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사장나무께의 고추 따 먹은 할아버지가 아이들의 희노애락을 자극하며
긴장과 두려움의 대상이었다면
오늘은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아저씨 한 분을 만나 볼까 한다.
우리동네 아이들이 오실날을 기다리며 궁금해하고
또 그 아저씨가 오신 날은 온 동네에 고소한 냄새가 진동해서 기분이좋았던
뻥 튀기 아저씨, 일명 고향말로 '티밥' 튀어 주는 아저씨이다
지금으로부터 30여년도 더 전의 그 시절에는 주전부리 할 것이 별로 없었다.
먹을 것도 충분하지가 않아서 얼굴이 노란 아이들이 하얀 마른버짐 핀 얼룩덜룩한
얼굴을 하고 돌아다니는 것을 어느 동네에서나 쉽게 볼 수 있었다.
배 나온 사람이 사장님으로 우러러 보이던 시절이었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긴 긴 여름날 보리밥 한 그릇 먹고 나서 하루 종일 놀려면 배가 고프기도 했으리라...
사이사이 물마셔 가면서, 집에 가 보아야 별 뾰족한 수도 없으니까?...
그런 여름 날
한 번씩 찾아오는 뻥튀기 아저씨는 정말로 반가운 손님이 아닐 수 없었다.
한 동안의 간식거리가 생기고 그날은 하루 종일 티밥 구경를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뻥튀기 아저씨가 사장나무께에 와서 전을 펼치고 티밥 튈 준비를 하면
사장나무께에서 놀던 우리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가
티밥튀는 아저씨가 왔음을 알리고 다시 사장나무께로 모여 들었다.
한 집, 두 집 강냉이며 쌀등을 가지고 엄마들이 모여들고
그때부터 고소하고 신나는 시간이 시작 되는 것이다.
한 집당 1되 분량의 깡통에 티밥재료를 넣고 사카린 1숟가락을 넣어서
그것을 까맣고 둥그런기계에 넣고 뱅글뱅글 돌렸는데
지금처럼 가스로 돌리는 것이 아니고 나무를 때가며 기계를 돌렸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아저씨는 본 기계에 둥그렇고 기다란 보조기구를 연결시켜
소리도 요란하게 뻥~소리를 내며 티밥을 만들어냈다.
우리는 요란한 뻥~소리가 무서워서 가까이 가지는 못하고 약간 떨어져서 귀를 막고 있다가
뻥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아저씨 주위로 몰려들었다.
티밥은 뻥소리와 함께 대부분 보조기구로 옮겨 갔지만 일부는 본체에 남아있었다.
그러면 곡식 주인은 대체로 보조 기구속의 티밥만을 미리 준비한 큰 통에 담아가고
본체속에 남아 있는 티밥은 뻥튀기 아저씨의 손을 거쳐 우리들에게 분배가 되었다.
뻥소리가 끝나기 바쁘게 우리들이 아저씨 주위로 몰려드는 이유였다.
아저씨에게서 받아먹는 한 줌 정도의 티밥,
튀어 낸지 얼마 되지 않아서 뜨거운 티밥을 호호 불며
또래 아이들이랑 땟국물 쪼르르 흐르는 얼굴 서로 쳐다보면서 야금야금 먹는 맛이란
겪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도 치열한 생존의 법칙과 순발력이 요구되었는데
그것은 나눠 줄 티밥보다 동네 아이들이 너무 많은 게 그 원인이었다.
아저씨는 갑자기 밀려드는 아이들을 감당하기 힘들어 줄을 세웠다.
그리고 차례로 티밥을 나누어 주었는데 안타깝게도
뒷순번까지 티밥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들은 눈알을 굴리며 뻥~소리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티밥 돌리는 기계만 쳐다보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사이사이 본업인 놀기에 열중했고 그래서 줄도 서보지 못하고 지나가는 판도 있었다.
제일 황당한 것은 줄 서있는 바로 내 앞에서 티밥이 다 떨어질 때 였다.
티밥에도 등급은 있었다.
그 분류의 기준은 재료였는데 제일 下급이 강냉이 티밥이었다.
고소하기는 하지만 잇새에 찌꺼기가 끼고 거칠었다.
