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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2015.02.24 10:02

12. ‘-시대

 

 

타도 조훈현외친 서봉수의 필살기

 

 

1970~80년대 한국 바둑계는 -의 시대였다. 조훈현과 서봉수가 용호상박의 대결을 펼치며 장장 15년 가까이 바둑계를 쥐락펴락했던 것이다.

물론 말이 좋아 조-서 시대지, 내막을 들여다보면 엄연히 조훈현의 시대였다. 다만 그 적수가 사실상 서봉수 한 명뿐이었고 실제로 조훈현이 절정을 누리는 순간마다 등장해 흠집을 낸 것도 서봉수였기에 -서 시대로 통하는 것이다.

 

여하튼 19807, 서봉수는 풀세트 접전 끝에 자신의 상징과도 같은 명인 타이틀을 조훈현에게 내주고 만다. 이 명인위를 쟁취하면서 조훈현은 한국 바둑사에 전무후무한 전관왕(우승 싹쓸이)에 등극하게 된다. 이것은 이후 이창호도 이룩하지 못한 전설적인 위업이었다.

몇 달 뒤인 12, 서봉수는 제15기 왕위전 도전자가 되어 다시금 조훈현과 바둑판을 마주하고 앉는다. 그리고 세상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들었다. 흉내바둑. 그렇다. 서봉수가 타도 조훈현을 외치며 들고 나온 전법은 흉내바둑이었다.

 

흉내바둑은 말 그대로 상대가 둔 수를 그대로 따라 두는 것이다. 그러다 더 이상 따라 둘 필요가 없다고 여겨지는 순간 흉내바둑을 풀어 버리고 제 갈 길을 가는 수법이다. 상대방으로서는 얄밉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흉내바둑의 원조는 1950~60년대 일본의 후지사와 호사이라는 인물이다. 그가 흉내바둑을 창안했다고는 볼 수 없지만 어쨌든 프로대회에서, 그것도 오랜 기간에 걸쳐 시도한 최초의(어쩌면 유일한) 기사였다.

 

서봉수의 흉내바둑은 놀랍게도 먹혀들었다. 조훈현을 상대로 백번 필승(흉내바둑을 두기 위해서는 후수인 백을 들어야 함)을 기록하며 43패로 왕위 쟁취에 성공한 것이다. 이것으로 조훈현 천하는 6개월 만에 무너지고 말았다. ‘조훈현의 적수는 역시 서봉수라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 준 사건이었다.

물론 그날 이후 서봉수의 흉내바둑은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이유인즉슨 조훈현을 상대로는 어떤 작전이든 한 번밖에 통하지 않는다!”였다. 흉내바둑에 허를 찔린 조훈현이 대처법을 연구해 두지 않을 리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궁금한 점 하나. 처음부터 끝까지 백이 흑이 두는 대로 흉내바둑을 두면 어떻게 될까. 또 반대로 흑이 첫수를 바둑판 정 가운데인 천원에 둔 뒤 이후 백이 두는 대로 흉내바둑을 두면 무조건 이길 수 있지 않을까.

 

재미있는 상상이지만 미안하게도 상상만 하시길. 바둑이 그렇게 단순한 게임일 리 없다. 흉내바둑을 타파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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