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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인2015.04.15 15:59

4. 오청원(吳淸源)의 치수고치기 10번기(4)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일본에 와서 문제가 된 건 오청원에게 과연 몇 단을 인정하느냐는 것이었다. 여전히 토박이 정신에 투철한 기사들은 굴러온 돌격인 오청원이 기껏해야 초단밖에 더 되겠냐고 비아냥거렸지만 스승인 세고에 선생만이 오청원에게 3단 실력은 충분하다고 주장하여 3단격()으로 간주하고 정식 단위 인정시험을 치른다. 첫 상대는 그 해 정기 승단시합에서 1위를 차지한 시노하라 4. 그와의 대국에서 오청원은 흑을 들고 불계승을 거둔다. 2국은 슈샤이 명인과의 2점 바둑이었다. 이 시합이 말하자면 본시험이라고 할 만한 것이었다. 슈사이 명인은 지금으로 치면 굵직한 타이틀을 전부 보유한 실력에다 9단 이상의 단위처럼 권위로도 최고의 존재였던 살아있는 우상과 같은 존재였다.

 

슈사이 명인은 몸집이 아주 작아 35Kg에도 미치지 못했으니 바둑판 앞에 앉아 있으면 10세 안팎의 소년으로 착각하기 쉬운 타입이다. 오청원은 여기서도 당당히 4집승을 거둔다. 이에 관한 슈샤이의 강평은 "흑의 태도는 장중견실(莊重堅實)의 극치이며 가히 최후까지 우세를 지속하고 보무당당(步武堂堂)해 백에게 파고들 틈을 주지 않은 2점 바둑으로서 쾌심의 걸작이었다." 이다. 명인에게 2점 바둑을 이긴 후 다시 무라지마 4단에게는 흑으로 5집을 이겨 3연승. 비로소 오청원은 정식 3단을 인정받게 된다. 3단을 인정받고 난 다음 오청원이 일본 바둑계로 곧장 뛰어든 건 아니다. 그는 평소에도 몸이 약해 장시간 두는 바둑은 힘들어 했는데, 주변의 도움으로 건강진단을 받게 된다. 행운당이라는 병원에서의 진단결과는 "가슴에 결핵의 자연 치유 흔적이 있어 재발될 우려가 있다. 선천적으로 몸도 허약하다. 따라서 기사의 목숨을 건 승단시합에는 1년 정도 참가하지 않아야 한다." 였는데 이 대목에서 과연 승단시합이 목숨을 건 대회일까? 지금의 관점으로는 도대체 이해가 안가는 대목이다. 요즘이야 단위의 절대적 권위는 무참히 깨진 시대이므로 승단대회가 가장 가치가 적은 듯하지만 당시에는 돈이 생기는 시합이 드물었을 뿐 아니라 단위의 권위가 극도로 충만한 시대였다. 그리고 단위의 높고 낮음으로 그 신분의 높낮이도 결정된다고 할 만큼 중시되던 시합이다. 아직도 일본에서는 승단시합을 대수합(大手合)이라고 부르니 이 승단대회가 가장 크게 생각했던 대회임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따라서 일본으로 건너간 첫해엔 오청원은 잡지나 신문바둑을 두었다. 지금으로 치면 이벤트 바둑이라고 보면 된다. 잡지사에서 주최하여 그 기보를 연재하기로 약속한 그런 임시 대회 말이다. 전적은 1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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