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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2015.07.16 17:11

4. 명인이 될 때까지

 

(우리말도 채 익히지 못한 6살의 나이. 일본에 가면 과자를 많이 먹을 수 있다는 말과 비행기 타는 즐거움에 부모품을 떠나 숙부 조남철 9단의 손을 잡고 비행기 트랩을 오르고 있는 꼬마 조치훈. 아무것도 모르고 들떠 흔들어대던 저 고사리 같은 손이 20여년 후 일본바둑을 제패하게 될 줄은... 조치훈은 일본에서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명인이 되어야했다.)

 

그를 처음 만나고 난 1개월 후, 나는 다시 그의 맨션을 찾았다. 잠시 잡담을 하고 난후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용건을 꺼냈다. 조치훈이라는 인물에 대해 쓰고 싶다. 그러니 다시 한 번 인터뷰에 응해주지 않겠냐고 물었다. 그는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거절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잠시 후에 그가 입을 열어 한 답변은 전혀 의외의 내용이었다.

기다려주시지 않겠습니까?” “기다리라고요?”

.” “기다린다면 언제까지 기다리면 되나요?”

내가 잠시 당황하면서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명인이 될 때까지 기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농담 같지 않았다.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감을 잡지 못한 채 조금은 익살스럽게 물었다. 왜 그때까지 기다려야 하는가라고. 그러자 그가 내뱉듯이 말했다.

떠들어버리면 엷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엷어진다는 것은 바둑세계의 독특한 용어 같았다. 떠들어 버리면 엷어진다. 의미는 정확하게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의 가슴속에는 한마디라도 입에 담으면 한꺼번에 넘쳐버릴 것 같은 뜨거운 생각이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것을 떠들어 버리면 엷어진다고 표현한 것은 아닐까.

나는 알았다고 답했다. 명인이 될 때까지 기다린다. 그러나 그렇게 말했다고 해서 그가 명인이 될 것이라고 믿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가 명인이 되기에는 지나치게 날카롭고 완고하며 부러지기 쉬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알았다, 명인이 될 때까지 기다리자. 그러나 그것은 나에게 있어서 거의 그에 대해 쓰는 것을 포기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 조치훈에 관한 뉴스는 그 이후에도 알게 모르게 귀에 들어왔다. 1976년 명인전 본선리그에 진입. 그러나 도전자가 되기는커녕 시드잔류도 못하고 함락. 동년에 손에 넣은 왕좌 타이틀도 익년에 빼앗겨 버렸다. 내가 그를 만난 후 2, 3년은 그에게 있어서 문자 그대로 울지도 않고 날지도 않는(은인자중하는) 세월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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