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무적2015.02.04 12:08

4. 장강의 앞 물결은 뒷 물결에 밀려나고

 

 

(젊은 조남철, 아스피린 씹으며 대국장으로)

 

때는 19499. 서울 저동 조선기원에서 제2회 전국프로바둑선수권전이 열렸다.

이 대회에 대해서는 배경 설명이 조금 필요하다.

일본에서 돌아온 한국 프로기사 1호 조남철은 우리나라에 현대바둑을 보급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었다. 당시 바둑계는 양분되어 있었으니, 순장바둑(1940년대까지 많이 둔 우리 고유의 바둑. 현행 바둑은 일본식 바둑이다)을 주로 두던 노장파와 조남철을 위시한 소장파가 그것이다.

노국수들은 경성기원에, 소장파는 조남철이 운영하던 조선기원에 주로 모였다. 노국수들이 보기에 조남철은 한낱 혈기방장한 애송이로 보였을 터. 겉으로는 잘 지내는 것처럼 보였지만, 양쪽은 서로 바둑판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칼을 갈고 있었다.

대회는 바로 이런 민감한 시기에 열렸다. 노국수들과 젊은 기사들이 골고루 참여해 그럴듯한 신구의 조화가 꾸려졌다.

그런데 대회당일 문제가 생겼다. 대회를 성사시키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던 조남철이 그만 펄펄 끓는 열에 쓰러지고 만 것. 그렇다고 여기서 소장파의 간판스타가 불참한다면 노국수 진영의 승리는 불을 보듯 뻔했다. 조남철은 의사 친구가 가져다준 아스피린을 삼키며 대회장으로 향했다.

노국수들은 노국수들대로 조남철에게 본때를 보여 주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민중식이란 노국수의 성적이 좋자 슬금슬금 다른 국수들이 그에게 일부러 져주는 밀어주기가 시작됐다. 오늘날의 승부조작인 셈이다. 결국 조남철과 민중식이 결승에서 만났다. 민중식은 전승, 조남철은 1패를 안고 있었다.

민중식은 호주가로 유명했다. 대국이 시작되자 소주병을 꺼내더니 큰 컵에 콸콸콸! 따르는 것이 아닌가. “나는 술이 없으면 수가 안 보여라며 조남철을 스윽 넘겨보았다. 일종의 기싸움이었다.

술 대신 조남철은 아스피린을 씹으며 필사적으로 대국에 임했다. 온몸이 열로 펄펄 끓고 머리가 어질어질해 당장이라도 자리를 펴고 눕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여기서 무너지면 끝장이라는 각오로 버텼다.

 

이리하여 첫판의 승자는 조남철.

두 사람은 각각 1패씩을 안게 돼 최종 대국으로 승부를 내야 했다. 그 상황에서 도저히 더 이상 바둑을 둘 수 없을 지경이 된 조남철이 결승전을 하루 연기해 줄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예상한 대로 노국수측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유는 뻔했다. ‘맛이 간조남철한테도 졌는데 멀쩡한조남철과 둔다면 결과는 뻔한 것 아닌가.

결국 조남철은 민중식과 최후의 승부를 겨루게 됐다. 결과는 이번에도 조남철의 승리. 비록 한판의 바둑이었지만, 이날 승리로 조선기원은 경성기원을 제치고 완연한 우위에 서게 됐다. 장강의 앞 물결이 뒷 물결에 밀려나고 있었다.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브라우저를 닫더라도 로그인이 계속 유지될 수 있습니다. 로그인 유지 기능을 사용할 경우 다음 접속부터는 로그인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 게임방, 학교 등 공공장소에서 이용 시 개인정보가 유출될 수 있으니 꼭 로그아웃을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