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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2015.05.27 15:27

3. 동요하는(?) 한국 진영

 

1996년 세모인 1227.

장소를 바꾸어 서울 힐튼호텔에서 제5회 진로배 2차전이 개막되었다. 관심의 초점은 당연히 서봉수의 연승행진이었다. 이미 4연승을 올리고 있는 서봉수가 앞으로 몇 승이나 더 추가할 것인지?였다.

서봉수 앞에 나타난 사람은 중국의 신진 천린신 9단이었다. 그러나 서봉수는 천린신을 불계로 꺾으며 5연승으로 치달았다.

1228. 6연승의 무대에서 만난 사람은 왕리청. 이번에야말로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그러나 왕리청도 이제는 이미 늘상 경험하던 돌풍이 아니라 가공의 광풍 같은 토네이도로 변해 버린 서봉수의 회오리를 저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루를 쉬고 1230, 서봉수는 중국의 중견 차오다위안을 맞이했다. 서봉수의 고전이었다.

서봉수의 연승행진은 6연승으로 끝나는 것 같았다. 서봉수의 돌진에 갈채를 보내고 있던 사람들은 서봉수의 연승이 끝나는 것을 진정으로 아쉬워하고 있었다.

 

그랬는데,...

승부의 여신은 바둑이 그대로 차오다위안의 승리로 끝나는 것을 내버려두지를 않았다. 차오다위안은 이번 최강전의 히어로 서봉수를 내가 꺾는다는 것에 너무 흥분을 했다. 흥분한 바둑이 그대로 무사히 갈 리가 없었다. 서봉수는 차오다위안의 종반 실착을 놓치지 않았고, 대역전극을 완성시켰다.

 

서봉수가 7연승으로 질주하자 한국팀 진영에서도 동요가 일어났다. 한국팀에는 아직도 조훈현 유창혁 이창호, 이렇게 세 사람이나 남아 있었다. 출전 오더는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서봉수의 활약을 지켜보면서, 어차피 서봉수가 다 끝내지는 못할 것이므로 천천히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사정이 전혀 달라진 것이었다.

잘못하면 한 판도 두지 못하고 무대에서 내려갈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었다. 우승 상금이야 똑같이 배당을 받겠지만, 바둑을 안 두면 대국료는 없는 것. 대국료도 대국료지만 승부사로서 싸움터에 나와 한 판도 싸우지 않은 채 우승 상금을 배당받는다는 것은 따분하고도 어색한 일이었다.

 

다음 상대는 일본의 요다 노리모토.

조훈현9단이 먼저 투지를 과시했다. 유창혁도 나에게도 기회가 주어지기를 바란다고 웃으면서 의사를 밝혔다. 이창호는 물론 말이 없었다. 이렇듯 한국팀 진영에서 즐거운 비명이 새어나오는 사이에 96년이 저물고 있었다.

1231. 서봉수 9단은 아침에 기자들을 만나자

", 이거 오늘 같은 날도 바둑을 두어야 하니!"하며 짐짓 푸념을 했다.

9단은 기자들과 커피를 마시며 평소와 같은 농담으로 가볍게 웃고 떠들었다. 8연승 결전장에 들어가기 전에 긴장을 풀려는 것이었지만, 그의 얼굴 한쪽은 여느 때와 달리 조금은 굳어 있었다. "자신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서9단은 손으로 자기 목을 치는 제스처로 좌중을 다시 한 번 웃겨 주고는 대국장으로 들어갔다.

상대는 한국 킬러라는 별명을 얻은 일본의 요다 노리모토였다. 검토실의 바둑기자들이 진행담당자에게 "요다 9단이 오늘은 어때요? 뭐 특별한 건 없나요?" 라고 물었다. 뜻이 있는 질문이었다. 몇 년 전에 있었던 조훈현9단과 요다9단의 동양증권배 결승 5번기에서 요다 9단이 대국장에 귀마개를 하고 나왔던 것이 다시 화제가 되었다. 그랬었다. 아침에 대국장에 나타난 요다는, 난데없이 귀마개를 하고 있었다. 9단이 중얼거리는 것이 듣기 싫어서 그랬다는 것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조9단이 대국 중에 중얼거리는 것은 정평이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고, 중얼거리는 내용이 각양각색일 뿐, 대국을 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한 마디 중얼거림도 없이 바둑을 두는 사람은 한일을 통틀어 이창호 한 사람 정도일 것이다. 그런 중에도 조9단의 중얼거림이 화려하고 요란하며 다양한 것은 사실이었다. 바둑이 무르익으면 일단 흥얼흥얼 노랫가락 흘러나오다가, 물론 큰 소리로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은 아니다. 잘 들리지도 않을 정도이다. 9단은 사실 매너도 아주 훌륭하고 깨끗한 사람이다. 그러다가 승부처에 이르면 자신도 모르게 "망했나!" "미쳤나!" "안 되나!" 등이 쉼 없이 반복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요다가 그 정도를 못 견뎌 귀마개를 한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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