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공지한대로 이번부터는 서봉수의 경이적인 '진로배 9연승' 에 얽힌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서봉수의 진로배 9연승!
서봉수가 「불멸의 대신화!」로 불리우는 진로배 9연승의 기록을 달성한 제5회 진로배 세계바둑최강전의 막이 오른 것은 1996년 12월 10일이었다.
진로배는 한•중•일 세 나라에서 각 5명의 선수가 참가하여 이긴 사람이질 때까지 싸우는, 이를테면 차륜전이었다.
제5회 진로배에 출전한 우리 대표팀은 조훈현•서봉수•이창호•유창혁•김영환 이렇게 5명이었다. 초등학교 시절에 전국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부산의 신동으로 불렸던 김영환이 선봉인 제5장을 맡았고, 서봉수는 제4장이었다.
대회가 시작되면 각국은 자국의 선수 오더를 제출하는데, 그때의 오더는 대개 객관적인 전력, 간단히 말해 성적순인 것이 보통이었다. 우리 다섯 명 중에서는 김영환이 비교적 약체였고, 그 나머지는 4인방이었다. 4인방에서도 내부의 서열이 있었다. 주지하는 대로 이창호,조훈현,유창혁,서봉수의 순서였다. 단, 처음에 제출하는 오더가 불변의 것은 아니었다. 상황에 따라 다음 출전 선수의 순서를 바꿀 수가 있었다.
어쨌거나 서봉수는 4인방 중에서는 서열이 제일 낮아 제2장을 맡게 된 것이었는데, 운명적이게도 그것이 서봉수에게 일생일대의 광영을 가져다 줄 줄은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그 무렵까지, 서봉수가 각종 국제대회에 나가 올린 성적은 64전 44승 22패로 65.6%의 승률이었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중국 기사에게는 특히 경이로운 전적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로 그 전적은 15전 14승 1패로 무려 93.3%의 승률. 전승에 가까운 것이었다. 일본의 요다가 한국 킬러였다면 서봉수는 최강의 중국 킬러였다.
이미 공지한대로 이번부터는 서봉수의 경이적인 '진로배 9연승' 에 얽힌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서봉수의 진로배 9연승!
서봉수가 「불멸의 대신화!」로 불리우는 진로배 9연승의 기록을 달성한 제5회 진로배 세계바둑최강전의 막이 오른 것은 1996년 12월 10일이었다.
진로배는 한•중•일 세 나라에서 각 5명의 선수가 참가하여 이긴 사람이질 때까지 싸우는, 이를테면 차륜전이었다.
제5회 진로배에 출전한 우리 대표팀은 조훈현•서봉수•이창호•유창혁•김영환 이렇게 5명이었다. 초등학교 시절에 전국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부산의 신동으로 불렸던 김영환이 선봉인 제5장을 맡았고, 서봉수는 제4장이었다.
대회가 시작되면 각국은 자국의 선수 오더를 제출하는데, 그때의 오더는 대개 객관적인 전력, 간단히 말해 성적순인 것이 보통이었다. 우리 다섯 명 중에서는 김영환이 비교적 약체였고, 그 나머지는 4인방이었다. 4인방에서도 내부의 서열이 있었다. 주지하는 대로 이창호,조훈현,유창혁,서봉수의 순서였다. 단, 처음에 제출하는 오더가 불변의 것은 아니었다. 상황에 따라 다음 출전 선수의 순서를 바꿀 수가 있었다.
어쨌거나 서봉수는 4인방 중에서는 서열이 제일 낮아 제2장을 맡게 된 것이었는데, 운명적이게도 그것이 서봉수에게 일생일대의 광영을 가져다 줄 줄은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그 무렵까지, 서봉수가 각종 국제대회에 나가 올린 성적은 64전 44승 22패로 65.6%의 승률이었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중국 기사에게는 특히 경이로운 전적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로 그 전적은 15전 14승 1패로 무려 93.3%의 승률. 전승에 가까운 것이었다. 일본의 요다가 한국 킬러였다면 서봉수는 최강의 중국 킬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