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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2015.06.26 13:07

조훈현은 지금까지 2700판이 넘는 대국을 치렀고, 그 중 1900판 정도를 이겼다. 그는 사실 내가 이기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지는 거다. 프로 기사들의 경우 실력은 비슷하다. 누가 자신의 100%를 다하느냐에서 승패가 갈린다. 인간이 100%를 다하는 것만큼 무서운 게 없다. 최선을 다하다 보면 상대가 무너지게 돼 있다고 했다. 지면 우측 상단의 無心은 조훈현의 좌우명으로 자신이 직접 쓴 휘호이다. / 이태경 기자 지난 16일 서울 평창동 자택, 백발이 성성한 조훈현(62)이 편안한 표정으로 웃었다. 오른쪽 볼에 보조개가 팼다. 면바지에 남방셔츠 차림의 그는 반상(盤上)을 호령하는 매서운 승부사라기보다는 온화한 노()학자처럼 보였다. 조훈현은 지금까지 2700판이 넘는 대국을 치렀고, 그중 1900판 정도를 이겼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이긴 대국보다 진 대국이 더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잉창치배 같은 세계적인 바둑 대회에서 승리한 기쁨보다 제자 이창호한테 반집 차이로 패배한 기억이 더 크다는 것이다. 그는 패했을 때의 소회와 깨달음을 돌이켜 최근 에세이집 '조훈현, 고수의 생각법'을 냈다.

 

"살려고 패배를 인정했다"

 

바둑계에서 당신에게 붙인 별칭이 '전신(戰神)'이다. '싸움의 신'이 승리보다 패배를 더 오래 기억하다니 의외다.

 

"이기면 후회가 없다. 결과가 좋은 거니까. 지는 건 다르다. 지는 데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 아팠거나, '농땡이'를 쳤거나, 정신적인 충격이 있었거나. 왜 졌는지 생각하고 후회하고 다음 대국을 위해 새로운 다짐을 하다 보면 아무래도 이긴 대국보다는 진 대국에 대해 더 오래 생각하게 된다."

 

한창 나이인 37세 때 15세 제자 이창호에게 패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참담하지 않았나.

 

"충격이 컸다. 당시 나는 최고수였다. 진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서로 바둑판 위에서 '죽이느냐 살리느냐' 하는 사이인데 아침마다 집을 같이 나서는 것도 고역이었다. 1991년 창호가 독립해서 나갔다. 그 무렵 창호와 경기를 할 때면 힘들어서 쓰러질 지경이 되곤 했다. 카메라가 지켜보고 있는데도 의자에 거의 드러누운 자세로 바둑을 뒀다. 언론에선 이를 '와기(臥棋·누워서 바둑을 둠)'라며 점잖게 표현해 주었지만, 사실 나는 창호를 방어하느라 몸이 무너져내릴 지경이었다. 내가 쌓은 모든 관록과 경험이 젊음의 힘과 패기 앞에서 무기력했다. 젊음이 가장 무섭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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