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도 귀족'은 어떻게 등장했는가 ?
20세기 초 미국 자본주의를 지배한‘골드 핑거’ 전세계를 지배하는 고유명사가되다
‘사자’ JP모건-‘구렁이’룩펠러
거슬러 올라가면 시작은 미국의 남북전쟁이었다. 모건 가문의 원조 JP 모건은 아서 이스트먼이란 사람이 북군으로부터 구식 카빈소총을 구입하여 되파는 수상한 거래를 할 때 자금 지원을 담당했다. 북군이 무기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이스트먼은 소총 5천 정을 한 정당 3.5달러에 사들여서 중개인에게 12.5달러에 팔았고, 이중개인은 북군의 프레몽 장군에게 한 정당 22달러를 받고 다시 팔아넘겼다. 문제의 소총이 정부의 무기고에서 나와 다시 정부의 군대로 돌아가는 데 불과 3개월이 걸렸지만, 이 거래는 6배의 차익을 남겻다. 보기에 따라선 대단한 사업수완이겠지만, “한마디로 영악하기 짝이 없는 사기꾼 일당”이다. 이때 JP 모건의 나이 24살이었고, 그는 남북전쟁에서 마련한 사업자금을 바탕으로 JP 모건사를 설립해 키워나간다.
모건 가문의 전모를 파헤친 론 처노도 인정하는 것은 모건이 남북전쟁을 국가에 봉사할 기회가 아니라 돈 벌 기회로 보앗다는 점이다.
게티스버그 전투 이후에 모건 또한 징집을 받았지만 그는 부유층의 관례대로 300달러를 주고 다른 사람을 사서 군대에 보냈다. 대신에 전황에 따라 가격이 급하게 등락하던 금을 대량으로 매집해 당시 화폐로 16만달러를 벌어들였다. 히로세 다카시의 환산으론 2천억원이 넘는 액수다.
이를 바탕으로 모건은 부자 은행가로 등장했고 ‘귀족 자본가 시대’를 열엇다. 금융시장이 부실하고 원시적인 상황에서 은행가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며 사업을 확장해나갔고 한 지역의 ‘영주’처럼 군립했다. ‘강도 귀족’(robber baron)이란 말은 그래서 생겨났다.
1901년 당시 백수의 왕 ‘사자’라고도 불린 JP모건에게 필적할 만한 거대한 구렁이 ‘아나콘다’가 나타났으니, 그가 바로 석유사업가 룩펠러였다. 남북전쟁 때 군수물자의 운반과 판매로 막대한 수익을 올린 룩펠러는 “타인에게 결코 이익을 나눠주지 말것"이란 철칙을 갖고 있던 인물 이엇다.모건이 철도왕 밴더빌트로 부터 거대한 철도회사를 넘겨받은 시점에 룩펠러는 스텐더드오일이라는 회사의 정유탱크에 미국 전체 석유의 95%를 빨아들였다 .이 유례없는 독점의 이면에는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교활한 수법이 숨어있었다. 스탠더드오일의 독점에 대항하기 위해서 지역의 여러 석유업자들이 다른 회사로 힘을 모아주고보니 그 회사가 스탠더드오일의 자회사더라는 식이다. 가히 '자본주의자의 원형'(막스 베버)이라 부를 만한 초상이 아닐 수 없다.
베트남전 숨은 승자
1950년대 매카시즘 광풍의 종말도 모건-룩펠러 연합의 본질을 알게 해주는 사례다.그들이 필요로 한건 “빨갱이”의 위협을 조장해서 전쟁을 고무하고,그를 통해서 자기 소유의 기업이 거대한 이익을 올리는 것뿐이다(저자는 심지어 수폭 예산을 끌어내기 위해 미국에서 기획한 것이 한국 전쟁이었다고 주장한다) 히로세 다카시는 그런 시각으로 케네디의 암살과 닉슨의 워터게이트 사건도 다시 들여다보면, 이 모든 사건의 배후에서 모건과 룩펠러의 손길을 감지한다. 베트남전에서도 미국이라는 국가는 패햇지만 모건-룩펠러연합은 떼돈을 벌엇다. 그것이 그들의 전쟁 비즈니스 이다. 2차 세계대전이 터진 이후에도 모건-룩펠러연합은 미국의 참전을 막았다. 하지만 1941년 예상치 못하게도 일본군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함으로써 미국의 참전이 불가피해졌고 미국 자본가와 파시스트의 대오는 무너졌다. 물론 모건-룩펠러연합은 곧바로 반히틀러주의로 돌아서서 전쟁기간동안 막대한 이익을 챙겻지만 그들이 애초에 기획했던 시나리오는 아니었다.
