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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2015.07.17 15:02

6. 서울에서 개최된 85년 기성전(1)

 

(1985년 서울에서 개막전을 펼친 9기 기성전 도전 7번기는 일본기전사상 처음으로 해외에서 벌인 도전무대로 대단한 관심을 끌었다.)

 

85년 제9기 째에 이른 기성은 명인, 본인방을 포함한 3대타이틀 중에서 가장 새로운 타이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프로바둑계 최고를 상징하는 기전이 된 것은 무엇보다도 상금이 컸기 때문이다. 명인전이 2천만 엔, 본인방전이 16백만 엔인 것에 비해 기성전은 타이틀전 승자에게 23백만 엔, 패자에게 5백만 엔의 상금을 지급했다. 또 상금과는 별도로 기성 7백만 엔, 도전자 45십만 엔의 대국료가 계상돼 있기 때문에 타이틀방어에 성공하면 무려 3천만 엔을 손에 쥐게 된다. 그뿐이 아니다. 일단, 기성을 방어하면 차기 타이틀전을 보장받기 때문에 최소 12백만 엔의 수입까지 보장된다.

 

42백만 엔. 이런 큰 돈이 걸려있기 때문에 기성을 획득하는 순간 인생 역전이라는 말이, 일본 프로들은 상금이 작은 세계대회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말까지 나오는 것이다(2008년 현재 기성전 우승상금 42백만 엔). 그러나 일본 프로바둑 최고의 자리를 지칭하는 기성도 약점이 없는 건 아니었다. 역사가 짧은 탓에 일반인들은 기성이 명인보다 상위라는 느낌을 갖지 못했다. 아무리 최고의 상금을 강조해도 후발주자라는 약점 때문에 최고라는 이미지가 선명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시다시피 오랫동안 일본 프로바둑 최고(最高)의 자리는 전국시대의 효웅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로부터 그대야말로 진정한 메이진(名人)’이라는 말을 들었던 닛카이(日海)의 고사에서 유래된 명인(85년 당시 신, 구 명인전 포함 24기 진행)’의 몫이었고 최고(最古)는 그 닛카이의 아호로써 당대 최강자에게 계승되는 이름이었다가 훗날 일본 최초의 프로타이틀전 명칭으로 바뀐 본인방(85년 당시 40기 진행)’의 몫이었다.

 

요미우리신문이 기획한 프로바둑 사상 최초의 해외 도전기는, 9기 기성전을 바둑가의 최대화제로 떠올리고 동시에 이렇게 한 발 앞서 나감으로써 역시 조치훈이 타이틀을 보유중인 명인전의 주최사 아사히신문에게 최초라는 훈장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서울 기성전의 대국 장소는 소공동 롯데호텔 33층 로얄 스위트룸. 1박에 13백 달러나 하는 이 특별한 공간은 복도가 별도의 열쇠를 사용하는 문으로 차단된 국빈급 객실이었다. 실내에는 넓은 거실과 세 개의 침실이 있었는데 거실에 접한 회의실이 대국실로 사용됐다.

아침 910분 전. 와후쿠(和服)차림의 다케미야 마사키가 대국장에 들어섰다. 다케미야는 도전기 때 일본 전통의상을 입고 대국에 임하는데 전통의상을 입고 3대 타이틀전에 임하게 된 것은 4년만이다. 4년 전, 바로 앞에 앉게 될 조치훈에게 서열 3위 본인방을 빼앗긴 이래 입을 기회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잠시 뒤 말끔한 양복차림의 조치훈이 자리에 앉았다.

돌을 가려주십시오

입회인 사카다 에이오의 선언에 따라 조치훈이 백돌 바둑통에 오른 손을 넣어 한 움큼 돌을 쥐어 들어 올렸고 거의 동시에 다케미야가 흑돌 하나를 집어 바둑판 위에 올려놓았다.

 

조치훈이 주먹에 쥐었던 돌을 바둑판 위에 올려 두 개씩 보기 좋게 정렬시켰다. 여덟, , 열둘, 열넷, 열여섯, 열여덟, 스물. 남은 돌은 두 개. 짝수다. 도전자 다케미야가 홀수를 선택했으니 흑을 쥘 권리는 조치훈이 갖는다. 사카다의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다시 한 번 들려오고 두 사람은 각각 옆에 있던 백돌 통과 흑돌 통을 교환했다.

 

흑돌 하나를 들어 올려 천천히 우상귀에서 좌상귀를 향한 소목에 제1착을 놓는 조치훈. 사방에서 폭죽처럼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 20~30인이나 되는 사진기자들을 위해 조치훈은 3, 4번이나 같은 곳에 돌을 놓는 동작을 반복했다. 팬들에게 좋은 사진, 좀 더 생생한 현장의 느낌을 전달하는 일은 사진기자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팬들이 보는 즉시 아, 하고 감탄할 만한 자세를 만들어 주는 프로들의 협조다. 소리 없이 고요하게 흐르는 이 진행을 지켜본 사와키 고타로는 이런 광경을 처음 보는 나에게는 실로 아름다운 의식(儀式)으로 투영되었다고 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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