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했으면 하는 우리의 염원을 알았는지
태풍도 비켜갔네요.
아침 길에 보니 봉숭화도 꽃을 피웠드라구요.
손톱에 꽃물들이던 그 날 생각하며
후덥지근한 더위쯤은 이겨야겠지요.
2006년 7월 12일 홀가분한 마음으로 일과를 시작하기 위해
옛날이야기 하나 전해드립니다
고려장을 중단한 설화
옛날 고려시대에는 남자나 여자나 일흔 살(70)이 넘으면 억지로 묻거나 깊은 산에 내다 버린 풍습이 있었으며 이를 [고려장]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어느 고을에 효성이 지극한 아들을 둔 일흔 살이 되는 노파가 있어서 고려장을 하기는 해야 하는데 아들이 생각하기엔 살아있는 어머니를 산에 지고 가서 묻을 수가 없었지요.
망설이다가 할 수 없이 국법에 의해 고려장을 하기로 마음먹고 산에 가보니 높은 곳에 넓고 편편한 좋은 반석이 있었어요. 그래서 어머니를 이 반석에 고려장을 하기로 하였답니다.
“어머니 ! 오늘은 어머님을 업고 놀러 가렵니다.”
"어디를"
“저 산에 놀기 좋은 반석이 있습디다. 거기 가서 하루 놀고 오지요.”
"그래! 즐겁겠구나."
아들은 어머니에게 거짓말로 놀러 간다고 하였으며 어머니는 벌써 아들의 뜻을 알았고 아들이 할 수없이 거짓말을 하는 것도 알았습니다.
"어머님 업히시오"
“오냐 !”
아들도 어머니도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지마는 서로 속내 말은 못하고 업고 업혀 갔다
길은 매우 멀었고 몇 번씩 쉬고 쉬면서 가는데 어머니가 생각해 보니 먼 길을 업고 가느라고 고될 뿐 아니라 밑만 보고 걷다가는아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고 못 찾을까봐 걱정이 되어서 쉴때마다 나뭇가지를 꺽어 놓았다
아들은 어머니가 나뭇가지를 꺽는 이유를 몰랐으며 아마 적적함을 달래려고 무심히 꺽으시려니 생각하였다. 그럭저럭 목적지인 반석에 도착했다
"어머니 여기요"
"자리가 참 좋구나"
어머니는 슬프기만 했다. 그러나 아들의 섭섭해 하는 마음을 아는지라 말로 나타내지 않았으며 아들이 하는 대로 따를 뿐이었지요.
"오늘 여기서 먹고 잡시다" 그러자
"너도 많이 먹어라"
"예 먹습니다 어머니"
"기운이 빠졌지 업고 오느라고"
"괜찮습니다"
"올해는 농사가 잘 되어야 할 텐데"
"잘 될 겁니다 비가 잘 오니까요"
고려장 하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아들이 잘 살기를 걱정해 주시는 어머니의 가슴은
얼마나 쓰리겠느냐 생각하니 아들의 가슴은 찢어지는 것 같았다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가려고 했다 아들은 하는 수 없어서 거짓말로
“어머니 ! 여기 계십시오. 집에 가서 저녁밥을 가져오리다.”
하고 갈려고 하자 어머니는 아들이 산에 자기를 버리고 가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얘야 길을 찾겠느냐 길을 모르겠거든 나뭇가지 꺾인 것을 보고 따라 가거라. 내가 올 때 가끔 나뭇가지를 꺾어 놓았다.”
이 말을 들으니 아들의 가슴은 더욱 더 찢어질 것 같았습니다. 집으로 오는 발걸음은 허둥지둥 갈피를 못 잡았다
"왜 일흔 살이 되면 이렇게 생매장을 해야 하나 원수 같은 일이로다" 하고 한탄을 하면서 걸었다.
집에 돌아와서 어머니가 살림 걱정이며 길을 잃을까 걱정하며 나뭇가지를 꺾어 두었더라는 얘기를 아내에게 했더니 아내도 울면서
"여보, 법이 다 뭐요 어서 어머니를 모셔 옵시다"
"정말이오 ?"
"정말이지요"
"법인데...... ?"
"그 법에 따라 우리가 벌을 받으면 되는거 아닙니까"
"당신은 마음이 참 착하오"
"어서 갑시다. 어머니가 추우실테니 밤에라도 가서 업고 옵시다"
"그럽시다"
아들은 등불을 켜 들고 그 반석이 있는 곳을 찾아 갔다. 반석 가까이 가니까 무슨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때는 불도 꺼지고 없었습니다.
이상하고 무서운 기운이 들었다 머리카락이 쭈뼛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니
비나이다. 비나이다. 신령님께 비나이다. 용왕님께 비나이다.
우리아들 풍년들어 바리바리 실어다가 노적봉 쌓아 두고두고 먹고 남고 쓰고 남고
오래오래 길이길이 부귀영화 누리도록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고 아들 잘 되기를 빌고 있지 않은가
"어머니 !" 하고 앞에 꿇어앉으니
아들내외도 울고 어머니도 울고 온 산이 울음바다가 되었다
이후 일흔이 넘었는데 고려장을 하지 않고 어머니를 모셔온 일이 온 누리에 퍼졌다
그러자 이 이야기가 임금님께 알려져서 아들이 임금 앞에 불려가게 되었다
"너에게 일흔 넘은 노모가 있다면서 ?"
"예, 그렇습니다"
"고려장을 했느냐 ?"
"못 했습니다"
"고려장은 법인데 국법을 어긴 까닭은 ?"
"예, 황송하오나 이러이러 하옵니다" 임금앞에 꿇어 앉은 아들이 전,후 이야기를 하자 임금님도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니
“고려장하려고 업고 가는 줄을 알면서도 아들이 길을 잃을까봐 나뭇가지를 꺾었단 말이지?”
"예, 그러하오니 그 사랑에 감읍하여 다시 집으로 어머님을 업고 왔나이다."
"알겠다. 효성이 지극하구나."
임금님은 그 아들에게 양식과 베를 한 짐씩 상으로 주어 칭찬하고 “이제부터는 나이 일흔이 넘더라도 생매장하는 것을 아니하여도 좋으니라" 하고 어명을 내려 고려장의 풍습이 사라져갔다고 합니다.
지긋한 연세에 무르익은 중년의 향기가 이곳 저곳에서 풍겨저 옵니다.
그 좋은 글 솜씨가 예전 같으면 사장 되었을 터인데,
세상이 좋아저서 이렇게 달그림자님의 글들을 대할 수 있어 참 행운 입니다.
제가 누군지는 아실런지요?
금산면사무소에서 근무하실 때 자주 얼굴을 뵈었던 명천 이장입니다.
얼렁 뚱땅 강의 듣고 이장 시험봐서 100점 받은 적이 있는 이장을 기억 하실런지요... ㅎㅎㅎㅎ
광주에서 생활하면서도 인사드리지 못함을 먼저 죄스럽게 여기며 양해를 구합니다.
늘 건승하시길 비오며, 기회가 되면 인사 드리겠습니다.
- 광주에서 블렉스타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