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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2015.02.12 09:55

8. 포토타임

 

 

바둑 두는 사진 공식 촬영시간 놓치면 말짱 도루묵’”

 

필자가 <월간바둑> 초짜 기자 시절의 이야기다. 하루는 사진기자 선배가 구시렁대며 담배를 빨아대고 있었다. 사연인즉 이랬다.

프로기사의 대국(對局) 사진은 공식 촬영 시간이 정해져 있다. 대국 개시 직후 10여분, 점심식사(이때는 바둑이 중단된다) 후 대국이 속개될 때 5, 그리고 대국이 끝나고 복기를 할 때다. 복기를 하지 않을 경우 횟수는 2회로 줄어든다. 간혹 김희중 9, 서능욱 9단 같은 속기파끼리 만나 점심식사 전에 얼른 두어 끝내 버리자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점심시간 없이 바둑을 둘 경우가 있는데, 이렇게 되면 사진을 찍을 기회는 한 번밖에 없다.

 

그날 선배는 오전 10시 대국 시작 시각에 맞춰 카메라를 들고 대국장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카메라에 눈을 바짝 대고 대국자가 착점(돌을 놓는 것)하기만을 기다렸다. 원체 움직임이 없는 대국 사진인지라 팔이라도 뻗는 모습을 담아야 그나마 그림이 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날따라 흑을 쥔 대국자가 도통 착점을 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빈 바둑판을 5분가량 뚫어지게 노려보더니, 나중에는 아예 눈까지 감고 명상에 빠져 버렸다. 첫수가 놓이지 않으니 상대방도 바둑판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결국 선배는 10분 동안 눈알 빠지도록 카메라만 들여다보다 망부석처럼 굳어 있는 두 사람의 사진 몇 장만을 찍고선 대국장을 빠져나와야 했다. 선배는 이건 명백히 나를 물먹이겠다는 행위라며 분개했다.

 

사실 프로기사에게 사진 촬영은 불편한 일이다. 기자의 직업정신은 인정하지만, 셔터 소리와 펑펑 터지는 플래시는 분명 대국에 지장을 준다. 하물며 결승전이나 도전기와 같이 큰 판에서는 평소 사진 촬영에 너그러운 대국자들도 신경이 꽤 날카로워진다.

일본의 경우는 우리나라보다 좀 더 엄격한 편이었다. 대국을 시작하기 전 5분 정도만 포토타임을 준다. 이때엔 대국자들도 취재진이 해달라는 대로 포즈를 취해 준다. 하지만 대국이 시작되면 모든 카메라는 방 밖으로 퇴출이다. 복기 때까지 그 누구도 대국장에 카메라를 들고 들어갈 수 없다.

 

십 수 년 전 일본에 취재를 갔던 필자도 쓴 경험이 있다. 대국 시간을 깜빡 잊고 있다가 부랴부랴 대국장에 도착하니 포토타임이 거의 끝나 가고 있었다. 서둘러 사진을 찍으려 하는데 포토타임이 끝났다!”며 일본기원 직원이 무서운 얼굴로 등을 떠밀었다. 외국에서 취재를 온 기자라고 봐주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최악의 사례는 대국 개시 선언이 떨어지자마자 화장실에 가는 척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 버리는 경우다. 나갔다가 포토타임 10분이 지나면 그제야 슬그머니 들어오는데, 이건 사진에 찍히고 싶지 않다는 무언의 반항이다. 기자의 입장에서는, 지금 생각해도 참 얄미운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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