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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2015.03.03 11:47

16. 바둑계의 보헤미안

 

 

루이나이웨이·장주주 부부 중국서 새 출발

 

루이나이웨이(芮乃偉장주주(江鑄久) 부부가 중국으로 돌아간다. 1999년에 왔으니 만 128개월이란 세월을 한국에서 보낸 것이다.

이들 부부가 우리나라 바둑계에 끼친 영향은 크다. 재미있는 일도 제법 많았다. 무엇보다 루이나이웨이 덕분에 한국 여자프로바둑이 빠르게 강해질 수 있었다. 남자바둑은 이창호·조훈현·유창혁 등이 펄펄 날아다니며 세계 1위를 구가했지만, 루이 9단이 우리나라에 올 때만 해도 여자바둑은 중국·일본에게 한수 밀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 부부는 사연이 많다. 한국에 정착하기까지의 여정은 그야말로 고행길이었다. 바둑판을 짊어진 보헤미안이 따로 없었다.

루이 9단은 중국 상하이가 고향이다. 열 살 때 바둑돌을 처음 쥐었는데, 곧바로 천부적인 재능을 드러냈다. 평소에는 수줍은 미소를 짓지만, 바둑판 앞에만 앉으면 남자기사들을 펑펑 메다꽂는 괴력을 과시했다. 그녀의 이름 뒤에는 늘 철녀’ ‘마녀와 같은 무시무시한 별명이 따라다녔다.

 

비운의 사건은 1987년 중국 산샤에서 열린 중·일 대항전 기간 동안에 터졌다. 루이는 별생각 없이 일본 남자기사 방에서 연습대국을 뒀다. 워낙 바둑 두는 일을 좋아하는 그녀로서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한 일이었지만, 중국 지도부가 발칵 뒤집혔다. 규율 위반이라는 것이다.

결국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그녀는 1990년 고국을 떠나 일본으로 가게 된다. 하지만 일본은 루이를 외면했다. 세계 최강의 여자프로기사라는 점이 오히려 걸림돌이 된 것이다. 일본 기사들에 비해 기량이 월등한 그녀를 받아들였다가는 여자기전의 태반을 그녀가 독식할 것이 뻔했다. 루이는 공식대회에 출전할 수 없었다.

 

남편 장주주는 중국 산시성 출신이다. 문화혁명 와중에 아버지가 반동분자로 몰려 집안이 오지로 쫓겨났지만, 장주주는 바둑에 재능을 발휘하며 국가대표팀에 발탁됐다. 1984년 중·일 슈퍼대항전(이때만 해도 한국은 끼워 주지도 않았다)에서 일본 기사들에게 5연승을 거두며 대륙을 열광시켰다.

2년 뒤 미국으로 건너간 장주주는 사기를 당하게 되고, 동병상련의 아픔이 있는 루이를 만나 결혼에 골인한다. 미국에서 아마추어들에게 레슨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던 이들은 프로기사이자 갬블러인 차민수 초단을 만나 마침내 미지의 땅인 한국행을 감행하게 된다.

 

이들의 구구절절한 인생사는 2003<우리 집은 어디인가>라는 제목을 달고 두 권의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첫째 권은 루이나이웨이, 둘째권은 장주주의 이야기를 담았다.

두 사람은 중국으로 돌아가 바둑인생 3라운드를 시작한다. 루이는 국가대표팀에 들어가고, 장주주는 아내의 고향인 상하이에서 부부의 이름을 딴 ·루이 바둑교실을 운영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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