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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인2015.04.22 11:14

8. 오청원(吳淸原)의 치수고치기 10번기(8)

1국은 928일부터 3일간에 걸쳐 건장사의 승방에서 두어졌다. 돌을 쥐어 기다니의 흑 차례다. 기다니의 바둑은 혼인보 슈사이 명인의 은퇴바둑에서부터 신포석 세력을 중시한 위치 높은 기풍에서부터 자리를 낮추어 착실히 집을 장만하는 기풍으로 달라지고 있었다. 차분히 집을 장만하고 상대방의 모양 속에 들어가는 것이다. 따라서 기다니와의 바둑은 쳐들어온 돌을 둘러싸고 엎치락뒤치락하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지곤 했다. 이 바둑도 흑은 낮게 귀를 차지하고 중반 가까이 흐르자 백의 모양에 쳐들어오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흑이 튼튼히 집을 마련하는 동안 백은 발 빠르게 모양을 이룩하여 첫날은 흑이 여간 뒤진 모양이 아니었다. 이틀째는 흑 모양에 백이 쳐들어와 대접전이 되었고, 돌파전에 흑이 성공한 듯 했으나 국면은 흑에게 그다지 호전되지 않아 흑이 약간 고전이란 인상을 지우기가 어려웠다. 77수부터 3일째로 접어들어 엎치락뒤치락 바둑은 한결 확대되어 쌍방이 무척 착수가 어려운 대목이 따랐다. 기다니는 한수마다 끙끙거리며 장고에 장고를 거듭했다. 기록을 살펴보아도 흑95수에 52, 9765, 101 55. 기다니가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120수 째 오청원이 두 집정도 벌려고 미끄러져 들어간 수가 실착이었다. 흑의 거센 반격에 부딪쳐 큰 패가 생겼다. 기다니와 오청원은 필사적이었다. 이때 관전기자인 미호리 마사우지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대국은 진검이다. 바둑 두는 사람은 필사적이다. 치수를 건 10번 승부의 결전을 새겨 넣을 이 일전은 마지막 날 밤늦게 귀기(鬼氣)가 사람에게 다가서고 처절함이 땅을 치는 한 장면을 전개하였다.". 그것은 흑57이 두어진 직후 기다니 7단이 코피를 낸 다음부터다. 이토록 가슴이 콱 막히는 반측은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서둘러 열어 제친 미닫이 유리문, 산에서 불어오는 밤의 냉기는 건장사의 선방 구석구석까지 얼어붙어가는 것이다. 그 복도에서 이제 제한시간도 얼마 남지 않은 기다니 7단이 데굴데굴 몸부림치고 있다. 머리를 수건으로 식혀가면서 "저편에서 생각하는 동안 나도 생각하고 싶은데!"라고 외치는 것이다. 한때는 억지로 바둑판을 안았으나 "안 돼!"라고 비틀거리며 다시 나둥그러지는 것이다.

 

사실은 이 관전기자가 쓴 관전기 때문에 오청원은 시달림을 받게 된다. 기다니가 쓰러진 것이 코피 때문이라고 생각지 못했다. 줄곧 미세한 바둑이었던 데다가 흑이 줄곧 고전이었던 것이 자신의 실착으로 국면이 호전되어 한숨을 쉬던 중 "휴우"하고 긴장이 풀리다보니 그만 빈혈을 일으킨 것이라 생각했다. 기다니는 대국 중 피로가 쌓이면 가끔 빈혈증세를 보였다. 하시모토와의 대국에선 빈혈을 일으켜 30분간 휴식을 취하고 바둑을 둔 일이 있다. 하시모토의 말에 의하면 그 바둑은 큰 끝내기로 접어들고 있었는데 기다니는 30분 휴식 중 누워있으면서 머릿속으로 바둑판을 그려 자기의 한 집 승을 읽어내었다는 것이었다. 사실상 오청원은 기다니에게 마음을 쓸 계제가 아니었다. 반면에 있는 한 대국자는 어떤 상태로 있는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많다. 실제로는 긴 의자에 누어있을 텐데 '데굴데굴 구른다.'는 표현은 과장된 것이다. 독자에게는 마치 괴로워 몸부림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이다. 휴식 후 큰 끝내기에 들어가 184수째 다시 오청원의 실착이 나와 마침내 흑 우세로 되고, 이대로 두어 가면 흑이 2-3집 앞서는 형국이 되었다. 그런데 그 목전인 193수에 이르러 기다니는 실착을 범해 오청원이 승기를 잡고 패를 건 끝에 역전시켰다. 백의 2집 승이었다. 오청원의 100국 가까운 치수고치기 10번기 중 이와 같은 격전으로 치른 것은 아주 드문 일이었다. 10번기의 처음이기도 하려니와 오청원의 일생 중 본인방 혼인보 슈사이와의 은퇴기념 대국과 함께 가장 절실한 한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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