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하수2015.07.15 11:54

3. 외로움, 기다림 그리고 명인

 

(1976, 1년을 훌쩍 넘어선 긴 여행에서 돌아온 직후 사와키 고타로는 변변한 일자리도 없어 앞으로 어찌해야 할지 막막한 상황일 때 라디오에서 1주일에 1, 일반인들에게 관심을 끌 만한 사람을 만나서 얘기를 들어보는 일자리가 생겼다. 그 아르바이트 프리 인터뷰어로서 만난 첫 대상이 바로 조치훈이었는데 그 첫인상을 이렇게 술회하고 있다.)

 

바둑에 문외한이었던 내가 그를 인터뷰 대상으로 선택한 것은 딱히 이거라고 할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내가 알고 싶었던 것은 조치훈이라는 사람 자체보다는 바둑에 대한 재능이란 어떤 것인가라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가 반드시 조치훈이 아니어도 된다고 생각했었다. 단 수개월 전에 일본기원선수권이라는 기전에서 열띤 5번승부가 펼쳐졌다는데 18세의 젊은이에게 도전을 받는 55세의 사카다 에이오가 2연패해서 막판에 몰렸다가 이후 3연승으로 대역전했다고 들었다. 그 역전패의 주인공이 조치훈이었다.

그가 살고 있던 곳은 나카노의 맨션이었다. 맨션이라기보다는 아파트라고 부르는 편이 어울릴 만한 방이었는데 방문해 보고는 그 살풍경에 상당히 놀랐다. 두 칸을 연결한 방에는 가구다운 가구는 하나도 없었고 책상 하나에 작은 테이블 하나가 전부였다. TV도 없이 휑한 공간이었다. 젊은 남자 혼자 사는 방에 장식 같은 난잡함이 없는 대신 따뜻한 온기도 없었다. 냉랭한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공허한 느낌이었다.

인터뷰는 어려웠다. 무엇 하나 제대로 답변이 나오지 않았다. 질문에 대한 최소한의 대꾸밖에 나오지 않았다. 건방지다거나 거만한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속 어딘가가 닫혀있다는 느낌이었다. 어떻게 하든 재능이라는 핵심을 찌르는 말을 이끌어내려고 악전고투했지만 천편일륜적인 답변 이상을 얻어낼 수는 없었다. 나는 거의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나 자신도 놀랄 정도로 단순한 질문만을 지껄였다.

어떻게 하면 바둑이 세집니까?” “공부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틀에 박힌 이런 답변에 조금은 낙담하면서 어차피 자포자기한 김에 더욱 단순한 질문을 반복했다.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러자 그는 잠시 생각한 후에 말했다.

참아야 하나?” “인내한다는 거요?” “, 참아야 하는 거 같아요.”

그러자 거기까지 말하고 그 뒤는 거의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아니 그것은 나만 그럴지 몰라. 나는 반드시 이겨야만 한다는 의식이 너무 강한 것 같아요. 이기지 않으면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그렇게 간단하게 승부를 져버려서도 안 되고. 나쁘고 나빠도 어딘가에 가능성이 없을까 하면서 참고, 참고 이겨내야만 하는 거예요.”

독백은 거기에서 끝났다. 그리고 인터뷰도 그 이상 나아가지 못했지만 조치훈이라는 18세 젊은이의, 현시대에는 희귀할 정도로 절박한 사고방식이 그 가늘고 날카로운 눈과 함께 깊은 인상을 남겼다. TV 하나 없이 휑한 아파트 공간에서 이겨야만 한다!’는 의식 하나만으로 살아가는 열여덟 살의 청년. 그 첫인상을 이렇게 술회하고 있다. 상당 기간 조치훈을 대변해온 지고도 내일이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말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내면의 울림이었을 것이다.

 

바둑의 문외한이었던 사와키 고타로는 그를 다시 찾아갔다. 어쩌면 그는 열여덟의 청년으로는 좀처럼 보기 드문, 목표를 향한 절박함 또는 무엇이라고 꼭 짚어낼 수 없는 절절한 분위기를 가진 이 청년에게 매료된 듯하다. 조치훈은 다시 찾아온 사와키 고타로에게 농담 같은, 그러나 너무나도 진지한 표정으로 훗날을 약속한다.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브라우저를 닫더라도 로그인이 계속 유지될 수 있습니다. 로그인 유지 기능을 사용할 경우 다음 접속부터는 로그인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 게임방, 학교 등 공공장소에서 이용 시 개인정보가 유출될 수 있으니 꼭 로그아웃을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