다음은 잡곡,
그리고 아이들이 가장 선호한 것은 쌀티밥과 말린 떡국을 섞은 쌀떡국티밥이었다.
특히 쌀떡국티밥이 돌아가는 판에서는 줄서기 경쟁이 치열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티밥튀는 날은 내 나름대로의 기준으로 동네 엄마들의 인간성을 체크하는 날이기도 했다.
보통 上,中,下로 매기는데,
中은 보조 기구안의 티밥만 챙겨가는 엄마였다.본체안의 티밥은 우리들 몫으로 남겨놓고...
下는 짐작하겠지만 보조 기구는 물론 아저씨에게 요구하여 본체안의 티밥까지 말끔히
쓸어가는 엄마였다.
어쩌면 당연한 주인의 권리이기도 했지만 그 시절 우리들 눈에는 우리 것을 빼앗아 가는
욕심쟁이에다 인정머리 없는 어른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그런 엄마들의 티밥이 3~4판 정도 연달아 이어지면 우리들은 침을 뱉고 싶을 만큼 허탈해졌다.
上으로 분류되는 엄마들은 본체안의 티밥은 물론이고
큰 통에 옮겨 담은 티밥에서 제법 큰 플라스틱 바가지로 한 바가지 퍼서 아저씨에게
되돌려주는 엄마였다.
입맛을 다시며 침을 삼키고 있는 우리들을 위한 배려였다.
上으로 분류되는 엄마들이 티밥을 튀는 판은 줄을 안서도 대부분의 아이들이
티밥을 얻어먹었다.
현자네 엄마, 상미 할머니, 돌아가신 경님이 엄마, 재완이 엄마 그리고 천일이네 이모등
티밥 인심이 후해서 아직까지도 맘 좋은 어른으로 기억되는 사람들이다.
부디 오래오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티밥튀는 날의 하이라이트는 뻥튀기 아저씨의 보조자리였다.
아저씨도 사람인지라 기계를 계속 돌리면 팔이 아파서인지 가끔씩 보조를 썼다.
불이 너무 세면 티밥이 타서 안되고 불이 너무 약하면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나무를 넣어가면서 불조절을 적당히 할 줄 알고
또 너무 어려도 힘이 없어 않되니까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남자아이들중에서
좀 똘똘해 보이는 아이로 보조를 뽑았다.
보조로 간택당한 아이는 목에 힘을 주며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티밥기계 손잡이를 돌렸는데
그도 그럴것이 아이들은 너도나도 뱅글뱅글 돌아가는 티밥기계의 손잡이를
몹시 돌려 보고 싶어 했지만 보조 말고는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덤으로 줄을 서지 않아도 제일 먼저 티밥을 얻어 먹을 수도 있었으니
정말로 자랑스러운 자리가 아닐 수 없었다.
어느덧 해가 서산으로 뉘엇뉘엇 넘어가고 주위에 어둠이 물들기 시작하면
뻥튀기 아저씨는 리어커에 기계들을 챙기고 짐을 꾸렸다.
아이들의 배웅을 받으며 사장나무를 떠나는 아저씨,
우리들은 이름도 모르고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 아저씨가 다시 빨리와서
우리들에게 티밥을 나눠 줄 날을 기대하며
허전한 마음으로 리어커를 끌고 돌아가는 아저씨를 배웅했다.
*하루종일 불때가면서 뻥튀기 기계를 돌리는 일이 쉽지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온 종일 집에도 안가고 달라 붙어서 티밥을 얻어먹던 조무래기들을
귀찮아 하지 않고 끝까지 참아 주고 봐 주었던 이제는 얼굴도 생각이 잘 안나는
뻥튀기 아저씨에게 뒤늦은 감사를 전합니다.
앞으로 몇 편만 더 올리면 굳히기에 들어 가겠습니다.-중독된 !!!
어른이 되면서 잃어버린 마음이 많았는데
오늘 그 중에 하나를 찾았습니다.
언니 글을 읽다보니
저절로 나오는 웃음에 입가에 미소가 가득 번졌습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은
보석같은 추억의 주인공이고
사장나무가 기다리는 반가운 손님들입니다.
그렇다면,
고향에 계신 어머님께 안부전화로
그리움을 달래봄이 어떨지...