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제89화 : 반기

by 달인 posted Aug 20, 201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수정 삭제

89: 반기

 

 

큰집 제사에 다녀오신 엄마가 내놓은 떡과 쌀밥을 맛있게 먹던 녀석이 문득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 제사가 뭐야?”

후손들이 돌아가신 조상의 은덕을 잊지 않고 기리는 것이란다.”

왜 제사를 지낼 때는 떡도 하고 쌀밥을 하는 거야?”

돌아가신 조상이 맛있게 드시라고 그런단다.”

그 말을 듣고는 한참을 생각하던 녀석이 하는 말.

엄마, 그라먼 울 아부지 죽어부라고 해!”

 

이 이야기는 지어낸 이야기가 아닌 우리 쇠머리마을에서 회자되고 있는, 나하고는 초등학교 동기 녀석이 여섯 살 때인가 실제로 했다는 말이다.

옛날 가난한 우리네 농촌에서는 먹을 것이 부족하여 아무리 배가 고프더라도 볍씨와 얼마만큼의 쌀을 남겨놓아야만 했다.

볍씨는 말할 것도 없이 내년의 농사밑천이지만 그 얼마만큼의 쌀은?

그것은 조상님 제삿날에 쓸 것이었다.

우리 집의 경우 아버지께서 당신의 증조부모와 조부모(나중에는 당신의 아버지까지)의 제사를 모셨는데 어린 시절의 우리는 그 제삿날들을 무척 기다린다. 그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제삿날에는 쌀밥과 고깃국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제삿날 밤에는 제례가 끝나면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을 보면서 졸음을 쫓으면서까지 기다렸으나 한 번도 제례가 끝날 때까지 버텼던 기억은 없다. 그래도 다음날 아침이면 엄마는 우리에게 맛있는 쌀밥과 고깃국을 주었으니 어찌 다음 제사가 기다려지지 않겠는가?

설과 추석 그리고 몇 번의 제삿날에나 먹어볼 수 있는 쌀밥과 고깃국은 왜 그리도 맛이 있었던지!

이런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부러웠으면 그 철없는 녀석은 자기 아버지가 죽기를 바랐을까?

 

드디어 기다렸던 할아버지 제삿날이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부터 나는 마음이 바빠진다.

벌써부터 나의 코는 집에서 굽는 감미로운 고기냄새로 벌름거린다.

지금쯤에는 고모님들도 와 계시겠지!

제사상에 올리기 위하여 준비된 갖가지의 음식들과 과일, 그리고 떡.

이제는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것 같다.

이웃집에 떡을 나누어 돌리는 발걸음도 마냥 가볍다.

그렇게 먹고 싶었던 음식들을 제례가 다 끝나지도 않아 끝내 잠이 들어 마음껏 먹지는 못하였지만 어린 우리에게 제삿날은 참 흥겨운 날이었다.

 

이렇게 지낸 제사음식은 제사에 참석한 사람들과 이웃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는데 그렇게 여러 군데에 나누어주기 위하여 담아놓은 음식을 반기라고 한다는 것을 보고,

그 어려운 시절에 선대의 제사를 모시기 위하여 온 정성을 다하여야 했던 우리네 부모님들의 애환과

얼마 되지 않은 음식이라도 서로가 나누어 먹을 줄 알았던 아름다운 우리의 풍습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본다.

 

반기 - 잔치나 제사 후에 여러 군데에 나누어 주려고 목판이나 그릇에 몫몫 이 담아 놓은 음식.

반기살이 - 잔치나 제사 음식을 여러 군데에 나누어 줌.

 

 

TAG •
  • ?
    달인 2012.08.20 16:34

    우리의 윗 세대인 부모님들은 전부 고인이 된 지금

    '울 아부지 죽어부라고 그래'라고 했던 그 친구는

    목사가 되어 열심히 선교활동을 하고 있답니다.

?

  1. 제96화 : 조쌀하다2

    제96화 : 조쌀하다 세계에서 여성이 대권을 잡은 경우는 얼마나 될까? 철의 여인이라고 불렸던 영국의 대처 수상을 필두로 하여 독일과 뉴질랜드에서도 여성 수상이 정권을 잡았으며, 그 외에도 핀란드, 칠레, 아일랜드, 필리핀, 아르헨티나 등에 이어 작년에...
    Date2012.09.20 By달인 Views4381
    Read More
  2. 제95화 : 그리운 억만이 성!1

    제95화 : 그리운 억만이 성! 누구에게나 기억에 남는 책 한 권쯤은 있는 법이다. 하얗게 밤을 지새우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던 책. 주인공의 감정에 몰입되어 함께 웃다 울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아쉬움에 잠겼던 책. 그리하여 벅찬 감동으로 새벽을 ...
    Date2012.09.14 By달인 Views4009
    Read More
  3. 제94화 : 삼가다1

