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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2015.02.06 09:42

5. 애견가 조훈현

 

 

유학시절 스승이 선물한 벵케이가 그립다!”

조훈현 9단은 애견가로 유명하다. 그것도 자그마한 애완견이 아니라 어지간히 한덩치하는 놈들을 좋아한다.

조훈현과 개의 인연은 일본 유학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훈현은 혈혈단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프로바둑계의 원로 세고에 겐사쿠 9단의 내제자가 된다. 그때가 우리 나이로 열한 살. 거의 할아버지나 다름없는 노스승의 집에 제자라고는 덜렁 조훈현 하나뿐이었으니, 어린 조훈현이 느꼈을 적적함과 외로움은 오죽했을까. 실제로 당시 세고에 9단의 넓은 저택에는 세고에와 그의 수발을 들어주는 며느리, 그리고 조훈현 뿐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스승이 강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들어왔다. 집 떠난 어린 제자의 외로움과 심심함을 달래 주기 위한 스승의 배려였다. ‘일본 진돗개쯤으로 보면 되는 아키다종으로 이름은 벵케이라고 했다.

벵케이는 조훈현의 유일한 친구였다. 아침에 일어나 마당을 청소한 뒤 벵케이와 30분 정도 산책을 하는 시간은 하루 중 조훈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호사였다.

 

시간은 흘러 19723. 조훈현은 징집영장을 손에 들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벵케이와 헤어지던 당시를 조훈현은 이렇게 회상했다.

공항으로 가기 위해 선생님 댁을 나오는 순간, 벵케이는 어떤 예감이 들었는지 무척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낮은 신음 소리만 냈다.”

 

알려져 있듯 조훈현이 귀국한 지 4개월 만에 스승 세고에 9단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오랜 벗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죽음에 자극을 받았다는 소문이 있는가 하면, 아끼던 제자의 귀향에 대한 안타까움이 이유라는 설도 있었다. 실제로 세고에는 유서에 한국으로 떠난 조훈현을 꼭 일본으로 데려와 대성시켜 주기 바란다!’는 내용을 남겼다. 어쨌든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일본 바둑계로서는 날벼락과 같은 충격이었다.

스승의 부고가 날아온 지 두 달 뒤 벵케이 마저 죽었다는 소식이 조훈현에게 전해졌다. 자신을 키워 준 주인들이 잇달아 곁을 떠나자 식음을 전폐하더니 끝내 숨을 거두었다는 뒷얘기였다. 조훈현은 벵케이가 죽었다는 얘기를 듣고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벵케이도 스승처럼 자살을 택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후 조훈현은 기회만 되면 개를 길렀다. 그래도 조훈현은 벵케이 만한 놈은 아직 만나지 못했다라고 말한다. 어딘가, 기억조차 아련한 첫사랑의 고백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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