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무적2015.01.30 10:00

오늘부터 연재할 글은 바둑평론가 양형모님께서 2011425일부터 2012618일까지 1년이 넘는 동안 <농민신문>에 반상야사라는 제목으로 올린 글을 발췌하여 띄어쓰기와 맞춤법 및 문장부호 등을 아주 조금 편집한 내용입니다.

어차피 우리야 바둑 수로서는 프로기사들을 따라갈 수 없으므로 바둑 수 외의 것들로 그들과 같이 호흡을 해 보는 기회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1. 조남철과 도사

 

사흘 굶어 담 안 넘는 사람 없다

 

국수전 9연패 등 1950~60년대 무적시대를 구가하며 한국 바둑의 초석을 다진 조남철 9. 그는 걸어다니는 바둑 법전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일본에서 활동 중인 조치훈 9단의 그의 조카다.

한국 바둑의 개척자이자 프로기사 1호인 조남철 9(2006년 작고)이 젊었을 때의 일이다.

한국기원의 효시라 할 한성기원을 세운 조남철은 머리도 식힐 겸 종종 전남 구례 화엄사를 찾고는 했다. 불교신자는 아니었지만 조남철은 절집을 좋아했다. 그러다 보니 스님들과의 친분도 두터웠다. 조남철의 절집 휴양은 말년까지 이어져 좀 쉬고 싶다싶으면 훌쩍 서울을 떠나 절에 머물곤 했다.

어쨌든 한성기원을 잠시 내려놓고 화엄사에 내려가 있던 조남철에게 한 도사가 나타났다. 이름은 이원영이라 했다. 이원영은 조남철을 지긋이 살펴보더니 한마디 툭 던졌다.

자네, 공부 좀 했구먼.”

무슨 공부요?”

기 공부 말일세. 자네한테서 제법 진기가 느껴지는구먼.”

조남철은 그럴 리가요!”하다가 내심 무릎을 쳤다. 일본 유학시절의 경험이 떠올랐던 것이다. 스승 기타니 미노루 9단은 평소 참선을 좋아해 제자들에게 참선법을 지도하곤 했다.

기타니식 참선법의 요령은 대충 이렇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머리 꼭대기 위에 뜨거운 날달걀 하나가 놓여 있다고 상상한다. 잠시 후 날달걀이 하고 깨진다. 달걀물이 천천히 머리끝부터 몸으로 흘러내린다. 그 흐름을 따라 정신을 집중시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이원영이 고개를 저었다. 방법이 틀렸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당장 조남철에게 나를 따라 나서라고 종용했다.

내가 특별히 자네한테만 진짜 공부를 시켜 줄 테니 함께 가세.”

이원영을 따라 도착한 곳은 전북 임실 한 마을의 야산자락.

이원영은 새로운 몸을 만들려면 삼복더위에 49일은 꼬박 도를 닦아야 한다.”며 조남철을 방에 밀어 넣었다.

처음에는 밥을 제대로 넣어 주더니 조금씩 양이 줄어들었다. 급기야 사흘째는 아예 물밖에 주지 않았다. 단식이었다. 이 단식 사흘 만에 조남철은 완전 무너지고 말았다. 이원영 몰래 방을 빠져나간 조남철은 광에서 삶은 고구마 몇 개를 발견하고는 걸신들린 듯 그 자리에서 먹어 치웠다.  

훗날, 조남철은 이렇게 회고했다.

기의 실체는 깨닫지 못했지만 사흘 굶어 남의 집 담 안 넘는 사람 없다는 속담이 진리라는 것만큼은 확연히 깨쳤노라.”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브라우저를 닫더라도 로그인이 계속 유지될 수 있습니다. 로그인 유지 기능을 사용할 경우 다음 접속부터는 로그인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 게임방, 학교 등 공공장소에서 이용 시 개인정보가 유출될 수 있으니 꼭 로그아웃을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