    제94화 : 삼가다 우리나라의 최대 여객운수회사는 (최근의 자료에 의하면) 차량대수 1,214대에 종업원 2,300여명이 근무하고 있는 금호고속이다. 금호고속은 창업주인 고 박인천 님께서 1948년에 트럭을 개조하여 광주여객이라는 상호로 사업을 시작하였다는데...
    Date2012.09.11 By달인 Views3974
    Read More
  4. 제93화 : 무릿매1

    제93화 : 무릿매 1970년대 초반에 채 20살이 못된 시골의 젊은 청춘들은 낮에는 집안 일로 바빴지만 혼자의 시간인 밤에는 무엇을 하며 젊은 혈기를 억눌렀을까? 밤이 짧은 봄이나 여름, 가을철에는 역기와 아령으로 근육을 단련시키는 등 육체미운동으로 하루...
    Date2012.09.07 By달인 Views3633
    Read More
  5. 제92화 : 모지랑이1

    제92화 : 모지랑이 아주 가끔씩 빛바랜 앨범을 들추어 보면, 많지는 않지만 어렸을 때 찍은 흑백사진들이 나를 미소 짓게 한다. 그런 사진 중에 압권인 것은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큰 누나의 결혼기념으로 우리 5남매가 당시의 쇠머리 우리 집 마당에서 함께 ...
    Date2012.09.04 By달인 Views3855
    Read More
  6. 제91화 : 쪼다1

    제91화 : 쪼다 「조금은 어리석고 모자라 제 구실을 못한 사람」을 ‘쪼다 같은 사람’ 또는 줄여서 그냥 ‘쪼다’라고 한다. 이 말의 어원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장수왕의 아들인 조다(助多)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잘 알다시피 장수왕...
    Date2012.08.30 By달인 Views3925
    Read More
  7. 제90화 : 발등걸이1

    제90화 : 발등걸이 지난 런던 올림픽에서 사상 처음 동메달을 딴 축구팀의 박종우 선수가 일본을 이기고 동메달을 땄다는 감격에 도취하여 관중석에서 던져준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피켓을 들고 운동장을 한 바퀴 돌았겠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
    Date2012.08.23 By달인 Views3712
    Read More
  8. 제89화 : 반기1

    제89화 : 반기 큰집 제사에 다녀오신 엄마가 내놓은 떡과 쌀밥을 맛있게 먹던 녀석이 문득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 제사가 뭐야?” “후손들이 돌아가신 조상의 은덕을 잊지 않고 기리는 것이란다.” “왜 제사를 지낼 때는 떡도 하고 쌀밥을 하는 거야?” “돌아가...
    Date2012.08.20 By달인 Views3575
    Read More
  9. 제88화 : 흔전만전1

    제88화 : 흔전만전 가진 것도 없고 많이 배우지도 못한 우리 대부분의 서민들은 흥청망청 쓸 돈은 없지만 그래도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예의범절 내지는 공중도덕은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은데…… 부와 권력을 손에 쥔 부모를 둔 일부 얼빠진 놈들(절대 그...
    Date2012.08.17 By달인 Views4592
    Read More
  10. 제87화 : 검정새치1

    제87화 : 검정새치 현대를 무한경쟁시대라고 한다. 학교에서만이 아닌 직장(사회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적자생존(適者生存)의 원칙이 적용된다. 그러면 이러한 경쟁시대에서 어떠한 사람이 이기게 되는가? 물론 통상적으로는 자신의 부단한 노력을 ...
    Date2012.08.13 By달인 Views3749
    Read More
  11. 제86화 : 내 별명이 ‘김따져!’1

    제86화 : 내 별명이 ‘김따져!’ 어디에선가 「걱정」에 대해서 읽은 내용이다. 70%는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대한 걱정이요, 20%는 걱정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닌 걱정이요, 단지 10%만이 진정 걱정해야 할 걱정이라고. 나는 내가 생각해도 조금은 심하다고 ...
    Date2012.08.09 By달인 Views3609
    Read More
  12. 제85화 : 깨끼3

    제85화 : 깨끼 예전에도 그랬지만 요즘에도 변함없이 사용되고 있는 말 중에 아직도 왜 그렇게 사용되는지가 의문인 것 중 하나가 ‘쌀을 판다’라는 문장이다. 통상적인 ‘사다’와 ‘팔다’라는 단어의 의미를 적용시키면 값(돈)을 주고 쌀을 사면 ‘쌀을 산다’라고...
    Date2012.08.06 By달인 Views3689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Next
/ 10

브라우저를 닫더라도 로그인이 계속 유지될 수 있습니다. 로그인 유지 기능을 사용할 경우 다음 접속부터는 로그인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 게임방, 학교 등 공공장소에서 이용 시 개인정보가 유출될 수 있으니 꼭 로그아웃을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