문드문 섞여서 난 흰 머리카락을 ‘새치’라고 하는데 새치가 흰색이 아닌 검은색이라면 우리는 새치를 육안으로 구분할 수 있을까?
이렇게 남이 알아보지 못하게 변신하여 간첩행위를 한 사람을 ‘검정새치’라고 한다는데 정말이지 어감에 딱 맞는 단어인 듯싶다.
이 ‘검정새치’라는 단어를 보면서 새삼 암담했었을 그 시절을 되돌아본다.
검정새치 : 같은 편인 체 하면서 남의 염탐꾼 노릇을 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끄나풀 : ①길지 아니한 끈의 나부랭이. ②남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