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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도전 : 박치기왕 김일 [27]

by 운영자 posted Jul 0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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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치기!`

 

어느 날 저녁 스승 역도산이 불렀다. "남들 다 하는 기술로는 일본에서 출세 못한다. 너는 한국인이니 박치기를 익혀라. 그게 네가 사는 길이다."

 

레슬링에서 상대에게 손발이 다 잡혔을 때 남은 건 머리뿐이다. 그걸로 상대의 이마나 뒤통수를 들이박으면 빠져나오는 것은 당연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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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와서 밝히지만 내가 레슬링 경기 중 가장 하기 싫었던 것이 박치기였다.
박치기를 하는 빛바랜 사진을 보니 지금도 머리가 띵한 것 같다.


 

스승은 이어서 특명을 내렸다. "머리를 돌덩이로 만들어!" 순간 귀가 솔깃했지만 깜짝 놀랐다. 스승이 막무가내 성격인 것은 익히 알지만 머리를 어떻게 돌덩이로 만든다 말인가. 혹독한 훈련 과정을 거치면 손과 발은 굳은살이 박여 돌덩이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마를 돌덩이로 만든다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그것은 무모한 단련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실 스승이 머리를 돌덩이로 만들어라고 했을 때 처음에는 농담하는 줄 알았다. 박치기는 굉장히 위험한 기술이다. 잘못하면 뇌진탕으로 사망할 수도 있다. 지금도 많은 프로레슬러들이 후유증을 우려, 가장 기피하는 기술이 박치기다. 스승이 나에게 그 기술을 익히라고 했을 때 일본 선수들조차 "역도산이 오오키 긴타로를 죽이려 한다"는 말까지 했을 정도였다.

 

더욱이 나의 이마는 딱딱하지도 않았다. 흔히들 짱구 같은 머리를 돌머리라 부르는 것 같은데 그만큼 딱딱할지 모른다. 어쨌든 나는 짱구가 아니었다. 내 이마는 어머니 이마를 빼닮았다. 어릴 적부터 이마가 잘생겼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사주관상으로 볼 때 이마가 잘생기면 명예와 돈 복이 있다고 하는데 그 말은 틀린 것은 아닌 것 같다. 누구 못지않게 명예도 누려 보고 돈도 벌었으니 말이다.

 

지금이야 눈에 익숙한 기술이 박치기지만 당시 박치기는 레슬링에서 극히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나보다 박치기를 먼저 했던 레슬러가 있다. 브라질 출신 레슬러다. 특히 로드 레이튼이란 레슬러는 박치기로 유명했다. 그는 1957년 스승 역도산과 경기에서 박치기를 선보인 적이 있었다. 2m 가까운 신장에 머리칼을 뒤로 곱게 빗어 넘겨 묘하게 단정한 모습을 한 그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박치기를 했다. 또 보보란 브라질 선수도 박치기를 곧잘 했다. 그와 나는 경기에서 박치기 대결을 펼친 적이 있었는데 내가 승리했지만 그의 박치기도 만만치 않았다.

 

브라질 선수들의 박치기는 몇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단순하게 상대의 머리를 잡고 이미를 들이받거나, 괴성을 지르며 격하게 난타하거나, 점프하여 위에서 정수리를 내리받는 것 등이다. 브라질 선수들은 화려한 방식보다는 상대의 머리를 감싸고는 탁탁 수수하게 때리는 박치기를 많이 구사했다. 당시 이런 장면을 여러 번 보았던 스승은 아마도 그때 박치기 기술에 대해 매력을 느꼈을 것으로 짐작된다.

 

왜냐하면 함경도가 고향인 스승은 어릴 적부터 소위 `평양 박치기`나 `함경도 박치기`를 많이 봤을 것이다. 서양인에 비해 덩치가 적었던 한국인들이 덩치 큰 외국인을 한 방에 자빠뜨리는 것이 박치기였다. 전설의 싸움꾼 시라소니를 일컫어 `평양 박치기`라 하지 않던가.

 

모르긴 몰라도 스승도 어릴 적 한국 사람들이 일본 순사와 러시아인들을 향해 박치기하는 장면을 여러 번 보았을 것이다. 조선인만이 갖고 있는 고유한 신체 무기 정도로 생각했던 스승은 브라질 선수가 박치기를 하자 내심 놀랐을 것이다. 스승도 경기에서 가끔 박치기를 했지만 기술적 측면보다는 상대를 혼쭐내기 위한 깜짝 전술이었다.

 

프로레슬링 승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의 정신과 혼을 빼는 것이다. 그 혼을 빼고 정신을 몽롱하게 한 후 카운터 다운에 들어가면 십중팔구 일어나지 못한다. 박치기가 가장 확실한 기술이었다. 그렇다면 이마를 돌덩이로 만들어야만 했다. `돌덩이 이마`를 만드는 것, 그것은 다시 스승의 매로부터 시작됐다.

 

 

<계속>

정병철 기자
사진=이호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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