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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2015.03.27 16:19

26. () 전영선 7

 

 

한평생 술과 바둑을 사랑한 쌍권총

 

1990년대 중반쯤의 일이다. 프로기사들과 한국기원 사무국 직원들이 우리가 남이가!” 하며 의기투합해 야유회를 떠났다. 화창한 날씨에 300여명 가까운 사람들이 잔디밭에서 운동을 하고, 술판을 벌이며 한나절 신나게 놀았다. 축구경기를 하다가 유창혁 9단이 직원의 발에 걷어채어 크게 나가떨어진 사고도 있었는데, 넘어진 유 9단보다 하얗게 질린 어떤 직원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한데 야유회에 한자리 낀 나는 화장실을 다녀오다 우연히 한구석에 앉아 혼자 조용히 술을 마시고 있는 중년남자를 보게 됐다. 안주도 없이 종이컵에 소주를 따라 기계적으로 입에 털어 넣는 그에게서 묘한 매력과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한참 모습을 훔쳐보고 있었는데, 그가 시선을 느꼈는지 내 쪽을 돌아보고는 손짓을 했다.

우물쭈물 다가가니 그가 새 종이컵을 내밀고는 소주를 따라 주었다(그것도 거의 가득!). 인상을 찌푸리며 간신히 목으로 넘겼더니 그제야 그가 웃으며 말했다.

자네도 술 좀 하는구먼!

 

그의 이름은 전영선.

이창호 9단의 어릴 적 스승으로 유명한 프로기사였다. 하지만 그를 아는 사람들은 이창호의 스승으로서보다는 한평생 술과 바둑을 사랑했던, 호탕하고 인간적인 성품의 기인으로 기억한다.

이창호의 스승은 조훈현으로 알려져 있고, 그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조훈현 9단의 제자가 되기 전에는 전영선 7단의 제자였다. 즉 이창호 바둑의 기초는 전영선이 닦아 놓은 것이었다.

제자를 두지 않겠다는 조훈현을 오래도록 설득해 이창호를 내제자로 들이게 만든 것도 전영선이었다.

전주 출신인 전영선은 동향의 어린 제자 이창호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사람들은 전영선이 전주에 살면서 이창호를 가르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이창호를 가르치던 시기에 전영선은 서울에 거주하고 있었다. 전영선은 일주일에 한두 번씩 꼬박꼬박 전주로 내려가 이창호를 지도했다.

이창호의 기풍이 스승들과 사뭇 다르다는 점은 꽤 흥미롭다. 조훈현의 발 빠른 포석은 물론 몸싸움, 잔 수에 능한 전영선과 거의 대극점에 서 있는 스타일이다. 참고, 기다리고, 끝내기에서 뒤집는 이창호의 바둑은 도무지 스승들로부터 배운 것이라 여기기 어려울 정도다.

 

내가 평생 마신 소주병은 수영장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것이라 호언했던 전영선은 실제로 하루 평균 2.5병의 소주를 마신다는 소문이 돌았다. 1992년 진로배 세계대회가 생기자 무조건 본선 시드는 날 줘야 한다!”라는 말도 했다. 물론 농담이다.

젊은 시절, 뒷주머니에 늘 소주 두병을 꽂고 다닌다고 해서 쌍권총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전영선은 결국 술로 인해 20022, 53세를 일기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투병으로 뼈만 남은 앙상한 몸, 복수가 찬 상태로도 마지막까지 인터넷에서 아마추어 팬들을 상대로 지도대국을 두었다는 전영선. 10년이 훌쩍 흘렀지만, 아직도 바둑계 인사들의 술자리에서는 그에 대한 추억과 회고가 끊이지 않는다.

저승에도 기원이 있다면, 먼 훗날 그와 종이컵에 소주를 따라 마시며 바둑 한수 배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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