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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2015.03.24 16:24

25. ‘괴물후지사와 슈코

 

 

나는 1년에 네판만 이긴다!”

 

일본바둑계의 거인 후지사와 슈코 9단이 세상을 떠난 지 어느덧 3년이 흘렀다. 200958. 향년 83세였다.

 

후지사와 슈코는 바둑사에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겼다. 그는 한··일 바둑계를 통틀어 가장 독특하고 자유분방한 인물이었다. 영어로 표현하면 언터처블(Untouchable)’이 바로 후지사와 슈코였다. 오죽하면 생전 그의 별명이 괴물 슈코였을까!

그의 삶은 바둑··도박으로 채워졌다. 젊어서부터 두주불사였던 후지사와는 술에 취한 상태로 텔레비전 생방송에 출연해 사고를 친 에피소드가 있을 정도다. 조훈현 9단의 실전 스승이기도 했던 그는 내가 다른 것은 다 훈현이에게 가르쳤는데, 술만은 못 가르쳤다!”며 아쉬워했다고 한다.

 

경륜과 경마로 재산을 탕진해 생활고에 시달리기도 했다. 명인전·천원전·기성전 등 일본 최고의 기전에서 다수 우승했다. 그것도 1회 대회만 골라 우승해 ‘1기의 사나이로 불렸다. 이 중에서도 우승상금이 가장 많은 기성전은 6년이나 연속 우승했다. 당시 후지사와가 남긴 나는 1년에 네 판만 이긴다!”는 말은 그의 어록에서 빠지지 않는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다른 바둑은 다 져도 기성전 도전기(74승제)에서 네 판만 이겨 우승하면 ‘1년 농사다 짓는다는 뜻이었다. 그가 악착같이 1기 대회에서 우승한 것은 빚쟁이에게 쪼들려 상금이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일본 유학시절.

어린 조훈현은 후지사와에게 바둑을 배웠다. 세고에 겐사쿠 9단이 정식 스승이었지만, 원로기사인 세고에 9단은 조훈현을 앉혀 놓고 조곤조곤 바둑을 가르치는 타입이 아니었던 것이다. 당대 최강자 중 한명이었던 후지사와는 조훈현을 위해 수많은 연습바둑을 둬 주었다. 번뜩이는 감각과 번개 같은 수읽기 능력을 지닌 조훈현의 기재가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속기예찬론자였던 후지사와는 싸구려 접는 바둑판을 가져다 놓고 조훈현과 속기로 내기 바둑을 두었다. 조훈현이 지면 어김없이 후지사와의 어깨를 주물러야 했다.

후지사와가 조훈현에게 좋은 일(?)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조훈현이 주변의 권유에 휘말려 다른 프로기사와 100엔짜리 내기 바둑을 뒀다가 스승 세고에 9단의 노여움을 사 파문을 당한 사건이 있었다. 스승 집에서 쫓겨난 조훈현은 식당에서 접시를 닦으며 지내다가 간신히 용서를 빌고 스승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이때 내기 바둑을 열렬히 꼬드긴 사람이 바로 후지사와였던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도 짱짱한 기력을 과시했던 후지사와는 67세의 나이에 왕좌전에서 우승했다. ··일을 통틀어 최고령 우승기록으로 아직까지 이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은퇴 후에는 자신의 이름으로 아마추어 단증을 발행하다가 일본기원으로부터 제명을 당하기도 했다. 하여튼 하고 싶은 일은 다하고 살았던 기인이었다.

그의 3년 기일을 맞으니 새록새록 거인에 대한 추억이 돋는다. 100년이 지나도 후지사와 같은 기사는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다. 바둑사에서 괴물은 후지사와 슈코 한사람을 위한 이름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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