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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도전] ‘박치기왕’ 김일 [91]

by 운영자 posted Jul 0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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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영철의 "프로레슬링은 쇼"라는 발언으로 인한 파동은 나에게 불똥이 튀었다. "사건 배후에는 김일이 있다"는 것이다. 당시 소문은 이랬다. "김일이가 국내 프로레슬링계를 장악할 목적으로 오쿠마를 사주해 국내파 지존 장영철을 반칙으로 꺾게 했다"는 내용이었다.
 
난 "프로레슬링은 쇼"라는 말보다 그런 악소문에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프로레슬링에서 새우꺾기는 기술의 일종이다. 대개 그 기술에 걸리면 항복한다. 그러나 장영철은 항복하지 않았다.

그가 항복하지 않았던 것은 국내파 최고로 자처했던 그가 팬과 많은 제자 앞에서 일본의 중급 선수에게 졌다면 자존심이 구겨지고 나아가 프로레슬링 인생에 큰 오점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고통스러웠지만 오기로 버텼고, 그것을 보다 못한 그의 제자들이 링에 올라와 난투극을 벌이기에 이르렀다.
 
이유야 어쨌든 링 위에 난입한 것은 잘못됐다. 그것은 당시 프로레슬링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지나친 승부 집착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프로레슬링도 엄연한 스포츠다. 경기 중 아무리 상대가 밉고 죽이고 싶더라도 상대를 불구로 만드거나 팔과 다리를 부러뜨리면 안된다. 속된 말로 룰이 없으면 상대를 죽일 수 있는 것이 프로레슬링이다.

 

프로레슬링에선 상대의 팔·다리·허리를 부러지기 전까지 공격해도 상대가 항복하지 않으면 당연히 공격 방법을 바꾼다. 그것은 상대가 자칫 불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격 방법을 바꾸는 것은 상대 선수에 대한 일종의 배려인 셈이다.
 
대부분 선수들은 이 정도에 이를 만큼 공격당하면 항복하고 이를 당연하게 여기는 게 관례로 받아들여졌다. 항복하지 않으면 공격하는 사람도, 방어하는 사람도 난처해지기는 마찬가지다. 그때 다른 자세로 공격 방법을 바꾸면 그것을 본 관중은 쇼라고 한다. 짜고 한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프로레슬링은 엄연히 룰이 있다. 그 룰을 잘못 이해하면 쇼라고 보는 데 그것은 대단히 잘못된 시각이다. 가령 고환을 차고, 주먹으로 치고, 물고, 눈을 찌르는 행위 등은 금지돼 있다. 또 무턱대고 차든지, 짓밟든지, 후두부를 너무 심하게 바닥에 부딪치게 한다든지, 그 밖의 위험한 역기술 등은 금지돼 있다. 선수들은 상대가 아무리 미워도 이런 공격을 삼간다.
 
프로레슬링이 아마추어 레슬링과 다른 점이 있다면 어느 정도 반칙이 허용된다는 점이다. 금기 기술, 즉 반칙 기술도 기술의 일종으로 받아들인다. 물론 반칙을 범했을 때 심판이 5까지 센다. 그때까지 그만두지 않으면 반칙패가 된다. 이것을 뒤집어 보면 심판이 5를 셀 때까지 반칙을 해도 괜찮다는 것이다.
 
상대를 거침없이 공격해야만 승리자가 되는 레슬링에서 룰을 무시하고 난폭한 경기를 펼친다면 한쪽은 죽을 것이다. 죽을 염려가 있는 경기를 법에서 하도록 놓아 둘 리 없다. 경찰은 당장 레슬러들을 살인 치상 혐의로 입건할 것이다. 그래서 룰이 필요하고, 적당한 반칙을 허용하지만 심판이 제재를 가한다.
 
선수들이 반칙을 하고 상대를 더 무참하게 공격하는 것은 결국 '폴'을 따내기 위한 것이다. 프로레슬링은 상대의 어깨를 바닥에 폴하는 것으로 승패를 겨루는 경기다. 때리고 차고 던져 버리는 거친 기술은 물론 때로는 심판의 눈을 속이고 난폭한 공격을 하는 것은 긍극적으로 폴을 따내기 위한 것이다.
 
난 이제까지 프로레슬링 경기 중 선수가 사망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거의 없다. 스포츠 중 가장 난폭한 경기가 프로레슬링인데 사망자가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선수들이 난폭한 경기를 펼치더라도 죽기는커녕 큰 부상도 입지 않는 것은 연습 때문이다. 프로레슬링 선수들은 연습을 지독하게 한다. 이는 자신의 몸을 보호하고 상대의 공격에서 살아남기 위한 것이다.
 
지난 10일 천하장사 이태현이 프라이드 데뷔전에서 기권패했다는 소식을 언론을 통해 접했다. 알고 보니 이태현은 한 달도 운동하지 않고 링에 올랐던 것 같다. 그 소리를 듣고 "허허! 그 친구 큰일 나겠구먼" 하고 우려했다. 나의 후계자 이왕표는 2년 동안 죽도록 연습만 하고 링에 올랐다.

 

그런데도 이왕표는 스무 번 싸워 스무 번 내리 패했다. 스승 역도산은 나를 1년 동안 맞는 연습만 시켰다. 사각의 링은 '대충'은 허락하지 않는다. 땀의 대가를 주는 것이 사각의 링이며, 그것이 사각의 링의 정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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