미 각료 79% 모건, 룩펠러 수족
20세기의 첫 대통령 올린 매킨리부터 레이건까지 내각의 366개 각료 자리를 면밀하게 조사하여 그중 290개 자리 즉79%가 모건-룩펠러 연합의 수족이라는 사실을 든다. 덧붙여 1983년 기준으로 미국의 매출 10위권 기업,"1위 액슨, 2위 GM, 3위 모빌, 4위 포드, 5위 IBM, 6위 텍사코, 7위 모건, 8위 인디에나 스텐더드오일, 9위 룩펠러, 10위 GE" 순위도 각 기업의 진짜 주인으로 바꿔서 나열하면 '1위 룩펠러, 2위모건, 3위룩펠러, 4위 모건-룩펠러, 5위모건, 6위 모건-룩펠러, 7위 모건, 8위룩펠러, 9위 룩펠러, 10위 모건' 이된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모건과 룩펠러의 천하라는 것이다.
히로세 다카시는“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잇다. 재산이 불어나는 사람과 아무리 일해도 돈이 없는 사람이다‘(미국의 경제 지배자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럴 듯하게 들린다면 룩펠러 2세의 유명한 경구가 섬뜩하게 다가올 것이다. ”최고로 아름다운 장미는 주변의 어린 봉오리들이 희생되어야만 비로소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게 됩니다“ 참고로,그 장미의 이름이‘American Beauty Rose'이고,미국 수도 워싱턴의 상징이라한다.
출처<Economy Insight>창간호
중국 인터넷의 왕좌는 누구에게 돌아갈까?
지금 상황으로는 텐센트와 알리바바닷컴, 바이두가 가장 가능성이 큰 진영을 구축하고 있다.
이들은 중국에서 최초로 100억 달러의 관문을 넘은 기업이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시장을 독점했던 3대 포털사이트가 지금은 후방으로 밀려난 이유가 무엇일까?
시나닷컴은 상장첫날 시가총액이 텐센트의 10배가 넘었지만 지금은 반대로 역전된 이유가 무었일까?
시나닷컴은 지난 10년 동안 경영실적이 우수했고 직원수나 영업수익 모두 100배 가까이 증가했지만
자본시장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었일까? 직원이 1만 명인 텐센트의 시장 가치가 어떻게
직원 72만 명을 거느린 차이나텔레콤을 추월할 수 있었을까? 2015년 이전에 중국에서 시가총액
1천억달러 규모의 초대형 인터넷 회사가 적어도 한 곳 이상 탄생할 것이라는 주장의 근거는 무었일까?
중국 인터넷과 관련된 다양한 의문을 주의 깊게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고, 제대로 답변할 수 있는
사람은 더욱 찿기 힘들다 .
중국은 장차 미국을 대체하여 새롭게 전세계 인터넷 응용의 중심이 될 것이다 .
2015년 이전에 중국의 인터넷 사용자는 8억 명을 넘어서 미국의 두 배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
현재 전세계 인터넷 사용자는 17억 명이고 중국의 인터넷 사용자수는 4억 명에 육박하고 있다 .
2015년 이전에 중국의 인터넷 사용자는 8억 명을 돌파할 것이며, 중국에서 시가총액 1천억달러
이상의 초대형 인터넷 기업이 탄생할 것이란 전망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
건강하고 활력이 넘치는 1천억달러 규모의 세계 정상급 초대형 기업은 하나의 기준점이자 표상이다.
그 가운데는 시가총액 300억~500억달러 규모의 기업 3개~5개 , 100억달러 규모의 기업 10개,
10억달러 규모의 기업 50개 이상이 포함될 것이며, 100개 이상의 중국 기업이 국내외에서
상장될 것이다 .
그렇다면 중국 인터넷의 왕좌는 누구에게 돌아갈까 ?
지금 상황으로는 텐센트와 알리바바닷컴, 바이두가 가장 가능성이 크다 . 이들은 중국에서
최초로 100억달러의 관문을 넘은 기업이다 . 지금 추세대로라면 텐센트가 선두에 설 가능성이
가장크다 . 반면 알리바바는 규모가 가장 크고 전자상거래 분야에서 독점적 지위를 굳히고 있다.
물론 앞으로 5년 동안 중국의 인터넷은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
2007년 알리바바닷컴은 상장 첫날 시가 총액이 200억달러에 달했지만 아쉽게도 뒷심이
부족했다 .
이에 반해 텐센트의는 상장 이후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 2009년 9월8일 텐센트의
주가는 최고기록을 경신하여 130홍콩달러를 기록했고, 시가총액은 300억달러에 육박했다.
텐센트는 이베이와 야후를 제치고 구글과 아마존 다음의 시가총액 3위의 인터넷 기업이
된 것이다 . 아마존을 추월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 2010년 초 텐센트의 시가총액응 400억달러에
달했다 . 앞으로 중국 유수 인터넷 기업의 실적이 매년 30%~50%씩 증가한다고 계산하면 ,
5년 후 수입규모는 지금의 4배~5배가 된다 . 따라서 누가 먼저 1천억달러를 돌파 할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Economy Insight--
●팡싱동 (IT평론가)--필자는 IT전문 컨설팅 기업 차이나랩스닷컴, 블로그 사이트 블로그차이나,
전자상거래 사이트 이우글로벌넷의 공동창업자 및 대표이사로
'인터넷의 기수' '블로그의 대부'로 불린다 . 각종 언론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잇으며 중국 IT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평론가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