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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2015.07.08 13:35

"생계를 위해 뒀다"

 

한국에 돌아와 군입대를 기다리던 조훈현이 어느 날 "기원에 가야 하니 차비를 달라"고 하자 어머니의 얼굴에 당황한 빛이 스쳤다. 어머니가 옆집에서 꿔온 돈으로 택시를 타고 나가면서 조훈현은 '내가 벌어야 하는구나' 하고 깨달았다. 조훈현은 "그때 주변을 돌아보니 집안에 돈을 벌 만한 사람이 나밖에 없더라. 바로 그 순간 바둑이 내 직업이고 그걸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사실이 사무쳤다"고 했다.

 

입대 직전 부산일보에서 주최하는 최고위전에 출전해 우승했다. 당시 상금이 꽤 됐을 텐데.

 

"30만원 정도였는데 당시로선 거금이었다. 그 돈을 몽땅 어머니께 드렸다. 마침 여동생이 미대에 합격해 등록금이며 화구(畵具)며 돈 들 일이 많았는데 가계에 꽤 보탬이 됐다. 그 이후로 나는 생계를 위해 바둑을 둬야 한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다."

 

생계를 위해 바둑을 두다니?

 

"프로란 이겨서 돈을 버는 사람이다. 한판이라도 이겨야 돈이 된다. 자식으로서, 결혼한 이후엔 가장으로서 책임을 져야 하는데 내겐 바둑밖에 길이 없었다. 이겨야만 여유가 생겼다. 그 책임감 때문에 더 열심히 뒀고, 그러다보니 좋은 결과가 나왔다."

 

결국 바둑도 밥벌이라는 이야기인가.

 

"직업이란 기본적으로 생계를 위한 것이다. 내가 바둑을 열심히 해서 타이틀이 하나씩 쌓여갈 때마다 집안 형편이 조금씩 나아졌다. 부모님은 시장에서 채소장사를 하셨고, 시멘트 블록으로 지은 달동네의 아주 허름한 집에서 살았다. 그렇게 가난한 집 아이였던 내가 바둑을 통해 내 영토를 넓혀가면서 차차 삶의 영토도 넓어졌다. 달동네에서 화곡동 양옥으로, 연희동 2층 양옥으로, 그리고 지금 집으로 옮겨올 수 있었다. 노력한 만큼 더 많이 가지고 더 좋은 것들을 누릴 수 있다는 것만큼 가장 확실한 동기 부여가 있을까."

 

직업을 자아실현을 위한 것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하고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이 달라서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 '그럼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면, '당장 어떻게 먹고살지 막막해서 못하겠다'고 한다. 이렇게 꿈과 현실 사이에서 마음을 잡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더 중요한 건 먹고사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먼저 먹고사는 길부터 뚫어야 한다. 생계가 막히면 꿈이고 뭐고 없다. 치사하고 초라하게 느껴질지 몰라도 그게 현실이다."

 

조훈현은 지난해 인기리에 방영된 TV 드라마 '미생'에서 주인공 장그래의 꿈속 스승으로 깜짝 출연했다. 그는 "'미생'을 보니 살아남는다는 것은 바둑판 위에서나, 사회에서나 쉽지가 않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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