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9. 1(수), 이태리
- 테레사 마크리 (Teresa Macri)
제5회 광주비엔날레가 오는 10일 개막된다. 이 행사의 큐레이터 중 한 사람인 로베르토 핀토(Roberto Pinto)가, 한국의 지적 발전의 상징이며, 대중과 아티스트들간의 실험 장소가 될 이 도시의 문화적 부활에 대해 이야기한다.
주제 ‘먼지 한 톨 물 한 방물’의 두 가지 요소는 이 전시회의 윤리적 전제를 제시한다. : “물과 먼지를 혼합하여 새로운 생명을 창조해낸다 : 우리들은 같은 땅 위에서 살고 있고, 생태학적, 인간적 붕괴를 피하기 위해서 우리는 서로 협력해야 한다.”
제5회 광주 비엔날레 (9월 10일 ~ 11월 13일) 개막에 앞서 명백한 강령 구조를 통해 현실과의 접목을 시도하는 한국의 이번 비엔날레에서 어시스턴트 큐레이터를 맡은 로베르토 핀토를 만나 인터뷰했다.
현재 밀라노에서 거주하며 작업 활동을 하고 있는 로마 출신의 로베르토 핀토는 분명 이태리에서 가장 빛나면서도 엄격한 큐레이터들 중에 한 사람이며, 존재 물과의 상호 관계를 항상 예술적 표현 속에서 추구해 온 한 사람이기도 하다. 이번 비엔날레의 강령으로 도입된 전제가 무척이나 흥미롭게 보여진다.
광주 비엔날레가 한국에서 최근 20년간 전개된 정치적 사건들과 관련하여 어떠한 발생기원을 갖는지요. 여전히 사회적 현실들과 어떤 (개념적) 연관들을 갖고 있는지요?
우선, 이 광주 비엔날레의 탄생과 관련된 바로 이 도시, 광주(약 140만 인구의 도시)에서 그 발단이 된 사건에 대해서 말하고 싶습니다.
80년대 초에, 이 도시의 여러 광장에서 학생들과 군대간에 충돌이 발생했습니다. 이로 인해, 백 명도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 당시 남한에서는 아직 독재정치가 이어지고 있었고, 더 분명하게 말하자면, 미국의 개입과 한국 전쟁과 전후의 분배 문제 등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광주에서 촉발된 항의운동은 한반도 남쪽의 민주화 전개에 불을 붙였습니다.
민주화가 이루어지자, 진실을 바로 잡고 알릴 필요성과 자신의 신념을 위해 죽어간 이들, 또 수 많은 에피소드들에 대한 기억을 보존할 기회임을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에 대한 반응은 전통적이면서 동시에 혁신적이었습니다. ; 한편에서는, 기념비와 시청각 자료를 통해, 역사가 되어버린 그 에피소드를 설명할 수 있는 추모 건축물을 건립하자는 것 ; 또 다른 한편에서는, 한국의 지적 발전을 위해 역사적으로 그 중심 역할을 해 온 이 도시의 문화적 부활을 일으키는 것으로 결국 이 후자의 방향으로 뜻이 모아져, 착수된 프로젝트 중 하나가, 1995년 현대미술 비엔날레를 개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진보적인 형태의 일종의 기념비가 될 수 있으며, 또한 하나의 국제적인 교류 조직을 통해, 지배적인 힘을 갖는 경제로부터, 동시에 문화적 관점에서도, 나라를 다시 묶을 수 있는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이 전시 행사가 한국 국민들에게 얼마나 비중을 갖는지에 대한 입증은, 160만 명 -후에 차츰 6,70만 명 정도로 자리 잡은- 을 초과하는 관람객의 방문이 그것을 말해줍니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통상, 25만 명 정도를 기록합니다.) 이러한 전제들을 바탕으로 하여, 비엔날레의 매 회마다 <윤리적 토대>가 분명하게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비엔날레 첫 회는 이용우에 의해 총지휘 되었는데(강력하게 추대된), 그가 이번 5회 비엔날레에도 또 다시 총감독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는 2명의 예술 감독으로 케리브라우어(Kerry Brougher)와 장석원을, 그리고, 4명으로 이루어진 어시스턴트 큐레이터로 밀레나 칼리노브스카 (Milena Kalinovska), 치카 오케케(Chika Okeke), 이원일 그리고 저를 선택했습니다.
이번 비엔날레는 아티스트와 참여관객 간의 공동 작업 메커니즘으로 구성되었다는데, 이러한 선택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부탁 드립니다.
이번 비엔날레의 전체적인 테마와 타이틀은 '먼지 한 톨 물 한 방울'(Grain of dust and drop of water)로 앞서 말한 윤리적 전제를 의미합니다.
