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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2015.03.18 17:21

23. 김성룡 해설가

 

 

이 바둑은 끝났어요!”에 제대로 당했다.

 

바둑을 두는 사람 고유의 스타일을 두고 기풍이라고 한다. 요즘 축구처럼 닥공(닥치고 공격)’ 스타일이 있는가 하면 수비 위주의 기풍을 지닌 기사도 있고, 두터움을 선호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발바닥에 땀나도록 집만 찾아 뛰어다니는 사람도 있다.

 

재미있는 것은 프로기사들이 해설을 하는 데도 이 있다는 것. 바둑판에서의 풍과 카메라 앞에서의 기풍이 제법 일치한다는 점도 흥미롭다. 예를 들어 조훈현 9단의 해설은 한마디로 말해 날아다니는해설이다(바둑이랑 똑같다고 보면 된다). 텔레비전에서는 어느 정도 자중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바둑판을 앞에 놓고 관전 기자에게 해설을 할 때는 그야말로 F1 스포츠카가 달리듯이 한다.

때문에 한때 기력이 약한 기자들은 조훈현 9단의 해설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거는 이렇게 되고” “저거는 이렇게 되는데” “이건 알지?” 하고 휘리릭 바둑판 위에 돌을 늘어놓았다가 싹 치워 버리니 미처 수를 이해하지 못한 기자의 등에는 땀이 줄줄 흐를 수밖에. “어어어하는 사이에 됐지? 그럼 나는 간다!” 하고 벌떡 일어서 버리는 조훈현 9단의 등을 바라보는 일은 공포에 가까웠다.

 

필자는 김성룡 9단의 해설을 잊을 수 없다. 바둑TV 최고의 인기 해설가로 10년 가까이 군림하고 있는 김성룡 9단의 해설은 매우 재미있다. 개인적으로는 바둑 해설에 개그를 도입한 최초의 프로기사가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9단 해설의 진미는 단호함에 있다. 예를 들어 다른 해설자들이 , 이런 수가 있었나요. 이건 흑에게 손해 같은데요?” 정도로 표현한다면, 9단은 으아, 이건 흑이 망했어요. 바둑 끝났어요!”에 이른다. ‘단호함이라기보다는 과장에 가깝다.

 

필자는 김성룡 9단의 이 바둑 끝났어요!’에 당한 눈물겨운 피해자 중 한명이다. 한때 한국바둑리그 취재를 담당했던 필자는 매주 사나흘씩은 밤마다 한국바둑리그 관련 기사를 써야 했다. 대부분 한국바둑리그의 텔레비전 해설이나 인터넷 생중계 해설을 보며 바둑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기사를 작성해 송고하는 것이었다. 당시 한국바둑리그의 주 해설자는 김성룡 9단이었고, 필자는 싫든 좋든 김 9단의 해설에 의존해 기사를 쓸 수밖에 없었다. 매일 야근을 밥 먹듯이 해야 하는 필자로서는 바둑이 일찍 끝나기만을 기대하는 나날이었다. 야구에 비유해 연장에 연장을 가는 반집 싸움이라도 벌어지는 날은 최악이었다.

그런데 김 9단의 해설은 한줄기 빛과도 같았다. 바둑 중반도 되기 전에 이 바둑은 끝났어요. 무조건 흑이 이깁니다!” 식으로 잘라 말해 주니 얼마나 좋은가. 필자는 일찌감치 흑이 이기는 구도로 기사 얼개를 잡아 놓은 뒤 마음속으로 김성룡 9단 만세!’를 외치며 사람들과 시원하게 생맥주를 마시러 나갔던 것이다. 한 시간쯤 목을 축인 뒤 돌아와 보니, 이것이 웬일인가? 바둑은 어느새 역전이 되어 백이 이긴 것이 아닌가. 김성룡 9단의 해설만 찰떡같이 믿고 있다가 역전이 되고 보니 하늘이 방금 전에 마신 맥주 색깔처럼 노래져 왔다. 시계를 보니 마감시간까지 불과 10여분. 필자는 팔이 여덟 개 달린 문어처럼 키보드를 두드리며(기사를 완전히 새로 써야 했다) 9단을 원망해야 했다.

 

이런 일은 이후로도 몇 번이나 반복이 되었고 결국 필자는 김 9단의 해설을 믿지는 않지만 매우 즐기는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뭐니 뭐니 해도 재미있는 해설만큼은 김 9단이 최고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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