먼지는 제거해야 할 무언가처럼, 우리가 부정적으로 보는 무엇이지만, 물과 함께 섞이면서 새로운 생명을 생성해내게 됩니다.
명백하게 말하면, 이러한 생각은 삶에 대한 불교적 개념의 예술적 반영이나 생태학적 의미로도 이해될 수 있습니다. : 우리 모두는 같은 땅, 지구에서 살고 있으며, 생태학적 관점 - 전 여기에 인간적 관점 또한 덧붙이고 싶습니다 - 에서 완전히 붕괴되지 않도록 우리는 협력해야만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개인주의의 더욱 극단의 꼭대기처럼 (사실은 제가 종종 그러합니다.) 보여지는 창조적-예술적 그것 또한 포함하여, 모든 레벨에 안정적인 방법으로 제시된 필수적이고 자연스런 공동 제작 메커니즘에 대한 하나의 반영일수 있습니다.
아티스트와 대중간의 만남을 통한 공동 작업의 개념이 이번 광주 비엔날레가 그 기본 핵심을 둔 <중심> 포인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주제를 놓고서 우리는 정말 많은 작업들을 진행했습니다. 우리는 전 세계에서 초청된 60여명의 사람들과 워크숍을 했습니다. 이 60여명의 사람들은 각각 세 개의 특정그룹으로 나뉘었습니다. : 학생, 교사, 은행원 등 <평범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일반 그룹, <오피니언 리더> 그룹 (철학, 종교, 기업 또는 전문가 분야), 마지막으로, 사회적 또는 정치적 활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그룹 (환경운동가, 동성애자를 위한 권리 또는 성차별에 관련된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
우리가 원하는 이상적인 작업 체계를 통하여 예술 세계와 아무런 상관이 없었던 사람들 - 물론, 그들도, 아마 예술을 보았거나 만나긴 했겠지만 전문가들의 그 어떤 방식으로는 아닌 - 을 합쳤습니다. 우리는 예술에 관한 그들의 기대가 무엇인지, 예술이 일상의 삶을 바꿀 수 있는 방식으로, 그들을 위해 예술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어떤 것인지 이해하길 원했습니다. 워크숍을 통하여 우리는 많은 아이디어를 수집하였고, 더불어 반대되거나 모순되는 많은 생각들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 아이디어들을 가지고, 우리는 큐레이터 스태프로서의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 아이디어를 통해 공동 작업이 가능한 단계에 있으면서, 우리의 참여관객들을 한 사람씩 만나고 토론의 결실일 수 있는 작품을 이끌어내기 위해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아티스트들을 찾고자 애썼습니다.
비엔날레의 어시스턴트 큐레이터(당신과 다른 큐레이터들)로서의 작업은 어떤 것들이었습니까 ?
앞서 제가 말했듯이, 우리는 아티스트들을 선정함에 있어, 전체적인 테마를 통해서나, 각 참여관객들과의 관계에서나 올바른 컴비네이션을 찾으려고 노력하면서, 하나의 팀으로서 작업하려 애썼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지리적 파트를 나눠 담당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유럽을 주로 담당하면서, 중앙 아메리카도 담당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율적인 방법으로는 프로젝트나 아티스트들을 선택하지는 않았습니다. 어떤 의미로 보면, 우리는 포함/제외의 전통적인 역할을 잃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진정한 문화적 매개자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누가 더욱 훌륭하고 누구는 그렇지 않다고 정하지 않습니다. 제안된 프로젝트의 원칙을 살리면서 발전시키는 데에 더욱 적합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이해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광주에서 당신이 느낀 예술적, 제도적 현실과 그 토양은 어떤 것이었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
이 도시의 많은 젊은 아티스트들이 결국 나중에는, 정말 그 자체로 거대 도시이면서 수도인 서울 - 아티스트들에게 자신의 직업 활동을 하면서 생존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는, 새로 생겨나는 예술 시장을 가진 - 로 옮겨가기 때문에 (뉴욕이나 런던이 아닌), 인큐베이터 같은 도시라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그 예술적 토양은 - 상상할 수 있듯이 - 매우 비옥합니다. 크고 중요한 행사를 준비하는 모든 중소 도시들로서는, 교류의 신경 중추들과 맞서기 위해 시도된 후에 포기되어지는 것이 치명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베니스는 아주 아름다운 도시이고, 그 곳엔 비엔날레가 있습니다. 베니스에, 최근, "Iuav"- 건축학과의 아주 흥미로운 프로젝트-가 추가되어진 한 아카데미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정말 소수의 아티스트들만이 공부를 마친 후에 거기에 남습니다. 전체적인 한국 무대에 대해서 말하자면, 예술적 관점에서 보면, 분명히 새로이 부각되는 나라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지만, 이것이 오래 전부터 더 이상 토론 중에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